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4 20:24
수정 : 2008.03.3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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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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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칼럼
엊그제, 보름달이 하늘 가운데로 둥실 떠올랐다. 하늘의 저 달은 하나로되 세상천지 천의 강과 여울에는 천의 달이 물 위에 어리었다. <월인천강지곡>.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신 후 첫 번역을 멋진 불경의 한 구절로 시작했다. ‘천의 강에 뜬 천의 달’이란 표현은 그 자체로 멋진 시다. 여기에는 같은 말씀을 들어도 듣는 이마다 제 그릇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스승들은 사랑과 자비를 가르쳤지만 듣는 이들은 저마다 제 식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여 이라크인 수십만을 죽인 부시 대통령 같은 기독교인도 생겼다.
‘월인천강’은 ‘천의 강’인 모든 ‘존재’들 속에는 ‘달’인 부처의 성품이 있다는 뜻도 들어 있다. 정아무개씨가 아이들을 둘씩이나 죽였다. 저 옛날 고재봉이며 김대두, 우범곤, 온보현, 유영철, 정남규로 이어지는 무서운 살인범들의 계보. 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흉악범들을 하루빨리 처단하라 아우성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도나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기독교인이나 전혀 차이가 없다. 응보감정과 나와 가족을 보호하려는 본능의 발로다. 하지만 이 흉악한 이들도 사실은 부처며 예수가 비춘 천의 강 중에 하나일 터.
유영철이 아무리 유영철인들 개인으로서는 천 명, 만 명을 해치지는 못한다. 이에 비해 자유니 평등이니 민주주의니 온갖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들은 수십,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다. 경쟁과 효율만을 내세워 복지나 분배 같은 공적 가치들을 뒷전에 밀어두는 정치도 그렇다. 결국 머리도 능력도 돈도 없는 수많은 약자들을 가난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이므로 그 해악은 정남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외환위기 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가정이 깨지고 자살을 했다. 그 사태를 몰고 온 국제 금융자본과 정치인이며 관료들의 책임이 온보현에 견줄까.
사실 내 자식이 유괴되어 죽는다면 나 개인으로서는 범인들을 도저히 용서하기 어렵겠다. 사적 보복도 사양하지 않겠다. 자식을 끔찍하게 빼앗긴 저 부모들의 슬픔을 누가 무엇으로 위로해 줄 건가.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상처 입은 마음은 또 어쩔건가.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국가는 개인과 달리 감정에 치우침 없이 이성적이어야 한다. 천 명의 개인들이 처단하라 아우성쳐도 국가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국가는 헌법을 통해 국가 이성을 이렇게 분명히 밝혔다. 성자·현인이며 양식있는 시민이며 착한 이뿐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못된 자나 살인범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무서운 흉악범들은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존엄하다는 헌법의 이 선포는 국민을 종교적 연단에까지 끌고 나간다.
세계 130여 나라가 사형을 폐지하고 유엔도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들에 집행을 유예하라고 결의했다. 우리도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없어 지난해 사실상 폐지국이 되었다. 이 모두,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흉악범도 존엄하다는 엄숙한, 그러나 감정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종교적·이성적 깨달음의 결과다. 종신형으로 사회를 지키자. 하지만 악한 자가 사람을 아무리 끔찍하게 죽였어도 이성적이어야 할 국가마저 그와 똑같이 손에 피를 묻힐 일은 아니다. 악한 이나 착한 이나 그 마음에는 모두 부처·예수라는 보름달이 하나씩 떠 있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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