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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의 시부모님, 욕심도 많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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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 상담소
Q 장손으로 거부하기 힘든 제사, 아내가 폭발 지경입니다… 2녀1남을 둔 결혼 13년차 직장인입니다. 아버지는 9남매 중의 장남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이 모이면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부모님도 자주 다투셨고 저와 동생에게 형제간의 우애를 늘 강조하셨죠. 밖에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우리 집안에 갈등이 생긴 건 제사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형제간의 싸움으로 제사가 공중에 붕 떴습니다. 아버지는 천주교식 제사를 지낼 테니 유교 방식을 고집하는 동생들은 따로 지내라고 선언하셨지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버지 집이 좁아서 저희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지만 장손으로서 싫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아내는 그동안 묵묵히 참았지만 이제는 힘든 것 같습니다. 제수씨가 아이 핑계를 대면서 제사 준비에 빠지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내버려 두라”고 방관하고만 계십니다. 폭발 직전의 아내는 제사 때문에 이혼한다는 게 뭔지 이해가 간다고 하네요. 왜 살아 계신 시부모님의 시부모 제사까지 자신이 준비해야 하냐면서요. 제 생각에도 맞는 말이지만 우리 집에서 하는 제사를 부모님이 와서 직접 준비하시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제수씨한테 직접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동생한테는 말해 봤자 전달도 안 되고, 아내더러 참으라고만 할 수도 없어서 고민입니다. 이러다가 정말 이혼하자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A 가족이라는 혈연 중심 사고가 빨리 개선 돼서 일상을 함께하는 구성원을 더 중요시하는 ‘식구’ 중심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년에 한두 번 보는 ‘가족’들 때문에 24시간을 함께하는 ‘식구’들의 관계에 금이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실 때가 된 것 같네요. 가족 문제, 특히 부모님과의 문제는 남이 뭐라 하기 참 예민한 문제이고 우리 사회에서 밖으로 내놓고 말하기 금기시되어 온 사항이니 만큼, 저 역시 남의 가정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무척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럼에도 부모님들의 폭력에 가까운 사랑 때문에 죄 없는 후손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는 걸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감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장남을 인생 최대의 보험으로 믿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혼 시장에서 장남은 아직도 인기가 없는 거라더군요. 가엾은 이 땅의 장남들께 심심한 위로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도 그동안 가슴앓이하느라 애쓰셨고요. 하지만 당신의 인생 ‘짬밥’으로 봤을 때 ‘누구의 아들’로서의 당신보다는 ‘한 집안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정체성이 더 중요한 위치가 되지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눈치만 보는 건 그만 하시고 무언가 결단을 내리셔야죠. 제일 좋은 건 부모님을 설득하는 거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보기에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네요. 그렇다면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자신이 살아 계신 시부모의 시부모님 제사까지 지내야 하냐는 아내 분의 성토는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당신은 아내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린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난주에 김어준씨가 다 해주셨습니다. 지난주 상담 내용도 도착적 가족윤리 문제로 괴로워하는 ‘장남’들의 안쓰러운 사연들이었는데, 김어준씨의 결론이 너무나도 정답이고 백프로 공감하는 내용이어서 그분 결론을 인용합니다. ‘존재를 질식하게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가족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아 …, 너무나도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 당신에게도 정확히 적용되는 말입니다. 아버님께서 형제애를 강조하셨다고요? 자식 교육에서 핵심은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허구한 날 형제들과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시고선 한다는 말씀이 참 민망합니다. 그리고 제사라는 건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행위인 동시에 살아 있는 후손들의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축제이기도 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만 총대를 메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잔치여야 하고요. 그런 분위기 만들지 못한 부모님 세대가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의 가정이 파괴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가치관, 내 윤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고집하신다면 곤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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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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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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