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5 18:50
수정 : 2009.03.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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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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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칼럼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지라 늙어가는 이 내 몸이 오히려 더욱 슬프기도 해라. 반백이 넘은 이들에게는 이 ‘사철가’가 예사롭지 않을 터다. 담장 너머 늘어진 노란 개나리꽃 아래를 걸어가는 할머니의 동그랗게 휜 다리도 쓸쓸하다. 한때는 곧게 뻗어 뭇 사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겠지.
집 마당 한구석에 냉이가 지천으로 돋아났다. 뿌리를 캐다가 옮겨 심은 적도 없는데 어디서 저리 새파랗게 올라오누. 늘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렇지 신비도 이런 신비가 없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시커먼 땅속에서 저리도 푸른 잎이 나올 수가 있는 건가. 가을이 되면 또 있던 게 스러져 버린다. 나고 스러지는 이 신비 앞에서 억지로 줄기세포 만들어 한 백년 살려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나고 스러지는 덧없음을 주역에서는 음양(陰陽)이 서로 갈마드는 도(道)라 불렀다. 백성일용이부지(百姓日用而不知)라. 보통 사람들은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봄이 되면 냉이가 돋고 노인의 다리는 휘어가는 게 ‘도’인데, 지천에 널려 있으니 ‘도’인 줄 모른다. 초등학교 교문에서 봄 개나리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5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랬고, 다시 50년이 지나가도 그럴 게다. 하나하나는 다 다른 아이지만 영원히 똑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저 문을 나선다.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의 덧없음에 대해 한마디 했다. ‘정치하지 마라. 정치를 하면 그 누구도 정치자금이나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사생활도 철저히 망가진다. 명예나 권세를 좇는 사람들은 일부 그 욕심을 충족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너무 짧은 순간뿐이다. 나라가 잘되게 하려는 순수한 뜻을 가졌다 해도 실제로 정치를 통해서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이 나라 최고 권력의 자리에 가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니 그 뜻이 무겁다. 정치학 교과서에 따르면 정치란 권력을 쥐는 거다. 현재 우리 사회 구조나 국민들의 정치의식 등에 비추어 권력을 잡으려면 돈과 거짓말은 필수다. 그러니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정치자금과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정권은 당분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약자들의 희생과 국민들의 저항으로 얻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마저 불과 1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치로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 그저 반어법적 표현이라고 새겨들으면 될 일이다. 이 세계의 실상은 덧없다. 나고 스러지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똑같은 모순과 똑같은 사건들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며 상황을 만들어 내는 ‘조건’들을 조금씩 바꾸는 게 냉이가 돋고 개나리 피는 이 색(色)의 세계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로 바뀌는 게 별로 없다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경제구조를 정착시키지 못한 잘못이 있다. 정치는 경제에 의해 규정된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지난 두 번의 정권은 인민을 위한 정치에서 실패했다. 신자유주의 확산에 오히려 기여했으니 그렇다.
오늘도 초등학교 교문에서 아이들이 재잘대며 쏟아져 나온다.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게다. 개개의 아이들은 늙고 사라져 가지만 동시에 영원히 있기도 한 이 아이들을 위해 좋은 정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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