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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2 20:07 수정 : 2009.09.24 00:12

김형태 변호사

김형태칼럼





청량리에서 한 아주머니가 버스에 탔다. 사십대 초반의 자그만 체구, 남루한 옷에 푼수 끼도 좀 있어 보였다. 아주머니는 시커먼 비닐봉투를 한참을 뒤지더니 귤 몇 개를 꺼내 운전기사에게 선뜻 건넸다. 다음 정거장에서 할머니가 타자 얼른 일어나 뒷자리로 갔다. 보따리는 그냥 바닥에 둔 채로. 저 보따리가 별 볼 일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엉뚱하게도 걱정은 내가 하고 그 아주머니는 보따리에 신경도 안 썼다. 보살이 따로 없다. 사실 버스를 타면 이런 보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가톨릭을 믿지 않는 이들도 그분이 떠나가는 걸 아쉬워했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젊은이도, 노인도 다 그분을 존경했다. 그 전에는 강아무개가 부녀자들을 여럿 죽였고 사람들은 또 그 강아무개를 빨리 죽이라고 아우성쳤다. 김 추기경의 선종은 우리 마음에 가득 찬 증오의 기운을 선한 쪽으로 누그러뜨렸다. 그분이 이렇게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천주교 고위 성직자여서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고 죽어서 천당가는 비법을 알려주어서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군사독재에 신음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때 가난하고 힘없고 쫓기던 이들 곁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말년에 일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당신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리. 그분은 추기경에 임명되자 더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뉴턴 물리학에서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변하지 않는 물체의 존재를 믿었다. 하지만 최근 이론에서는 ‘물체’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바뀌기도 하고 알갱이와 파장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속도에 따라 물체의 길이가 바뀌고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 물체가 서로 의존해 영향을 미치고, 다른 것과 독립되고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요즘 과학이나 철학에서는 절대적인 물체나 시공간은 없고 그저 ‘사건’이 있을 뿐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또는 모든 면에서 옳은 존재는 없다. 따라서 오랜 세월 국민의 사랑을 받던 추기경을 칭송하거나 말년의 일부 다른 모습을 무어라 탓할 일도 아니다. 그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사건, 구체적 가난과 멀어져 다른 모습을 보였던 사건, 그냥 사건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그 사건을 기리고 따르면 될 일이다.

용산에서 철거민 다섯이 불에 타 죽었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수백, 수천억원의 돈이 사람 목숨보다 훨씬 더 중하다고 우리 사회 전체가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추기경 가시는 길에 수십만 인파가 몰렸고, 신문·방송이 몇 날 며칠 야단법석을 벌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없는 이들에 대해 일방적인 철거가 이루어지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잡아갔다. 추기경이 온 삶을 바쳐 따라간 스승 예수는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라 하셨다. 정말 가신 이를 기린다면 ‘김수환’이라는 이름을 기릴 게 아니라 그분이 생전에 하셨듯,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고, 부자들이 ‘떼쟁이’라고 업수이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성당 문을 활짝 열 일이다.

성당이며 교회나 절에 다니지 않아도, 저 보잘것없어 보이는 아주머니처럼 버스에서 자기가 가진 귤이며 자리를 나누고, 보따리 멀찍이 앞에 두고도 무심할 수 있는 그 사건이 소중하고 귀하다. 무슨무슨 이름이 아니라 가난과 함께하는 그 사건.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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