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3.17 20:18 수정 : 2008.03.17 20:18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지난 몇 해 동안의 4, 5%대 경제성장률이 훌륭한 성과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과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사실 5%대 성장률이라 해서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매년 5%씩 꾸준히 성장하면 14년 만에 국민소득이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새 정부는 야심차게 7% 성장률을 공약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숙된 단계에서 그 정도의 성장률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선진국들의 평균 성장률이 4% 수준을 넘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물가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세계경제의 움직임까지 자못 심상찮다.

입만 열면 잃어버린 10년을 외쳐온 터에 성장률 목표를 그때의 수준으로 낮추기도 겸연쩍을 것이다. 상황이 어려운데도 올해 목표를 6%로 잡아 ‘호기’를 부린 배경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7%를 약속한 터에 적어도 6%는 되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너무 무리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인위적 부양이란 극약처방에 의존한다면 우리 경제에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인위적 부양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경제성을 의심하는 대운하 사업에 그토록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경기부양이란 잿밥을 노리고 무리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7%라는 목표에 근시안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경제 살리기라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영양주사로 몸의 컨디션을 잠깐 끌어올린다 해서 건강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 기반을 착실하게 다지는 데 있으며, 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설사 운좋게 성장률 목표를 달성한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모든 국민이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4, 5%의 성장률이 크게 나쁜 것이 아님에도 국민의 불만이 높았던 것은 서민들의 삶이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출이 잘되고 기업들은 돈을 잘 번다는데 우리는 뭐냐라는 불만이 온 사회에 가득했던 것이다. 이 점이 시정되지 못한다면 7%대의 성장은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747 공약’을 허황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비전으로 봐 달라는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화려한 장밋빛 청사진으로 국민의 기대수준을 한껏 높여놓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높아진 기대수준에 부담을 느껴 무리수를 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 살리기는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

새 정부가 공약을 이행했는지 아닌지는 임기가 끝난 후에야 진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임기 중 반짝 성장으로 7%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공약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공약의 진정한 의미는 지속 가능한 잠재성장률을 그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성장이 ‘저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규제 몇개 풀고, 세금 깎고, 이자율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준구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