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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4 18:31 수정 : 2008.07.18 10:40

김용택의 강가에서
⑨ 아니 저것들이 정말

아침마다 4시30분만 되면 어김없이 내 단잠을 깨우는 우리 뒷집, 그 뒷집 빈터의 닭은 보기에도 무섭게 생겼습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벼슬 색깔과 몸 색깔 붉기가 어쩐지 괴기스럽기까지 해서 보기만 해도 으스스합니다. 그 닭은 지붕만 빼고는 사방이 철조망으로 되어 있는 개집에 삽니다. 개 값이 좋을 때 만들어 개를 키우다가 개 값이 똥값이 되어버리니, 폐계 한 쌍을 사다 놓았지요. 언젠가 앞서 이 지면에 제가 쓴 ‘폐계’라는 시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그 폐계는 전혀 폐계 같지가 않습니다. 오랫동안 좁은 울 안에 갇혀 있으면 조금이라도 기가 죽어 어수룩할 때가 되었으련만 이 닭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고 되레 기가 펄펄합니다. 닭이 울 때는 홰를 치잖아요, 그런데 이 닭 집은 닭이 두 날개를 쫙 펴서 홰를 칠 만큼 넓지가 않아서 홰치는 소리가 아주 답답합니다. 홰치는 소리가 시원치 않아 ‘꼬끼요오오오’ 하는 장닭 울음소리 그 특유의 긴 여운이 없습니다. 닭 집을 지나다가 “욱!”하고 발을 굴러주면 이 닭이 ‘너 같은 것은’ 하는 몸짓을 하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어서 말 같지 않게도 닭한테 자존심이 팍 상할 때가 다 있다니까요. 어느 날 그 닭 집 앞을 지나다가 한번 나무막대기를 닭 집에 넣고 건드려 보았더니, 그냥 아무런 반응이 없데요. 그래서 다시 철조망에 넣은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더니, 이놈이 글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날개를 쫙 펴고는 앞발 두 개를 세우고 확 달려드는 거예요. 그 폼이 어찌나 기세가 등등하던지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나며 ‘저런, 저, 저, 닭대가리가’ 했다니까요. 옛날 정수네 집에 장닭 한 마리를 오래 키웠는데, 그 집 마당을 지나다가 닭이 나에게 달려들어 내 눈탱이를 쪼아 피를 흘리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일로 나는 시뻘건 벼슬이 축 처지고 몸이 붉은색의 장닭을 보면 지레 겁이 납니다. 그런 놈들은 대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앞을 똑바로 보며 끄덕끄덕 당당하게 걷거든요.

청둥오리는 떠날 줄도 모르고
철새인 줄 잊어버린 건지 원…

그런데 어느 날 닭장을 치우기 위해 이 닭을 내놓았다가 다시 몰아넣으려고 작대기로 슬슬 닭을 몰아가는데 이 장닭이 갑자기 자기를 몰아가는 종길이 아제의 정면을 향해 앞발을 세우고 날개를 퍼덕이며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거예요. 아제가 겁이 나서 “어메!” 하며 도망을 가는데, 그런데 이놈의 장닭이 푸드덕 날더니, 아제의 뒷덜미까지 날아올라 등에 착 붙는 거예요. 구경을 하던 우리들은 모두 기겁을 했지요. 사나운 개나 호랑이나 사자가 짐승에게 달려들 때 짐승의 뒷덜미를 공격하잖아요. 놀라웠지요. 성질이 난 아제가 작대기를 휘둘러 그 닭을 잡아 안 죽을 만큼 심하게 패서 닭 집에 도로 넣었습니다. 나는 종길이 아제를 향해 기세등등하게 달려드는 닭을 보며 엉뚱하게도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하신 분을 생각하며 혼자 괜히 쿡쿡 웃음이 나왔답니다. 그리고 이 닭의 이런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야 된다는 것이 ‘일관된’ 나의 생각입니다.

