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3.12 21:52 수정 : 2008.03.12 22:09

새댁, 철부터 들어야겠구만.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Q 혼자만 똑똑한 척하는 시어머니가 한심하고 피곤해요

결혼 1년차, 신혼인 새댁인데 요즘 고민이 생겼습니다. 앞서 결혼한 친구들한테 ‘망할’ 시댁 얘기와 시어머니의 ‘몹쓸’ 언행들에 대해, 그들의 해우소가 되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주곤 했지요. 근데 마침 내 상황이 되고 보니 이거 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니 어쩌면 좋아요. 울 시엄니는 젊은 나이에 사별하시고 외아들을 키워 오신 이 땅의 강하디강한 어머니상 그 자체입니다. 알고 결혼을 하긴 했지만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이런 환경이 낯선데다, 뭐랄까 시댁에 가면 딱히 할 말이 없고 첨에는 시어머니가 불쌍한 생각도 들고 그랬죠. 근데 1년 가까이 지내온 지금은 그다지 불쌍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스스로가 인생을 그리 피곤하게 만들고 산다는 생각까지 드는 겁니다.

대충 해도 될 일인데 그 꼴을 못 보고, 당신이 사는 거, 당신이 해 먹는 거,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이 제일로 좋고, 남이 하는 건 전부 하자가 있는 걸로 생각하니까요. 하다못해 백화점엘 도대체 왜 가느냐는 식이니,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알겠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시어머니라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난 참 복이 없구나’ 싶을 정도예요. (남들은 시어머니랑 쇼핑도 하고 놀러도 가고 한다는데 이거야 원.) 문제는 내가 보기엔 혼자만 똑똑한 척하는 시어머니가 살아온 게 안됐긴 하지만 한심해 보인다는 겁니다. 살 만한 지금까지도 왜 저러나 싶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기대치에 맞추는 거, 당신의 질곡의 삶을 자식이 보듬어줘야 한다는 주위 시선들, 이런 거 너무 하기 싫거든요. 시어머니의 성격을 완전 파악한 요즘, 나름 무시하며 그냥 지내야 되나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생기네요. 난 며느리가 되기엔 자아가 너무 강한 걸까요?

A 아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새댁아! 철 좀 들어라! 하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고 조근조근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자고로 이 땅의 수많은 ‘언니’들께서 충고하시길 과부에 외아들인 곳에는 시집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수절하며 외아들 혼자 키워내신 어머니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충고들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답니다. 사랑을 나눌 남편도 없고 연애라도 했다간 부정한 여인으로 손가락질받을 테니 가슴만 썩고 그렇다고 사회적인 위치가 있어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안 먹고 안 입고 살아오신 그분들한테는 웬만한 며느리들이 성에 안 차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홀어머니 밑에서 큰 외아들들은 희한하게 공부를 잘했거나 지극한 효자로 큽니다.) 게다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자기 말만 옳다고 고집 부리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집의 며느리가 되면 어느 정도 맘고생 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제가 그 시어머니 같은 처지가 된다면 저 또한 더하면 더했지 며느리 혹은 사위를 선선하게 대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난 당신의 질문을 받아 보고 나서 지금껏 이 코너에서 상담한 사례 중 가장 큰 절망을 느꼈답니다. 이렇게들 결혼을 쉽게 생각하고 약속에 의해 ‘가족’이 된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미워들 하니까 사방이 이혼투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자아가 강한 게 아니라 철이 안 드신 겁니다.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우리네 사회에서 결혼이란 좀 독특해서 거의 종교에 가까운 가족 이데올로기를 무시하고서는 제정신 갖고 결혼생활 하기가 힘든 사회잖아요. 가족이니까 때 되면 억지로 만나야 하고 친하지도 않은 가족이 빚을 지면 가족이니까 그거 갚아주느라 쩔쩔매고 ‘남’인 거 인정 안 하고 서로 너무 간섭해서 온갖 상처들을 주고받고…. 모순투성이지만 지금의 육칠십대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진 절대로 바뀌지 않을 인연의 고리들이 지천에 얽혀 있답니다.

그럼에도 우린 또 가족 안에서 위로를 받고 살아갈 이유를 찾고는 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제 와서 뭔가를 바꾸고 살기엔 너무 늦어버린 가엾은 당신 남자의 어머니를 ‘연대의 힘’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에겐 그야말로 아들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아들이 이제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더 필요로 해서 떠났습니다. 그건 곧 그분에게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것일 수도 있어요. 어떤 한 인간의 ‘살아갈 이유’를 온전히 차지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고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너무 큰 걸 가졌고 크게 이긴 것이니 그분에 대해 속 끓일 필요가 전혀 없으신 겁니다.



오지혜의 오여사상담소
싸운 뒤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많이 가진 자,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평생 함께 살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릴 만큼 남편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보기에 참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닌가요? 그럼 그런 남자를 평생 죽을힘을 다해 키워준 어떤 늙은 여인에게 고마움과 연민을 가지고 다가가 보세요. 심술이 많으셔서 그렇지 속은 따뜻한 분이실 겁니다. 혹 당신에게 남자 형제가 있다면 당신 어머니는 어떤 시어머니가 되실지도 생각해 보시고요.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아직 있으시니 늦진 않았다고 봅니다. 단 한가지!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망할’ 시댁과 시어머니의 ‘몹쓸’ 언행에 못지않게 당신 친구들의 인격과 이해심도 별 볼일 없다는 거 명심하셔야 하고요, 아무리 심술쟁이 시엄마라지만 ‘혼자 똑똑한 척한다’는 표현을 하는 당신의 버르장머리부터 고치셔야 하겠습니다.

오지혜 영화배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오지혜의 오여사 상담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