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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1 18:25 수정 : 2008.08.11 18:25

김용택의 강가에서
⑬ 집을 떠나 강연을 다녔습니다

방학 중에 며칠간 강연을 다녔습니다. 강연이, 어떤 해에는 경상도 지방으로 많이 가게 되고 어떤 해는 전라도 남쪽 지방을 주로 가게 되고 어떤 해는 또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가게 되고 그러데요. 군소재지 작은 도서관을 여기저기 돌 때도 있습니다. 소들이 동쪽 풀을 다 뜯어 먹고 서쪽으로 옮겨 풀을 뜯고 그러다 보면 또 동쪽 풀이 길어 동쪽으로 풀을 뜯으러 이동하고, 뭐 그런 식이지요.

강연을 다니면서 내가 가야 할 장소를 한 두어 번 들으면 정확하게 그 장소를 찾아가곤 합니다. 하도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길을 찾아가다가 이게 아닌데 하면 정말로 그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난주 수원 희망도서관을 찾아갈 때는 정말 진땀이 났습니다. 서울 갈 일이 있어서 일 보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인천 쪽으로 가면서 나를 부른 그분들이 일러준 대로 길을 찾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복잡했지요. 정말 우리네 삶만큼이나 길들은 이리저리 어지러웠고, 길을 잘못 찾아들어간 작은 도시들은 하나같이 정말 그렇게나 속이 수선스럽고 시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 도서관을 찾아가서 강연을 끝내고 시내로 놀러 간 아내를 기다렸는데 아내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강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어기지 않고 나를 기다렸는데 그날은 아내가 안 보여 전화를 했더니, 시내 구경을 나가 길을 잃어서 지금 택시를 앞세우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택시가 오지를 않아 전화를 세 번이나 해서야 아내가 택시를 앞세우고 나타났습니다. 택시비가 6900원 나왔다며 아내는 투덜거렸습니다. 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그 택시 기사가 이리저리 자기를 끌고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하는 짓이 괘씸해서 생각할수록 더 열 받을 때가 있지요.

삼천리 방방곡곡 산천은 아름다운데
시설물들은 욕심이 꼭지까지 가득차

김유정 문학관을 갔다가 왔습니다. 하루 전날 안산에서 강연을 하고 강원도 쪽으로 가다가 양수리에서 잤습니다. 아침 일찍 북한강을 따라 춘천 가는 길을 달렸지요. 강가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들이 펼쳐졌습니다. 어디만큼 가다가 아침을 먹었는데, 반찬이 깔끔하고 정갈한 게 맛깔스러웠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특히 매운 청양고추를 쫑쫑쫑 썰어 넣어 끓인 된장국은 우리들의 아침을 기분 좋게 해 주었습니다. 밥이 맛이 있다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며 집에서 만든 순두부 한 대접을 덤으로 주었습니다. 계산을 하면서 우리가 첫 손님이니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요. 주인아주머니는 기분이 그렇게 좋은지 우리가 차 타는 데까지 따라 나오며 얼굴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내는 남이섬에 가자고 했습니다. 남이섬은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시설물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는 곳을 피하고 섬 둘레의 흙길을 걸었습니다. 호숫가로 난 산책길은 좋았습니다. 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기도 하고 앉아 쉬기도 하며 섬 둘레를 돌았습니다. 곳에 따라 수종이 다른 나무들은 우람했고, 울창한 숲으로 난 흙길은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차분하게 가라앉아 산을 보고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곱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이런저런 작은 집들과 찻집과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은 그리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우리 관광지들은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 중구난방으로 집을 짓고 시설물들을 만듭니다. 좀 폼나고 격 있게 하면 안 됩니까. 삼천리 방방곡곡 산천은 아름다운데 사람들이 해 놓은 집들과 시설물들을 보면 욕심이 머리꼭지까지 가득 차 있어서 저절로 욕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들 그러겠지요. 내가 관광지의 조잡한 시설물들과 가게들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면 아내가 옆에서 당신은 관광지만 오면 왜 비 맞은 스님처럼 혼자 중얼거리냐고 합니다. 어떤 스님이 시원한 모시옷을 뻣뻣하게 풀 먹여 다려 입고 들길을 가다가 소낙비를 맞았답니다. 비를 피할 곳을 이리저리 찾다가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가 옷을 보니, 그렇게 빳빳하고 정갈하게 갖추어 입은 옷이 비 맞은 장닭처럼 후줄근하게 되어버려 스님이 어디다가 욕은 못하고 그냥 혼자 거시기 머시기, 투덜투덜, 툴툴툴 중얼거렸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비 맞은 중처럼, 아니 비 맞은 스님처럼 무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냐고 한답니다.

