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구한 날 가정폭력, 부모와 연을 끊고 싶기까지 한데…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
육탄방어 그만, 독립으로 광명 찾자 Q: 20대 중반의 임용고시 준비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음과 욕설, 폭력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지금도 나아진 건 없어요.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도 엄마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뭔 상관이야! 꼬박꼬박 돈 벌어다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라 식입니다. 날마다 저녁이 되면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늘 불안하고요. 무뚝뚝한 동생들은 집안 일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엄마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저 혼자 달려가서 제 몸을 던져 아버지의 폭력을 막습니다. 어제도 그러다가 지금까지 온몸이 쑤십니다. 문제는 엄마도 화가 나면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으로 흥분합니다. 그러니까 싸움은 늘 극단으로 치닫죠. 그런 두 분이 사이가 좋을 때는 또 한없이 좋아요. 오래가지는 않지만 …. 이렇게 불안한 집안 분위기가 너무 끔찍합니다. 빨리 시험에 합격하면 먼 지방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제가 떠나면 우리 집이 정말 풍비박산이 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부모님과 솔직하게 대화하라는 상담 글들을 보고 아버지에게 편지도 써봤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엄마한테는 가혹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런 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용돈도 잘 챙겨주시고요. 하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삶이 지긋지긋합니다. 문득 부모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저 어떻게 해야 하죠? A: 먼저 그동안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살아오셨을 당신과 당신 형제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냅니다. 우리나라는 비뚤어진 유교사상 때문에 효도 이데올로기에 린치를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낳고 길렀다는 게 그렇게 유세일 수 없습니다. 낳아 달라고 한 적 없고 자기들 맘대로 세상에 내보냈으면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부모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려면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내가 나로 태어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깊은 인연에 따라 부모와 ‘서로 만나는’것이지 부모가 나를 미리 알아서 ‘낳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모습의, 어떤 성격의 사람을 낳을 수 있다는 능력은커녕 성별조차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자신을 기르느라 애쓰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듯이 부모도 자식으로 와준 사람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제가 자식을 낳아보니 더욱 그렇게 생각되더군요.)
안타깝지만 묻는 분의 부모님은 아주 불효 부모(?)이십니다. 지금이야 다들 성인이 되었다지만 삼형제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건 엄연한 아동학대에 해당됩니다. 아내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식에겐 그런 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요? 용돈을 잘 챙겨주는 게 부모가 할일일까요? 용돈이 아니라 집을 한 채씩 사준다 해도 허구한 날 끔찍한 가정폭력에 노출되게 아이들을 방치했던 부모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바로 부모 자신이 아름답게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자식들로 하여금 ‘아! 내가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구나. 내가 태어나서 저 사람들이 행복해졌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그만큼 떳떳하고 뿌듯한 정체성의 뿌리는 없을 겁니다. 부모님은 아주 큰 잘못을 하셨고 삼형제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셔야 합니다. 부모는 실수를 하는데도 계속 존중받고 자식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계속 뭔가를 미안해해야 하는 부당한 분위기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끈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두고 죄의식 가질 필요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 |
연극배우 / 오지혜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