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5 21:18
수정 : 2009.02.15 21:34
|
장정수 편집인
|
장정수칼럼
미국 오바마 정부의 북핵 전략 윤곽이 드러났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13일 뉴욕의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연설을 통해 밝힌 북핵의 해법은 크게 네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미국은 6자 회담의 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다룬다. 둘째, 북한은 도발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해야 한다. 넷째,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는 병행 추진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것은 핵폐기와 관계 정상화를 병행 추진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병행 추진에는 “북한이 진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이라는 까다로운 선행조건이 붙어 있어 그 실현성 여부가 매우 불확실하다.
클린턴 장관이 제시한 이런 원칙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대북 정책의 본질적인 전환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선 핵폐기-후 관계정상화라는 도식에 매달렸던 부시 정권에 비해 클린턴이 천명한 핵폐기와 관계 정상화의 병행 추진은 분명히 적지 않은 변화다. 하지만 클린턴의 해법은 핵무기의 전면 폐기와 농축 우라늄 의혹을 비롯한 선결과제들이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 북-미 관계 정상화가 추진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오바마 외교팀 내부의 반목과 분열이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 정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북한과의 조기 관계정상화를 주장하는 적극 협상론자들과 북한 핵포기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북한의 핵 유출과 추가 핵물질 추출의 통제를 주장하는 북핵 관리론자들 사이에 노선 갈등이 내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시아 정책을 주무르는 짐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내정자, 제프리 베이더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국장 등 미-일 동맹 중시파가 북핵 문제의 위기관리론을 주도한다.
반면에 대선 국면 때 외곽에서 외교문제를 자문했던 진보 또는 중도 성향의 전문가들은 북-미 관계 정상화가 실현될 때 북한이 체제 위기감에서 벗어나 핵무기를 궁극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북-미 양자협상을 강조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전 내부 파워게임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후보 시절 외교 브레인으로 활약한 커트 캠벨을 비롯한 미-일 동맹 중시파가 승리했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기용됐기 때문이었다. 클린턴 장관의 13일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은 외견상으로는 북핵 문제에 관해 포괄적 해법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핵 관리론자의 시각이 관철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관리론자들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다. 북-미 정상회담도 논의 가능하다.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의제를 제한했던 부시 정권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협상술이다. 이런 협상론은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 없이 협상을 위한 협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북핵 관리론자들의 의중에는 북한과 협상에서 부분적으로 양보하면서 협상 자체는 유지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현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협상전술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지난날의 북핵 협상사가 보여준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은 것처럼 대북 정책을 단순한 핵문제라는 구태의연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클린턴 장관이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정수 편집인
jsja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