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8 21:11
수정 : 2008.09.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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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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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칼럼
서울 변두리, 강북하고도 청량리 밖. 우리 동네 전철역 앞 이발소 최씨는 아직도 1970년대를 산다. 포마드 발라 뒤로 넘긴 머리하며 손님들과 노닥거리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마흔이 다 돼가는 나이지만 아직 장가를 못 갔다. ‘그 좋은 장개 왜 안 갔어’ 하고 누가 물으면 손사래를 친다. 선보러 가면 아이 딸린 여자들뿐인데 제 월급으로 어찌 그 애들 공부시키겠느냐는 한탄이다. 그는 시골역 같았던 전철역이 ‘스타’ 어쩌고 하는 커피점이 들어선 으리으리한 건물로 바뀌기 전부터 동네 노인들이며 아이들 머리를 깎았다. 20년은 족히 되었으련만 한 달치 봉급은 고작 150만원이란다. 아무리 시시한 학원이라도 월 수십만원이 드는 과외비를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아이 하나, 둘 딸린 여자가 시집오려 할 리 없다. 최씨는 꼼짝없이 홀아비로 늙을 판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시인 신경림이 노래한 ‘못난 놈’들은 이제 장가도 제대로 못 간다. 곧 뉴타운이 들어선다니 월세 감당 안 될 게 분명한 저 70년대식 이발소도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올 상반기 교육비가 15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 비해서 10퍼센트 가까이 크게 늘었다 한다. 아이들을 잘난 놈, 못난 놈 가리지 않고 같이 학교에 다니게 한 중·고교 평준화 정책은 40년 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 시절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새벽 1시까지 과외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성적순으로 자리를 골라 매일 짝과 자리가 바뀌었더랬다. 앞집 사는 친구녀석은 과외를 다니면서도 이를 숨기느라 먼 길을 돌아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서로 바꾸어 채점을 하면서 짝은 내 답안지를 고쳐 내 점수를 깎았다. 철없던 시절부터 시작된 무한경쟁. 그래도 그때는 돈 많은 집이나 없는 집이나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제는 그 월수입으로만 보아도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120만원에 정규직 200만원, 증권회사 직원 1000만원, 대기업 이사 1억원. 돈을 쏟아부어 미국 사람에게 영어 배우고, 바이올린이며 수영 배우고, 비싼 학원에 다니는 아이를 우리 동네 이발사 최씨 150만원 월급으로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리.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 선배인 박정희 정권의 학교 평준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자본주의, 돈 중심으로 돌아가도 교육과 의료 이 두 분야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교육을 통해 없는 집 자식도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립 서울대학교’에는 여러 계층의 자녀들이 어울려 다녔다. 가진 자 축에 들어선 그들이지만 노동자, 농민 등 서민 대중의 이해를 고민하느라 데모도 하고 노동현장에 투신하며 분신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다. 이제 강남이며 특목고가 절대 강자가 되면서 국립 서울대는 점점 더 일반 서민 대중과는 관계없는, 부자들만의 리그가 되어 간다. 굳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조를 하는 ‘국립’의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국민 70퍼센트가 5년 동안 20조원의 세금을 줄이는 정책의 혜택은 주로 부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상속세·증여세를 줄이는 데 찬성하는 국민들이 더 많다는 게 참 이상하다.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격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흥겹다’던 시절이 그립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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