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4 22:05
수정 : 2008.12.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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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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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칼럼
내년 1월20일 출범하는 오바마 정권의 동북아 정책을 전망할 때 가장 주목할 점은 외교안보팀이 주로 현실주의 노선을 추구해 온 ‘친중국’ 성향의 인물들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미국내 친중파 현실주의 전문가들의 구심점은 닉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면서 미-중 국교수립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헨리 키신저다. 키신저는 사적으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적 자문역을 수행할 정도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키신저는 후진타오 주석과 조지 부시 대통령 사이를 오가면서 두 사람을 설득해 2007년 북-미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힐러리의 남편 클린턴은 대통령 재직 때 미-중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설정하고 중국과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경제 자문인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도 친중파로 전해진다. 헨리 폴슨 현 재무장관을 비롯한 월가의 실세들도 대부분 중국에 우호적이다. 반면에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티머시 가이트너가 거의 유일하게 일본통으로 분류된다.
오바마의 사적인 외교분야 고문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헨리 키신저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현실주의 외교이론의 세례를 받았다. 국방장관으로 유임된 로버트 게이츠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한 제임스 존스도 스코크로프트 사단에 속한다. 반면에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장관과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일본부장을 구심점으로 하는 친일 성향의 외교전문가들은 대선 과정에서 존 메케인 공화당 후보 쪽에 줄을 섰다. 메케인의 대선 패배로 친일파들의 입지는 대폭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오바마 정권의 동북아 정책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민주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친중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으며 일본도 민주당에 대해서는 뿌리깊은 반감을 보여 왔다.
친중 현실주의자들의 외교팀 주도권 장악은 오바마 정권 아래서 미-중 사이 전략적 접근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전망이 가시화할 경우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해 이른바 패키지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최근 베이징 회담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북핵 협상은 오바마 정권의 출범과 함께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일본은 전략적 미-중 접근에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핵 검증 문제를 내세우면서 6자 회담의 진행에 거세게 저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이념적 적대감에 사로잡혀 일본의 이런 전략에 동조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과 중국을 한·중·일 3국 정상회담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중국이 주도하는 6자 회담을 견제하고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별도의 협상 무대를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한·중·일 세 나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경제문제에 국한될 경우 미국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동북아 안보 등과 같은 비경제적 분야로 확대될 경우 미국은 이를 적극 견제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한-미 동맹 강화를 중시해 온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포함한 대외 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 없이 주변국의 전략에 끌려다닐 경우 앞으로 예상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격동 국면에서 큰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장정수 편집인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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