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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8 19:09 수정 : 2009.03.08 22:11

장정수 편집인

장정수칼럼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압력 논란은 그 진위를 떠나서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사법부의 도덕적 권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다.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촛불재판 담당 판사들에게 보냈다는 전자우편이 어떤 경위와 목적을 갖고 있었는지는 앞으로 진행될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해당 판사들이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인사평가를 하는 법원장으로부터 조속한 재판을 종용하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받고 판사들이 느꼈을 중압감이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자우편 내용 가운데 한 판사가 위헌제청을 한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대법원장도 대체로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촛불재판에 대한 ‘높은 곳’의 지침을 간접화법 형식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청와대를 비롯한 관료사회에서 압력을 행사할 때 흔히 동원되는 수법의 하나가 바로 ‘윗분의 뜻’ 아니던가?

대법원의 ‘윗분’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6일 기자들에게 문제의 전자우편과 압력논란에 대해 일갈했다. “그런 것 갖고 판사들이 압박받으면 되겠느냐. 그런 정도 판사들이면 안 된다. 판사들은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할 수 있는 용기들이 있어야지.” 대법원장의 이 말을 방송뉴스를 통해 들으면서 나는 귀를 의심했다. 사법부 수장이 공개적으로 이번 논란의 본질을 뻔뻔스럽게 왜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 압력에 굴복한 판사들이 잘못이라는 투의 그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사법부 최고 지도자의 이런 발언은 해당 판사들을 용기 없고 비겁한 판사들로 매도하고 신 대법관의 재판 압력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번 재판 외압 논란은 이명박 정권 출범으로 10년 만에 권력을 탈환한 한국 보수세력이 이른바 ‘좌파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하는 민주주의 죽이기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촛불시위에 놀란 이명박 정권은 사회 각 부문의 개혁진보 성향 단체들과 구성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탄압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사법부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역대 독재정권 아래서 인권 유린과 정치적 탄압은 늘 법적 절차를 띠고 자행됐다. 사법부는 독재권력에 영혼을 팔고 그 대가로 영달을 누렸다.

지난해 9월26일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치욕적인 과거를 참회하는 사법부에 대해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촛불재판을 맡았던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조항의 위헌제청을 낸 것은 사법부 최고 수장의 반성에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11월 문제의 촛불재판 전자우편이 발송됐다. 사법부의 역사적인 반성은 이렇게 두 달짜리 단명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이 시기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이른바 ‘엠비(MB) 입법’을 밀어붙이고, 검찰과 경찰은 촛불시위 주도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는 등 이명박 대통령의 폭주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당시의 이런 정치상황은 촛불재판 압력의 배경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경우 사회정의는 실종된다.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때 존립할 수 없다. 사법부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독재화를 부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 사법부는 촛불재판 압력에 대해 진상을 소상히 밝히고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도덕적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법부가 도덕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장정수 편집인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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