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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5 21:12 수정 : 2008.05.05 21:12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우리나라는 부자를 괴롭혀 내쫓는 나라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자못 분개한 어조로 한 말이다. 무슨 동기로 그 말을 했는지 몰라도,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이 그렇게 분별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과격한 발언으로 계층간의 갈등을 조장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독거리는 데 힘써야 마땅한 일이다.

그 말이 나온 때가 마침 삼성 특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던 때라 더욱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삼성에 대한 특검수사를 부자 괴롭히기의 한 예로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 죄도 없는 삼성이 부자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특검수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정말로 한심한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괴롭힘을 받아 쫓겨나간 부자는 한 사람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부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날조된 신화일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부자들이 살기 좋은 편에 속한다. 우리 사회에는 부자에 대한 증오범죄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강절도 범죄의 피해자는 부유층보다 빈곤층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세금만 하더라도 우리는 부유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쪽이다. 또한 집과 땅만 사놓으면 돈을 버니 부자가 재산 불리기에도 너무나 좋은 나라다.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반부자 정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부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인간적으로는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잘된 사람을 시기하는 마음에서 그런 반부자 정서가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사람 혹은 계층에 대한 인상은 직접 보고 느낀 그대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손꼽히는 부자들이 횡령, 배임, 탈세 같은 비리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다. 부유층의 탈세율이 유달리 높을 뿐 아니라, 그 자제들의 병역면제율도 이상하게 높다. 새 정부에 승선한 부자들 중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들을 좋아할 수 없다.

물론 이런 부정적 유형의 부자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의 부자들이 남의 모범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반부자 정서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부자를 무조건 감싸려는 태도는 이들에게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 부자를 싸잡아서 비난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부 지식인과 언론은 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직 깨끗한 부에 대해서만 존경심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들 스스로 처신을 깨끗이 하는 것만이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부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부자들을 괴롭혀 내쫓는 나라라는 말에는 ‘죄 없는’ 부자들이 박해를 받는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이는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인식이며, 쓸모없는 갈등을 부추길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그릇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사회 통합의 길은 멀 수밖에 없다. 진정한 사회 통합을 원한다면 올바른 현실 인식을 얻기 위한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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