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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4 21:31 수정 : 2008.01.02 16:22

밑지는 장사? 그것은 치명적 착각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딸이 아까워’ 밑지는 장사? 그것은 치명적 착각

Q : 결혼 앞두고 시댁보다 돈을 더 밝히는 부모님 때문에 괴로워요

임신 석달째인 예비신부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직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고요. 아기가 생겨 결혼을 서두르게 됐지만 예비신랑과 이미 미래를 약속했던 상태라 오히려 아이가 생겼다는 게 기쁘기도 했어요. 주변에서도 축하를 해줬지요. 하지만 막상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혼수 문제 같은 것으로 많이들 싸운다고 하지만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여동생 결혼도 큰 잡음 없이 치렀고 부모님들도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돈이나 자존심 문제로 식구들과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집을 구할 때 돈을 얼마만큼은 받아야 한다느니, 예물로 다이아몬드는 받아야 한다느니 하면서요. 부모님은 제가 대학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해 왔으면서도 ‘네가 아깝다’며 시댁에서 최대한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게 견디기 힘듭니다. 또 뱃속의 아기를 환영하는 시댁과 달리 저나 아기를 죄인 취급 하십니다. 식구들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면 철없는 소리 한다, 니가 잘한 게 뭐냐고 싸움만 일어나고요, 점점 환멸이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봉합될까요? 자신이 없어져요.

A

아후…, 또 불효부모가 등장하셨네요. 우리나라엔 불효자보다 불효부모가 훨씬 더 많은 거 같아요. 당신 부모님 지금 당신에게 굉장히 불효하고 계세요.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말씀하시더니 막상 결혼을 앞두고 평소에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사셨음을 드러내셨군요. 시댁으로부터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자식 가지고 장사하자는 거죠. 그러시면 안 되죠. 요즘은 결혼하면서 부모한테 이거 해내라 저거 해내라 하는 강도자식들이 판치는 세상인데 대학 들어갈 때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정도로 훌륭하게 큰 딸자식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그만큼 사윗감이 후져 보이고, 왠지 밑지는 장사 하는 기분이고, 우리 딸이 평생 고생만 할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거겠죠. 그 마음 모르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갖는 치명적인 착각은 결혼을 앞둔, 혹은 결혼을 한 자녀를 두고 ‘내 자식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전 이 세상에 ‘기우는 결혼’은 없다고 믿습니다. 다 뭐가 맞으니까 살겠다는 거지 어느 쪽이 아깝다는 건 다 남들 생각일 뿐이죠.


요즘 이혼들 정말 많이 하죠? 무슨 유행처럼. 그 이혼의 대부분은 양쪽 부모님이 남의 가정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 결딴이 나고 마는 겁니다. ‘남’이 아니지 않냐고요? ‘남’ 맞습니다.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니까 간섭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부터 잘못된 겁니다. 자식이 결혼하면 사위나 며느리를 자식처럼 생각할 게 아니라 부모를 떠나 독립한 딸과 아들을 ‘남’으로 생각해야 하거늘 그렇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너무 사랑해서? 글쎄요, 그것보단 들인 공이 너무 커서, 그래서 그냥, 마냥 뭔가가 억울해서가 더 정답일 겁니다.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거 다 뻥입니다. 다 ‘조건’ 있습니다. 이미 성인이 된 자식인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된다느니 하는 것들이 다 엄청난 ‘조건’입니다. 당신 부모님께서 사랑하는 딸이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고른 남자를 계속 그런 식으로 대하시는 건 결국 당신 딸을 그만큼 신뢰할 수 없는 인격체로 키웠다는 거밖에 안 되는 건데 왜 그리 자식을 믿어주시지 못하는 걸까요?

자식을 믿지 못하는 건 곧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모님께서는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행복· 믿음·사랑, 이런 소중한 가치에다 자신을 투영시키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사랑하는 딸의 뱃속에 자리잡은 생명을 부끄러워하신다는 겁니다. 본인들의 손자 혹은 손녀가 될 생명이거늘. 잘한 게 뭐냐 하셨다고요? 뭐, 자랑할 일까진 안 되는진 몰라도 부끄러워할 일도 분명 아닙니다. 그저 새 생명은 축복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오지혜의 오여사 상담소
시간 지나면 봉합되냐고요? 아뇨.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봉합 안 돼요. 그러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사랑하시니까, 나를 아끼시니까 저러시는 거겠지 하고 대충 넘어가지 마시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 하지 마세요. 물론 당신의 건강하고 순수한 영혼에 부모님이 설득당하시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겠죠.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은 세계관을 바꾸시기엔 좀 많이 살아오셨기 때문에 많이 힘드실 겁니다. 자식이 자신들에게 ‘환멸’을 느끼는데도 눈치채지 못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아주 많이 남은 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어찌 보면 당신의 지난날이 부모님의 신뢰를 못 얻을 만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 그렇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결혼 준비의 첫 단계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마마걸이 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결혼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진짜 효도가 아닐까요?

오지혜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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