우리는 그 섬을 나와 강원도 춘천으로 갔습니다. 너무 일찍 김유정 문학관에 도착해서 소양댐을 먼저 갔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새야, 새야, 새야.’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박수를 쳤습니다. 소양강 댐에 가 보았으나, 휘 둘러보고 그냥 아무 감흥 없이 내려왔습니다.


전주에서 구미까지 2시간이면 도착
어쩌면 이렇게 길을 뻥뻥 뚫었을까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집에까지 언제나 갈까 하며 걱정을 했는데, 서울 쪽으로 가다가 경부선을 탔더니, 세상에 전주가 금방이었습니다. 돌아다녀 보면 그렇게 멀게만 생각된 도시들이 너무나 금방 나와 버려서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니, 전주에서 강원도 춘천이 어딥니까? 그런데 세 시간 만에 전주엘 와 버린 거예요. 구미에서 강연 요청이 왔을 때는 너무 멀어서 사양했으나 또 한 번 연락이 와서 그러면 그러마고 했지요. 그런데 전주에서 대전을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갔더니, 글쎄 2시간 만에 구미에 도착을 해버려서 어이가 없더라고요.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이 무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길들이 사통팔달 구석구석 뚫려 있다는 것이지요. 뻥뻥 뚫린 길들을 달리다가 보면 참으로 대단해요. 어쩌면 이렇게 자연 앞에 한점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길을 쭈우욱 뻥뻥 뚫었냐고요, 글쎄. 아무튼 전주에 와서 막 자려고 하는데 소설 쓰는 공선옥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춘천에 사는지 알면서 나에게 연락도 안 하고 강연만 하고 가버렸냐는 것입니다. 놀랐습니다. 정말 깜빡했습니다. 공선옥이 춘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만 감쪽같이 까먹어버린 것이지요. 사람이 이렇게 깜빡할 때가 있지요. 나도 정말 서운하고 아쉬웠습니다. 공선옥은 촌년(?)이지요. 나는 촌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촌사람들은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도시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무심해요. 인간들이 많이 모인 도시가 만들어낸 습성이지요. 공선옥은 전주 오면 우리 집에서 자며 오만 가지 이야기들을 다 하거든요. 마음을 탁 풀어놓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옛날 시골에 살 때 친구들과 밤새워 놀던 그 정답던 시절이 떠오르곤 했거든요. 푸근하고 정답고 다정함을 가진 촌사람은 금방 촌사람을 알아봅니다. 물론 그 촌스러운 소박함에다가 발라당 까진 도시의 그 약삭빠름을 뒤섞어 놓은 정말 어찌하지 못하는 놈들도 많지요.

김용택의 강가에서
하루는 섬진강 곡성으로 강연을 갔습니다. 그날은 아내를 쉬게 하고 나 혼자 천천히 강물을 따라 갔다가 강물을 거슬러 왔더니, 시골 우리 집이데요. 동네 정자가 텅 비어 있어 할머니들 다 어디들 가셨냐고 하니까 모두 병원에 가고 머리 하러 미장원 갔다고 합니다. 동네 할머니들은 병원을 관광 가듯 단체로 갑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나서 한방병원으로 가서 물리치료를 하고 점심을 드시고 오시는데, 혼자 가면 심심하니 그렇게 단체로 간답니다. 내 딸은 이런 할머니들의 병원행을 할머니들의 ‘취미생활’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뒤꼍 텃밭에서 강냉이하고 풋고추를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 줍니다. 나는 또 내일 강연을 가기 위해 중간 ‘캠프’인 전주를 향합니다. 들길에 벌써 올벼 모가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내기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모심어 놓고 금방 벼 벤다고 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모내기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참 세월 빠르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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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용택의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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