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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4 18:37 수정 : 2008.08.04 18:37

김용택의 강가에서 ⑫ 사람의 얼굴이 그립습니다

뭉게구름 솟아오르는 초록들판
해맑은 얼굴들, 정겹던 마음들…

세상이 무섭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수많은 일들이 다 생명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일들입니다. 일상을 위협하는 불안한 일들이 너무 생생하고,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게 곧 닥칠 일들만 같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그저 아슬아슬하게 모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날들이 지속되다보니, 우리에겐 언젠가부터 먼 훗날을 계획하고 기약하는 삶이 아니라 순간을 모면하려는 순간주의와 찰나주의가 만연되어 이런저런 사회적 불안을 우리들 스스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미 어떤 집단이 통치하고 통제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상실했는지도 모릅니다. 정치는 스스로를 부패시켜 사회의 각종 오염원이 된 지 오래고, 종교인들의 종교 외적인 탐욕을 해결하고 통제하기가 그리 쉽진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무종교의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나라의 모든 교육의 방향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대학 교육은 취직장사 학원사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총장들의 ‘세일즈’로 교정에는 우람한 건물들이 솟지만 교육의 질도 그러한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지성을 포기한 채 시대착오적인 지식을 파는 지식인들과 대학의 타락은 지금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정신적 불구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세계에 대한 고민 없는 ‘싸늘한 직업인’이 된 교사들을 볼 때마다 나는 무섭습니다. 예술 또한 얄팍한 ‘지방 자치적 값싼 이벤트사업’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간성과 진지함,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이 회복 불가능한 곳까지 와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겨울 빈 들녘 옥수숫대처럼 우린 지금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사랑이 사라진 거리에는 슬픔마저 사라졌습니다.

작은 동네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런 일들로 동네는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도 문씨들과 김씨들 간의 감정적인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두 문중의 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거든요. 김씨와 문씨들 간의 개인적인 싸움은 늘 집단적인 패싸움으로 번져 온 동네의 일상이 정지되는 난리를 한바탕씩 치르곤 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두 문중의 팽팽한 힘의 균형이 마을을 활기차게 지탱시켜주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리 큰 싸움이 벌어져도, 그래도 최소한 마을 공동체를 깨뜨릴 만한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선 순간 그 마을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몸에 밴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말하자면 ‘막가지’는 않았지요. 다시 말하면 안 보면 그만이라고 안면 몰수하는 요즘 세태와는 전혀 다른 그런 일상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싸움과 분쟁들이 발생하면 조용하기를 기다려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어른들이 나서 옳고 그름을 따져 서로 화해하게 했습니다. 마을 앞 정자나무 바로 밑에는 넓적한 바위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 바위에는 아무나 앉지 못했지요. 동네의 크고 작은 분란의 가르마를 타시는 어른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는 동네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같이 먹고 일하면서 놀며 한 마을의 공동체를 가꾸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경우였습니다. 반듯한 경우라는 것이 일상적인 일 속에서 나왔습니다. 논을 갈고 고르고 모를 심고 가꾸어 쌀을 얻고 또 논을 쉬게 해서 논의 힘을 길러 다음해에 새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와 순리와 순환을 알고 자연을 따르는 자연친화적인 삶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자연 가까이 다가가려는 삶이, 서로 몸과 마음을 기댄 평화와 공동의 삶을 가꾸게 했지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엄청난 공부를 하지 않고 살아도 동네는 물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처럼,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곡식들이 자라 익은 것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이 잘 돌아오고 돌아갔습니다. 작은 마을의 모든 자연은 교육 자료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교육자였습니다.

나는 무섭습니다. 나라의 모든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려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1등을 향해 달리는 이 무지한 질주가 가져올 필경이 무엇일지 나는 무서운 것입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 외에 삶의 내용이 없는 지독한 개인주의 배타주의 이기주의 독선주의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이웃에 대한 ‘무심주의’가 학교에서 길러진다는 데 대해 나는 무섭습니다. 돈은 많은데 삶이 빈한한 이 풍요로운 빈사 상태의 공허한 삶이 나는 겁납니다. 국가는 이를 말리고 고르고 다듬는 정책을 쓰지 않고 그러한 문제점들을 더욱더 부추기고 격화시키는 정책에 매달려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전반적인 양극화의 간격을 넓혀 온 셈이 되었지요. 우리의 교육은 지금 남이야 죽든 말든 혼자만 잘 먹고 잘살라고 다그치고 닦달하고 있습니다.

김용택의 강가에서
같이 먹고 일하면서 같이 놀았던 동네 사람들은 일을 할 때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모두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내기할 때, 집을 지으며 지붕에 흙을 얹을 때, 명절날 굿을 칠 때, 동네 사람 모두가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쟁기질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지게를 잘 만들고, 어떤 사람은 삼을 잘 삼고, 어떤 사람은 짚신을 잘 만들고, 모내기철이나 바쁠 때는 주전자 들 힘만 있으면 아이들도 모두 집안일과 동네일에 힘을 보탰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정자나무 밑에 앉아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켰습니다. 정말 마을은 완전고용이 저절로 이루어진 사회였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한몫한다’고 했을까요.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우리를 지탱시켜 주었던 정신도 무너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난을 외면하고 멸시하는 천박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할 때 노는 사람이 없는 세상, 굿 치고 놀 때 엄마 등에 업혀서 둥개둥개 춤을 추는 아기까지 한 장단으로 각기 다른 몸짓으로 춤추며 노는 세상,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던 세상, 그런 세상이 있었습니다. 공동의 생명체가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삶의 모습이 작은 마을에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뜻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포기한 독선적인 지도자들과 영혼이 없는 관료들의 부정과 부패로 백성들이 열 받는 세상, 학벌, 지연, 혈연, 패거리 문화가 암암리에 조직화, 제도화되어 거대한 권력화, 상식화, 일상화가 되어버린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희망도 없이 어떻게든 잘만 살면 그만이라는 경제제일주의가 살벌한 경쟁의 우리 속으로 우리들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서로 물어뜯어야지요. 서로 싸워 누르고 딛고 올라서야지요. 우리들은 지금 꼭대기로, 맨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처절한 싸움판 속에서 삽니다. 인간으로서 품격과 품위를 내팽개친 발가벗은 몸들이 진흙탕 속에서 사생결단하고 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야만이지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결혼한 젊은이들이 아기를 갖지 않으려는 참으로 기막힌 현상입니다.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세상’에다가 자기 아기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가난하고 조촐했으나, 자연과 인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그 정답던 마을, 뭉게구름이 하얗게 솟아오르던 파란 하늘 아래 초록의 들판 길을 걸어가는 땀 밴 농부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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