철새인 청둥오리들이 봄이 되면 자기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 봄이 가고 뜨거운 여름이 되어도 가지 않고 앞 강에서 삽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들이 철새인 걸 잊어버렸는지, 멀고 먼 길 오고 가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서 사는 게 좋아서인지 몰라도 오리들이 여러 해 전부터 앞 강에서 여름을 났지요. 이 오리들이 앞 강물 위를 날아다니면 사람들이 날아가는 오리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저것들 시방 미쳤는가벼, 왜 갈지를 몰라.” 어쩔 때는 동네 집 위로 가까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벼가 자라는 논으로 들어와 놀기도 합니다. 여름이 깊어지면 새끼들을 데리고 강물을 돌아다니는 것이 눈에 뜨일 때도 있지요. 어미 오리들을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들은 대개 열두어 마리쯤 되어 보입니다. 이 야생오리들을 본 사람들이 어찌 또 가만히 있겠습니까. 잡아다가 어떻게든 키워 ‘원조 야생오리 탕 전문집’ 을 만들고 싶겠지요. 온갖 꾀를 동원해서 한번 잡아보려고 하지요. 그러나 어찌나 이놈들이 약삭빠르고 눈치가 비상한지 그리고 쏜살같이 날래던지 사람들이 새를 잡는 총으로 총질을 하려고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풀숲으로 감쪽같이 숨어버립니다. 그러고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 비비거리며 돌아다니지요. 그물을 놓아 잡아보려고도 하고, 투망을 던져 잡아보려고도 하고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오리를 생포했다는 소식을 나는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김용택의 강가에서
며칠 전이었습니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마을 앞 정자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정자에 앉아 있으면 더운 여름에도 간이 다 서늘하게 시원합니다. 사방이 다 툭 터지고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에 강물이 흘러와 마을 앞을 지나 산굽이를 휘돌아 나가는 것이 끝까지 다 보입니다. (우리 군이나 이웃 군 마을마다 정자를 다 지어 놓았지요. 그런데 대개의 마을들이 마을의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장소를 잘못 잡아 지어 놓았기 때문에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이 풍경을 꾸며줄 뿐 여름 내내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지 않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된 정자가 한두 채가 아닙니다. 기왕 정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지요. 우리 마을 앞 강에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놀러 오는데 놀러 온 사람들이 동네 앞 강변이나 느티나무 밑에서 놀면 좋은데 이 사람들이 무례하게도 어른들이 누워 노는 정자에 아무런 실례의 인사도 없이 제집처럼 쓱 찾아들어서는 벌러덩 드러눕기도 하고 자빠져 자기도 합니다. 그렇게 타 동네 사람들이 동네 안까지 쳐들어와 정자를 차지하고 누워 있거나 자면 동네 할머니들은 한쪽 구석에서 그냥저냥 기죽어 지내기가 일쑤지요. 누워서 조용히 잠이나 자면 좋은데 안하무인으로 떠들고 동네가 떠나가게 웃어제끼기도 하고 오만 지랄들을 다 합니다. 동네 인심 야박하다고 할까봐 꾹 참고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튼 그 시원한 정자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오리 두 마리가 동네 가까이 마을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동네 집 위를 빙빙 돌며 날아다니는 거예요. 오리들이 강물 위나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데, 동네 집 지붕 가까이 날아다니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뭣이냐, 좀 거시기하더라고요. 내 옆에 누워 있는 만조 형님더러 “저것들이 미쳤나. 마을 위를 다 날아다니게” 그랬더니 “아까부터 나도 보고 있었어. 요새는 저것들이 정자나무 밑에도 앉아 있데. 참 내” 하는 거예요. 우리들이 자기들 흉을 보고

동네어른 모여 쉬는 정자에는
피서객들 인사도 없이 벌러덩


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리들은 동네 위를 두어 바퀴 돌더니, 어? 어? 하는 사이에, 세상에 이것들이 놀랍게도 집 위를 지나는 전깃줄에 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형님, 형님” 하며 전깃줄에 앉으려고 파닥거리다가 도로 날고 또 앉으려다가 푸드덕 날아오르는 오리를 보고 내가 형님을 부르며 “야! 야! 야들아! 너그는 참새가 아니고 오리거든” 하며 자기들이 오리임을 일러 주어도 오리들은 계속 전깃줄에 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한 쌍의 오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전깃줄에 앉으려고 푸드득거리다가 결국은 성공을 못 하고 날아갔습니다. 우리 바로 코앞에서 감히 그딴 짓을 하다니, 정말 놀랍잖아요. 자기들이 철새인지도 잊어 먹고 텃새 노릇을 하는 것도 나는 아직 그 이유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것들이 참새가 전깃줄에 예쁘게 앉아 노는 것을 어디서 보기는 보았는지, 아니면 지들이 참새인 줄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는 것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오리발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리가 줄 타는 남사당패가 아닌 바에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물갈퀴 발을 갖고 있는 오리는 전깃줄에 앉을 수 없습니다. 전깃줄에 앉으려면 전깃줄을 발가락으로 착 감아야 하는데 오리 발가락의 구조가 절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또 몸의 무게와 다리의 길이가, 그러니까 몸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그렇게는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참새들이나 제비들이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새이니 한번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지 모르지요.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어찌 오리가 전깃줄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전깃줄에 앉으려고 하다니 말이 됩니까. 분명 아주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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