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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3 21:33 수정 : 2008.06.23 21:33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준구칼럼

벌써 두 달이 되어가는데도 서울광장을 뒤덮고 있는 촛불은 꺼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밤잠 설치고 찬이슬 맞아가며 촛불을 밝혀야만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으면 금쪽같이 귀한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왔을까? 새 정부의 앞날은 이 속에 담긴 민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퍼주기식으로 쇠고기 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그까짓 쇠고기쯤이야”라는 안이한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쇠고기를 장기판의 졸 정도로 생각했기에 미국도 놀랄 만큼 선선히 모든 것을 양보해 버렸음에 틀림없다. 국민이 그토록 강하게 반발할지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추어의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서민들 처지에서 볼 때 먹을거리의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이념이니 뭐니 하는 것은 ‘고상한’ 사람들에게나 중요할 뿐 서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문제다. 먹을거리의 안전 같은 원초적인 민생문제야말로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눈높이를 잘 몰랐다는 때늦은 후회는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 뿐이다.

그동안 새 정부는 경제·사회 정책의 기조를 오른쪽으로 돌려놓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밑에는 모든 문제가 지난 두 정부의 좌파적 정책 때문이었다는 맹목적 믿음이 깔려 있다. 이렇게 이념을 앞세우다 보니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념도 결국 민생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탓이었다.

사실 지난 두 정부가 이렇다할 좌파적 정책을 써본 적도 별로 없다. 사유재산을 몰수해 가지도 않았고, 기업을 국유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세금을 천문학적 수준으로 높인 일도 없었다. 두 정부가 채택한 정책의 기본골격은 종전의 보수적 정부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비판하는 사람까지 나오겠는가.

어쨌든 모든 정책을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될 수 없다.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지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복지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공허한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로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을 펼 수 없다. 새 정부의 지난 100일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업 민영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들에 민영화란 극약처방이 필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영화가 이득과 함께 비용도 가져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안별로 득실을 냉철하게 따져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마땅하다. 우선순위와 범위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민영화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진영에서는 새 정부가 더욱 강력한 이념투쟁을 전개해 주기를 원한다. 어떻게 잡은 정권인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문제는 민생이야, 바보!”라는 말이다. 1990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가 “문제는 경제야, 바보!”(It‘s the economy, stupid.)라고 외친 것처럼 말이다.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 경제와 사회를 활성화한다는 아이디어 그 자체는 전혀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 시장은 좋고 정부는 나쁘다는 식의 맹목적 사고를 하는 데 있다. 시장 원리의 도입이 때로는 서민들의 삶을 한층 더 팍팍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촛불을 통해 경고하려고 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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