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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7 18:19 수정 : 2008.07.07 19:20

김용택의 강가에서 ⑧ 강을 건너온 어머니의 호미질 소리

실개천 생태공원 운운하는데
아파트숲 속 논밭복원 어떨지

영화를 보러 가든 그림 전시장을 가든, 아니면 그냥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든 내가 전주에 가서 자는 집은 아파트입니다. 내가 자는 아파트는 무려 20층짜리입니다. 20층이니,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질어질하지요. 우리 라인만 해도 20층이니, 40가구가 삽니다. 우리 동네 가구 수가 14가구니 대단하지요. 한 집에 평균 3명이 산다고 해도 120명입니다. 우리 동네 전체 인구가 30명이니 이 또한 대단합니다. 그 20층 아파트 속에 내가 자는 방은 19층입니다. 전주 가면 나는 19층 공중에서 잠을 잡니다.

내가 자는 집 바로 앞에 상당히 넓은 빈 터가 있습니다. 아니, 빈 터가 아니고 밭입니다. 한 400평은 너끈히 되는 이 밭은 개인이 경작하는 밭이 아니라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 주변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밭입니다. 주인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그 밭을 어떻게 나누어 여기는 내가 짓고 저기는 누가 짓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밭의 뚜렷한 구획을 보면, 그리고 그 구획을 따라 심어진 여러 가지 농작물들을 보면 20가구가 더 넘게 농사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 밭을 내려다보거나 심기가 불편해서 베란다에 서서 화를 삭이며 그 밭을 내려다보면 아주 적절하고도 평등하고 확실하게 구획 지어져 있는 밭에서 이렇게 저렇게 채소들이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은 때로 내 마음을 가라앉혀 줍니다.

나는 진짜 잠을 일찍 잡니다. 9시 뉴스를 끝까지 보고 잠이 든 날은 아주 드뭅니다. 무슨 특별한 축구 경기가 있다거나 아니면 무슨 재미있는 영화를 한다거나, 아무튼 그런 특별한 날을 빼고는 거의 9시 이전에 잠을 잡니다. 어쩌다가 베란다에 서서 전주 문화방송 앞의 수많은 모텔 불빛과 교회 십자가와 그리고 모텔 거리의 그 화려한 술집의 불빛들을 보며 나는 고함을 지릅니다. “야 이 새끼들아! 밤이면 일찍 집에 가서 자빠져 자거라.” 그러나 그 거리의 밤은 11시가 넘으면 수양버들 물오르듯 싱싱하게 물이 오른답니다. 내가 거리를 향해 고함을 지르면 아내가 말립니다. 남이사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빗자루로 기타를 치든 당신이 무슨 간섭이냐고요. 그러나 밤이 되면 잠을 자야지요. 밤이 되어도 잠을 안 자고 자빠져 노는 사람들은 낮 동안 고된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요. 아무튼, 나는 물 좋은 곳에서 인간들이 실컷 물을 마시든 말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는데, 어디선가 호미질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나직나직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그런 두런거리는 소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다듬어진 세련된 그런 목소리가 아니라 오랜 농경사회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농부들의 순박한 말소리였습니다. ‘가만 있어봐 여기가 지금 시골이 아니고 전준디’ 하며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흙속을 파고드는 호미질 소리와 흙속을 파고들 때 호미 끝에 부딪히는 돌 자갈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였습니다. 분명 호미질 소리였습니다. 아침을 달리는 소란스러운 차 소리 속에서 들리는 호미질 소리는 의외로 확실했습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그 호미질 소리와 할머니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밭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아침이 오려면 멀었는데, 세 명의 할머니들이 따로따로 자기의 밭 두럭에 아주 자연스럽게 쭈그려 앉아 밭일을 하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괭이질·삽질…땅파는 소리랑
손끝서 자란 곡식 보여줄텐데

김용택의 강가에서
옛날 어머니들은 날이 밝기가 바쁘게 강 건너가 곡식과 풀이 분간이 가는 밝음만 있으면 밭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가서 일을 하면 거의 한나절 일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날이 밝으면 집에 와 밥을 해먹고 남의 집 일을 갔습니다. 그때 어머니들이 강 건너에서 호미질을 하는 소리를 나는 내 방에서 들었으니까요. 우리 동네 밭들은 대개 자갈밭이었지요. 주먹만 한 자갈들이 어찌나 많은지 흙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자갈밭에 곡식이 잘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자갈이 오줌을 싼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나는 호미가 자갈들을 건드는 어머니들의 부지런한 호미질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의 호미질 소리를 19층 아파트에서 듣는다는 것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했지요.

