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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3 20:08 수정 : 2008.02.17 15:15

그 ‘후레자식’에게 사과부터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Q 가족들 억장 무너지게 하는 제 동생을 소개합니다

올해 성년이 되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지난해 대학에 입학했는데 한달도 다니지 않고 부모님과 상의 한 번 없이 자퇴했습니다. 전공이 맞지 않는다면서요.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자퇴했다는 사실을 집안에 숨기며 남은 등록금을 수령해 유흥비로 탕진했습니다. 재수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외박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때려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설득도 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외박이었죠. 이제 동생과 말도 안 하십니다. 동생이 한 달에 쓰는 돈만도 저희 집 형편에서는 큰 부담인데 통제가 불가능해요. 엄마가 괘씸하다며 돈을 안 주면, 친구들에게 빌려 집에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갚아준 적도 여러 번입니다. 동생은 꾸짖는 엄마에게 욕을 퍼부은 적도 있어요. 경제관념도 없는데다 의욕도 약해서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도 1주일을 넘기기 힘들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포부가 전혀 없습니다. 매일 밤새 놀다가 낮에는 하루종일 자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군대갈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아버지와 동생의 갈등은 동생이 안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단지 학교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동생과 대화를 하지 않으셨죠. 아버지가 엄하신데다 모든 일을 마음에 담아 두시는 성격이신지라 쉽게 둘 사이가 풀리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 때문에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실 정도였어요. 정말 요새는 동생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입니다.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울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제 동생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이런 천하의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아니 어디서 그런 몹쓸 동생을 만나셔 가지고 …. ‘성년’이라면서 왜 돈을 대신 갚아주십니까.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보셨다니 이젠 빚 독촉 전화가 오면 우린 모르는 사실이라고 잡아떼세요. 동생 분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시라고요. 외박하는 것도 ‘성인’인데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시고요. 빚쟁이가 혹 고소를 하더라고 할 수 없죠. 꾸짖는 부모에게 욕을 할 수준에 이르렀다면 때린다고 달랜다고 말을 듣기엔, 시기도 나이도 모든 게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솔직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당신이니 고소당해서 감옥에 들어가는 게 당신을 비롯해서 가족 모두에게 다 좋은 거 아닌가요? 네?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구요? 아니, 왜요?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요?

자, 이거 보세요. 누나이신지 형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동생 분이 천하의 몹쓸 놈이 되신 건 가족들 책임이 90퍼센트라는 거 깨닫지 못하신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가족 중에서도 부모님, 그리고 특히 ‘엄하시고 모든 걸 마음에 담아두시는 성격’의 소유자이신 아버님이 모든 걸 책임지셔야 합니다.

자식이 안 좋은 고등학교를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도 안 섞는 폭력을 저지른 아버지가 뭐가 잘한 게 있다고 때리기까지 하신 걸까요? ‘안 좋은 고등학교’라는 판단도 맘에 안 들지만 그게 그렇게 한 지붕 아래에서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면 돈을 써서라도 ‘좋은 학교’로 보내시지 그러셨어요. 자녀의 성적을 자기 명예의 잣대로 생각하는 부모는 일단 부모 자격이 없는 거라고 봐야죠. 그 뒤로 사이가 점점 벌어진 건 자식의 미래를 걱정했기 때문에 속상해서, 가 아니죠. 자기가 쪽팔려서, 그리고 자기 체면을 깎아먹은 아들이 원망스러워서, 가 정답이죠. 당신 창피한 거만 생각했지 아들이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으셨네요. 큰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걸로 지금까지 사이가 벌어진 걸 보면 그 전에도 ‘엄하시고 모든 걸 마음에 담아두시는 성격’으로 자녀들을 대하셨을 게 불 보듯 뻔하구요. 어머님도 지혜롭게 대처하시는 방법을 몰라서 감정적으로만 중간자 입장에 서 계셨으니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당신 역시 비록 동생처럼 패악질은 안 하지만 패악질을 해대는 스무 살짜리 동생을 가엾게 여기기보다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거구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족이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셔야겠네요. 때리는 건 앞으로 한 번 더 시도하시면 다음번엔 아마 자식에게 맞는 불상사를 당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눈물로 설득하시는 거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지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셔야 할 행동은 ‘설득’이 아니라 ‘사과’입니다.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내 욕심에 차지 않았다고 자식 취급을 하지 않았던 거 미안하다고, 내가 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네가 받았을 상처를 헤아리지 못하고 몹쓸 짓을 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지금 동생 분 하는 행동들 잘한 거 하나 없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을 짓만 하고 있는 거 맞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필요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버림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맞아도, 의사의 도움을 받아도, 감방에 가도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건 없을 겁니다.


십 년 전인가요? 평생 부모로부터 잘난 형과 비교당하면서 온갖 정신적인 학대를 당한 한 청년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 기억하시나요? 그 청년이 법정에서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요?”

오지혜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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