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2 23:03
수정 : 2008.10.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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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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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칼럼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과 경제관료들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지금 대한민국이 두려워할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고 외쳐도 국민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는다. 경제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가 취임 초기부터 밀어붙였던 고환율 정책으로 중소기업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앞장선 달러 모으기 운동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는 등 국가적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던 국민들이 왜 지금은 정부에 냉소와 불신을 보내는가? 그 이유는 20%를 넘나드는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그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대선 때의 약속을 10개월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선만 되면 주가를 3000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재 지수는 1200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또 한국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은 펀드를 사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아직까지 펀드를 샀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불과 6개월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대통령의 짧은 안목과 경솔한 언행이 국민적 불신을 불러온 셈이다.
그가 얼마 전 러시아 방문 중에 “금융문제에 선제적 대응을 잘해 피해를 줄였다”고 한 발언은 그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잘못된 환율개입 정책으로 두달여 만에 200억달러를 날리고서도 잘했다는 자화자찬 앞에서 국민들은 할 말을 잃는다. 불발로 끝난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 지분 인수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이 지분 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인수한 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면 한국은 리먼브러더스가 안고 있던 수천억달러의 채무를 그대로 떠안게 됨으로써 국가부도라는 대재앙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인수함으로써 한국을 금융허브로 도약시킨다는 산업은행 쪽의 꿈같은 환상에 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경제 관료들이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권 전체의 판단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경제정책의 기조를 성장에 둘지 아니면 물가관리에 둘지를 둘러싼 정권 내부의 혼선도 불신을 가중시킨다. 대통령은 물가관리를 강조하는데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전히 성장을 고집한다. 환율정책도 정부 개입과 시장 자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경제가 저성장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정부가 여전히 실현 불가능한 고성장 목표에 집착한다. 혼란과 불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거듭되는 경제실정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 직접 챙기겠다는 그의 독선도 신뢰회복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 대통령이 고환율 정책을 비롯한 각종 경제정책 실패의 장본인인 강만수 장관에 대한 문책 여론을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그가 과연 경제 위기를 제대로 타개할 식견과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권위주의 시대의 경제논리에 젖은 강 장관이 세계화 시대의 금융위기라는 미증유의 풍랑을 헤쳐 나갈 경제지휘관으로서 부적격자라는 점은 이제 논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해졌다. 따라서 경제난국을 수습하고자 할 때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장정수 편집인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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