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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8 16:30 수정 : 2008.01.02 16:21

취직과 함께 전화 안하는 남친 짜증나요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쯧쯧, 가엽게 여기사 ‘휴식’을 주소서

Q 직장인 남자친구와 4년 넘게 사귀고 있는 학생입니다.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남친이 취직을 해 원거리 연애 중입니다. 오래 사귄 커플치곤 잘 지내는 편입니다. 하지만 오빠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하루 한번 전화하기도 빠듯합니다. 저 역시 취직 준비생이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남친에게 기대고 싶은 맘도 있는데, 회사 일에 정신없이 매달리는 그가 안타깝기보단 짜증나고, 만나면 피곤해 하면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연애하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습니다. 취직 준비하면서 바쁜 남친이 취직만 하면 잘 해준다고 서운해 하는 저를 달랬지만 막상 취직하고 나니 전보다 더 바빠졌습니다. 오히려 직장인 맘 이해 못 해준다고 합니다. 내가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심이 상합니다. 별 감정 없어 하는 남친에게 전화로 땍땍거리는 사람인가, 난 한가해서 이러고 있나, 차라리 연애라도 안 하면 전화 기다리면서 짜증내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내가 없는 듯 합니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잠깐 동안 ‘티’나게 잘해주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남친의 모습은 제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불안감만 줍니다. 여전히 남친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반복되는 이 상황이 힘듭니다. 묵은 애정을 정리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제게 힘이 되는 조언을 남겨 주세요.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A 남녀의 역사에 슬럼프 없는 커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오래된 연인인데다 때마침 열라 바빠주시니 연애전선 이상 있음 느끼시는 거 너무나 당연하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본인은 상당히 심각한데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상담자의 진정한 자세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말씀드리자면 참 걱정할 것도 없으십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가벼운 이 세상에 진득하게 만나오는 남자 있으니 감사하고 청년실업 심각한 대한민국에 살면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된 남친 두셨으니 또 감사하고 아픈데 없이 일 열심히 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니 말입니다.

애정이 남아 있다면서도 헤어질 생각까지 하신다니 그럼 여기서 질문 한 가지. 만약 이 상황이 계속 되면 남친 차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실텐데 그 새 사랑의 절대 조건은 ‘아무리 바빠도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내 전화 꼬박 꼬박 받아주고 나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고 내가 힘들 때마다 타이밍 잘 맞춰서 기분 풀어주는 남자’이겠네요? 그래야 결혼까지 갈 수 있고 그래야 행복한 여자가 될테니까요. 에구, 그럼 큰일이네요. 이상형 만나시기 정말 힘드실 것 같은데요.

연애를 하는 건지 사랑을 하는 건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아, 물론 상대가 속인다거나 유린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말고요. 서로 잘 한다고 하는데 뭔가 성에 안찰 땐 혹시 내가 불가능한 걸 원하고 있진 않나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상대에게 섭섭한 감정이 생겼을 땐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작정하고 못되게 구는 게 아닌 이상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 당신이 그 상대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상대로 하여금 잘못한 것도 없이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다 보면 상대로서는 억울한 생각이 들 수 있죠. 그 양반도 지금 섭섭해 한다면서요. 두 분 다 조금 욕심을 버리고 서로에게 휴식기간을 주는 건 어떨까요?


캠퍼스 커플과 직딩·대딩 커플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에 있어 최고형태라고 신영복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당신이 직딩이 되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남친을 이해하기 쉬워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지금 남친은 사회생활의 가장 아랫 단계에 진입한 처지라 완전 한 딱까리 하는 이등병과 같은 상황일 겁니다. 재벌 아드님이 아니고서야 그야말로 ‘빡세게’ 사회생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 어느 누구도 일과 사랑을 동시에 멋지게 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전 개인적으로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이긴 합니다. 사랑은 시간으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전과는 달리 낭만의 여유를 잃어버린 남친을 무슨 성적 매기듯이 채점하고 실망하고 그러지 말고 가엽게 여겨보시는 건 어때요? 일단 이해해주는 감동을 선물하신 다음에 당신 힘든 것도 한번 얘기해보세요. 틀림없이 따뜻하게 반응해줄 거예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형의 것이지만 유기체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과 똑같을 수만은 없다는 걸 잊지 마세요. 오래 사랑한 그 사람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금세 ‘변했구나’ 판단하지 마시고 우리 사랑이 성숙하고 있구나 생각하세요.

그리고 ‘잘 해주는 거’, ‘믿음을 주는 거’ 이런 것들의 주체는 왜 항상 남자 쪽이어야 하죠? 연애나 결혼은 어디까지나 쌍방 간의 동등한 노력으로 이어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취직 스트레스 때문에 바쁘시겠지만 남친에게 ‘잘’ 해줘보세요. 결혼해서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나만 믿으라고 남친에게 얘기해보세요. 점수 매기고 채점하는 일만 하지 마시고 ‘주는’ 사랑도 해보세요. 남녀평등 시대잖아요.

영화배우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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