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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0 20:14 수정 : 2008.03.03 21:39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천혜의 청정해역이 난데없는 기름 벼락으로 더렵혀진 지 어언 석 달째로 접어든다.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비지땀 덕에 점차 회복되어 간다지만, 깊숙한 곳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구석구석에 엉겨 붙은 기름찌꺼기를 모두 닦아내려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아름답던 해변이 건강을 온전히 회복하려면 몇 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그러나 더 아프고 깊은 상처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태안 주민들의 가슴속에 묻혀 있다. 대운하나 숭례문 같은 사건에 가려 이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은 관심의 사각지대로 밀린 탓에 더욱 서럽다. 피해 보상이나마 제대로 받는다면 조그만 위안이 되겠지만, 그것마저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사고 유발 기업의 중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3천억원 정도의 한도를 넘을 수 없다니 말이다.

그나마 보상을 받으려면 피해를 입증할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단다. 바지락을 캐서 용돈을 만들어 쓰던 할머니에게 이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음식점 손님이 떨어져 손해 본 사람 역시 피해 입증이 어려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수없이 많을 텐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좋다는 말인가. 왜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가 이렇게 무거운 부담을 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고 처리 방식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자동차 사고는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액 전액을 보상해 주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사고차의 수리기간에 발생한 렌트비까지 물어줘야 한다. 그런데 유조선 사고의 경우에는 중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보험 한도를 넘는 보상은 해주지 않는다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조선 사고의 국제관례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기 국민의 이익이 충분히 보호될 수 없다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다. 더군다나 기름유출 사고를 이번에 처음으로 겪는 것도 아니다. 여수 앞바다 시프린스호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고쳐진 것이 없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액슨 발데즈호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면 국민을 배려하는 정부와 그렇지 못한 정부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정부는 직간접 피해 보상은 물론 청소비용까지 남김없이 지급하게 했다. 책임감 있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시프린스호 사건 때 청소비용은커녕 피해 보상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우리 정부의 무능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번 사건이 시프린스호 사건의 재판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고 유발 기업에 철저한 책임을 묻는 선례를 명확하게 확립해 놓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무엇보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백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흘린 땀의 대가를 징구할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 부분은 청소비용으로 당연히 사고유발 기업이 부담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주먹구구로 계산해 보아도 그 금액은 천억원을 넘는 수준이다.

울고 있는 태안을 달랠 유일한 방안은 직간접 피해 전액을 보상해 주는 것밖에 없다. 억울한 피해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과실을 입증해 사고 유발 기업에 무한책임을 묻든지, 아니면 정부 스스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만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갈 자격이 없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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