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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7 22:18 수정 : 2008.02.28 14:32

내적인 ‘자뻑’을 키워보시죠.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Q 잘나고 예쁜 아내에게 느끼는 라이벌 의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다 보니 일찍 결혼하게 된 26살 청년입니다. 이제 1년 반 됐네요.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아내에게 갖게 되는 라이벌 의식입니다. 결혼 전에 적지 않은 여자들과 만났고,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지금의 아내를 포함해 대부분 여자 쪽에서 다가왔을 정도로 못나지는 않은 외형과 집안·직업을 가졌습니다. 잘났다기보다 모자람이 없다는 게 맞겠네요.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는 프라이드도 높고 그런 부분 때문에 가끔은 제가 생각해도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릴 때도 있는데요. 그런 제가 아내에게는 이상하게 라이벌 의식이랄지, 자격지심이랄지 그런 걸 갖게 됩니다.

아내는 학교 다닐 때 얼짱으로 소문 났을 정도로 예쁩니다. 아내 역시 영어와 프랑스말을 본토박이 수준으로 하고, 항상 어딜가나 사랑받고, 리더십도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따릅니다. 입사한 지 석 달밖에 안 된 회사에서도 팀에서 거의 치프 대접이더군요. 팔불출 같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아내는 참 대단합니다. 예쁘고 능력있고, 착하고 센스있고 …, 이런 아내를 보면서 마냥 흐뭇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문제는 제가 그렇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내가 프로젝트 성공시키는 모습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절대적으로 신뢰받고 인정받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고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초조함과 질 수 없다는 의식이 생겨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제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인데 대체 왜 이럴까요? 저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죠?

A 일단 제일 많이 반복되어진 단어는 ‘내 마음 나도 몰라’이더군요. 당신의 지금 심정의 제목부터 정해 드릴게요. 라이벌 의식? 아니죠. 콤플렉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 우리 암컷들이 수컷들 성향 중에서 제일 한심해하는 부분입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꺼내서 만드셨다는 것 때문인지 지구상의 수컷들은 당췌 암컷을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굉장히 어려워들 합니다. 미친 듯이 사랑은 해도 존경은 할 수 없는 존재. 물론 위인도 있고 선생님도 있지만 그런 거 말고 연애질할 때의 여성으로서는 아무리 완벽한 피조물이라 해도 그 ‘아름다움’을 숭배하면 했지 돈 잘 벌고 일 잘하고 똑똑한 거, 요부분 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절대로 자기보다는 손톱만큼이라도 모자라야 자기 여자로 받아들이는 그 심리. 그거, 우리 여성들 입장에선 그만큼 자신이 없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여자들도 남편보다 자기가 더 잘나가는 걸 무지하게 미안해하고 눈치를 보기까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를 보입니다. ‘그래봤자 갈비뼈’인 주제에 감히 하늘과 같은 남편을 기죽이게 할 순 없는 거겠죠. 지금 미국에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고소득 고학력 노처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문제는 누구보다도 그런 현상을 불안해하는 건 남자들이 아닌 잘난 여성 본인들이라는 겁니다. 왜? 남자가 싫어하니까! 그런 ‘쪼다’들 열 트럭 갖다줘도 안갖는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첨엔 다 그렇게 얘기한답니다. 그러다 점점 노처녀로 늙어가게 되면 학력과 수입을 줄여서, 말하자면 자신을 축소 홍보하는 것이 유행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게 다 당신의 그 ‘알 수 없는 초조감’ 때문입니다. 당신이 마누라 자랑을 했으니 저도 제 신랑 자랑을 해볼까요? 영화감독이라는 소위 말하는 프리랜서인 직업 덕분에 일정한 수입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결혼 9년 차인 지금까지 제가 더 많은 수입을 갖고 살고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 신랑은 당신이 말하는 ‘알 수 없는 초조감’ 때문에 온갖 콤플렉스로 괴로워해야 할 텐데 오히려 여유롭고 당당합니다. 그만큼 육아와 가사노동을 여느 가정주부 못지 않게 해나가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신랑은 저를 ‘갈비뼈’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공동육아 공동가사를 하는 만큼 가장의 의무 또한 공동으로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바가지(?)까지 긁는 놀라운 자신감(!)을 지니고 있답니다.


제 신랑의 자신감은 다른 말로 하면 진정한 평등의식입니다. 전 그래서 여느 아내들의 레퍼토리인, 남편을 돈 못 번다고 무시하기는커녕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걸 고맙게 생각하고 그 멋진 세계관에 존경을 표합니다. 여자들이 진짜로 남자들에게 반하는 부분은 월급액수나 출신 대학 간판이 아닙니다. ‘나만을 사랑해주는’ 따위의 공주병스러운 소망도 아닙니다.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백오십 년 전 유럽의 희곡 속에서 노라가 집을 뛰쳐나온 이유 또한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부자이고 사랑을 주는 남편이지만 그 남자의 ‘인형’이 되기 싫어서였습니다. 잘나가고 능력 있는 아내에게 건강한 의미에서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사랑만 하고 존경은 하지 않는 태도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도 ‘서로’하듯이 존경도 쌍방향이어야 합니다. 아! 아내가 외모까지 뛰어난 거 때문에 혹시 당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만큼 아내에 대한 믿음이 약하신 거일 수도 있구요. 그렇다면 지금껏 가졌던 외적인 ‘자뻑’ 말고 영혼을, 그리고 세계관을 쿨하고 섹시하게 키우셔서 ‘내적 자뻑’을 키워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아내는 딴생각 절대 안 할 겁니다. 귀여운 새신랑 파이팅!!

오지혜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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