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18 21:48
수정 : 2008.01.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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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시술소에 다녔다는 남친의 고백에 끙끙 앓고 있어요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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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사랑한다면 ‘용서’의 적금을
Q:
20대 중반으로 두 살 많은 남자친구와 만난 지 6개월 됐습니다. 만난 지 한 달쯤 됐을 때 남자친구가 고백을 하더군요. 안마시술소에 다녔다고요. 저를 만나기 전에 여자 친구를 4년 정도 사귀었는데 그 여자와는 관계가 전혀 없었다는군요. 혈기가 왕성한데 풀 곳이 없어서 그렇게 겉돌았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두번씩 서른번 정도 갔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오히려 여자 친구와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긴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과거가 저를 괴롭게 합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안마시술소에서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남자 친구가 떠오릅니다. 물론 저를 만나기 전이었고 만난 후로 다시는 안 갈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희는 깊이 사랑하고 있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 왜 나한테 말했나 원망도 됩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여자 친구도 있는 상태에서 그런 곳에 습관적으로 드나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도 관계가 없었다면 그런 곳에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이렇게 괴로워한다고 얘기해 봤자 그 친구도 괴로울 거고 해결 방법도 없어서 저 혼자 이렇게 속을 앓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 없이는 못 살 것 같고 그의 과거는 잊혀지지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당신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다 앞으로 안 그럴 거란 확신이 있으시다고요? 그럼 상담은 왜 하시는 거죠?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었고 ‘확신’까지 품고 계시다면 드릴 말씀이 없네요. 자, 그러나 남친의 과거를 껴안는 큰사랑을 베푸시기 이전에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인정하고 솔직해져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말입니다. ‘확신’ … 그거 지금 없으시잖아요. 전 지금 당신에게 그 확신이 없다는 걸 확신해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남녀 사이에서 ‘확신’은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인데, 그게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결혼을 하시려 하다니 위험천만이네요. 그걸 갖고 시작해도 흔들리는 게 남녀의 관계인데 말이죠.
그리고 지금 당신이 괴로운 이유가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결혼을 계획한 상태’이기 때문 아닌가요? 왜냐. 찝찝하니까. 남친이 원망스러운 이유 또한 혈기를 서른 번이나 돈주고 푼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냥 모르고 살았으면 상큼했을 텐데 괜히 고백을 해서 당신을 찝찝하게 만들어서라면 그 결혼, 더더욱 불안합니다. 당신이 당장 섹스 사보타지를 실행한다면 그가 또 왕성한 혈기를 돈주고 풀러 가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면서 감히 ‘확신’이란 단어를 쓰시다니요. 남친이 없으면 못사는 거 …, 그것도 확신하시나요? 혹시 남친의 존재 자체보다는 곧 결혼을 해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없어지는 게 두려우신 건 아닌가요?
이제 용서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제가 고리타분한 소릴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질문하신 글의 내용으로만 미루어 짐작건대 당신도 저처럼 결혼이란 건 조건 따지고 어쩌고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믿고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을 확신이 있다면서도 ‘전 어쩌면 좋죠?’라고 묻는 이유는 “누가 나에게 ‘남잔 다 그렇다’고, ‘그런 거 별문제 아니다’라고 위로 좀 해줘!”라고 외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위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건 약발이 딱 사흘 갑니다. 그러니 당신 말대로 이미 지나간 일이고 심지어는 당신을 몰랐을 때 있었던 일이니 ‘깊이’ 사랑한다면 터럭 하나 만큼도 남기지 말고 용서하시면 됩니다. 말 꺼내기 괴롭다고 접고 결혼하시면 이 문제는 반드시 부부싸움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겁니다. 지난 일 갖고 싸울 때마다 물고늘어지는 거, 그거 부부싸움 십계명 중 진상 1위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만을 사랑하겠다 맹세했던 그 남자, 징징거리는 당신을 떠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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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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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용서’라는 건 남친이 당신에게 무언가 죄를 지었을 때 할 수 있는 건데,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건 없잖아요. 그러니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네요. 오히려 나름 어려운 결정이었을 고백을 해준 남친을 감싸주기는커녕 찝찝하게 만들었다고 투덜댄 자신을 반성하시고 그에게 그런 맘을 먹었던 것을 고백하시고 당신이 용서를 비세요. ‘깊이’ 사랑하신다면 말이죠. 당신 남친의 그 과거, 진짜 후지고 쪽팔린 과거 맞아요. 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예요. 앞으로 살면서 당신 또한 그에 비등하게 후지고 쪽팔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곤 이 세상 그 누구도 장담 못한답니다. 당신 자신조차도. 그러니 나중에 용서받을 때 적금 타 먹는다 생각할 수 있게라도 깨끗이 용서, 아니 받아들이세요. ‘깊이’ 사랑하신다면.
지금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남친이 아니라 사랑·믿음·용서·확신, 이런 것들에 대한 개념 정립을 못하고 있는 딱한 여인 바로 당신입니다.
오지혜 / 영화배우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는 필자 개인 사정으로 다음 주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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