시골에 일주일만 있다가 전주 시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내 눈에 띄는 것은 여자들의 흰 다리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본주의 거리에서 여자들을 빼버리면 …” 운운하는 김수영의 글이 생각나곤 합니다.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자주 가는 우리 아파트 뒤에 있는 화산공원에 갔습니다. 화산공원은 전주 시내 중심에 있는 흙길이 좋은 작은 동산인데 아주 아기자기한, 원시림에 가까운 산입니다. 전주에서 잠을 잘 때면 나는 꼭 이 친구와 함께 산을 갑니다. 전주 예수병원 가는 작은 고개를 넘다 보면 그 산을 오르는 입구가 나옵니다. 그 산 입구 직전에 작은 밭이 한 뙈기가 있지요. 그곳에도 할머니들이 감자며, 콩이며, 고구마며, 고추며, 쑥갓이나 토란이나 상추를 심어 놓습니다. 지난달이었지요. 그 밭을 지나는데 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가문 땅에 고구마 순을 심고 있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고구마는 순을 길러 작은 줄기에 고구마 잎 두어 개씩 달린 순(줄기)을 땅에 심으면 그 연한 줄기에서 뿌리가 나고 줄기가 땅속으로 뻗어가며 고구마가 듭니다. 어떻게 저 연한 줄기에서 뿌리가 나고 그 큰 고구마가 드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튼, 그 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가문 땅에 고구마 순을 놓고(심고) 있어서 친구와 내가 “할매, 시방 겁나게 가물어분디, 그렇게 고구마를 놓아갖고 죽어불면 어쩔라고 그런다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우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구마 순을 아주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땅에 박으면서 “냅두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 것지라” 그러면서 “여그 물이 있어라우. 순 놓고 물 줄라요.” 나는 “할매, 나는 갈팅게 고구마 잘 키워 놓으쇼인. 오며 가며 내가 캐묵을 랑게” 그랬더니 “맘대로 허쇼” 하며 열심히 고구마 순을 놓고 있었습니다.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산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우리들은 그날 산책을 했습니다. 어제 그 길을 가며 밭을 보았더니, 한 포기도 죽지 않은 고구마 순이 싱싱하게 넝쿨을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전주 한옥마을에 갔습니다. 한옥마을에는 한옥마을 거리조성 일환으로 길을 넓히고 작은 실개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실개천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아기자기한 길을 조성해 놓았지요.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고 고풍스러운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 곳곳에 소나무와 느티나무와 작은 나무와 풀꽃들이 핀 거리를 한갓지게 걷다 보니 기분이 매우 한갓지고 상쾌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도시로 가져오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 길가 작은 공터에 또 채소밭이 있었는데, 쑥갓과 상추가 아주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밭이 마치 일부러 조경을 해 놓은 것처럼 보여서 기분이 좋았지요.

청계천 복원을 본뜬 많은 지자체들이 자기 도시의 개천을 환경 친화적이고 생태적이고 지속발전 가능한(나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지속’이라는 말과 ‘발전’이라는 말이 ‘가능’이라는 말을 억누르고 있는 불쾌한 기분도 그렇고, 지속이라는 말과 발전이라는 말은 이미 ‘구조적인 악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자본의 날카로운 손톱이 날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시대착오적인 토건업에 경제발전의 목을 매달고 있는 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개천으로 복원하고 생태공원들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파트 건물이 들어선 도시의 곳곳이 옛날에 논이나 밭이 아니었는지, 벼가 자라고 보리가 자라고 복사꽃과 살구꽃이 피는 과수원은 아니었는지. 시냇물만 복원할 게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 논이나 밭도 얼마쯤 복원해 보면 어떨까. 사람들이 공원에서 나무나 집이나 물만 볼 게 아니라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손이나 땅을 파는 호미 소리나 괭이질 소리, 삽질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은 어떨지, 허리 굽혀 땅을 파는 사람들 손끝에서 자란 곡식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떨지, 나는 그런 아주 ‘생태 순환적’이고 ‘친환경 농업적인’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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