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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8 21:17 수정 : 2008.07.03 15:36

“담요 드릴 테니 사인해 주세요”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②

제왕절개 뒤 깨어난 병원과 이혼수속 법원에서 이름 탓에 치른 곤욕 아닌 곤욕

어떤 사람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기실 이름처럼 그 사람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신간을 내고 사인회를 하면서 가끔 독특한 이름 때문에 깜짝 놀라곤 하는데 양송이나 전세계, 강한, 최고야, 손로몬 등등은 이제 그렇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우리, 이중성, 장애자 등의 이름을 적어 줘야 할 때는 아무래도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짓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을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 보느라 그러는 것이다.

안성기·강성기·전성기·여성기…

내 친구의 어머니쪽 자매들의 이름은 일년이 이년이부터 시작해서 칠년이까지 있는데 … 궁금한 것은 그 아버지가 호적 신고를 할 때 어떻게 딸이 계속 태어날 줄 알고 첫딸에게 ‘일’이라는 숫자를 붙여주었을까 하는 일이다. 만일 첫딸 이후에 아들이 죽 태어났다면 일년이라는 이름은 그냥 독특한 하나의 이름이 되는 걸까? 그런데 나는 첫딸이 일순이거나 일숙이거나 초자 혹은 초숙이거나 하는 사람들이 여자 동생을 보지 못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으니까 그토록 아들을 바라던 시절의 일치고는 좀 이상하긴 하다. 어쩌면 이름은 그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 사람에게 바라는 그 주변 사람들의 바람이 맺힌 일인지도 모르겠다.

술자리에서 이름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것이 또 있다. 남자 이름 중에 아마도 성기라는 이름일 것이다. 국민배우 안성기씨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지만 강성기, 전성기를 지나 남성기, 여성기에 이르면 실은 약간 발음하기가 좀 어색하다. 게다가 내가 아는 여성기씨는 남자분이고 내가 아는 남성미씨는 여자분이니, 쩝!


얼마 전에 만난 한 여성은 이름이 계자였는데 마침 날이 더워 냉면집에 가니 여기저기서 그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겨자라고 하면 될 것을 꼭 계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이는 푸념했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계자씨, 계자씨! 하고 있으려니 찬송가에 나오는 겨자씨 한 알이 어쩌구 하는 노래가 연상되었고 젊은이들이 하듯이 계자님! 하고 부르려니 계장님 같기도 했고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니 약간 힘이 들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가는 곳에는 이름 때문에 화제가 그칠 날이 없다면서 자신의 형제들이 ‘계’ 자를 돌림으로 쓰는데 그 수많은 글씨 중에 하필이면 계자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나이가 쉰이 넘은 지금도 이름 이야기만 나오면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새로 부모가 되는 사람들은 잘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계자씨 때문에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자기가 아는 이름을 한 가지씩 말하기 시작했는데, 천왕성·이름·서강대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변태, 이인간에 이르면 좀 민망해진다. 서강대씨는 자기 소개를 할 때 한국대 08학번 서강대입니다, 해야 할 텐데 그 사람은 서강대를 들어가는 게 나을까 아닌 게 나을까, 만일 서강대를 들어갔다면 서강대 08학번 서강대입니다, 해야 하나? 하지만 이인간, 이변태는 어떻게 하나 싶다. 은행에 앉아 있는데 “이인간님!” 한다면 여름의 해변에서 방송이 흘러나오는데 “어린이를 찾습니다. 이변태 어린이” 한다면 ….

“공지…”에 깜짝 놀라는 버릇

서론이 길었는데(어떤 사람이라도 이 화제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서론이 길겠지만) 이름에 대한 짧은 생각들은 얼마 전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쓴 문인들의 필명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이었다. 나 역시 이름 때문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나는 아직도 모임 끝에 지금부터 공지 … 하면 깜짝 놀라는 버릇이 있다. 오래전부터 그래 왔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공지사항이라는 말 때문이다. 공지, 까지 할 때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버릇은 학교 다닐 때부터 생긴 것이니 아직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약간 화끈거린다.

하지만 이건 사소한 일이고 내가 왜 작가로 데뷔를 하면서 필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후회를 하고 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딱히 동경이 가는 이름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써서 이렇게 이름이 알려질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알려져 유리할 때도 가끔 있다. 한번은 공항에서 짐을 부치는데 짐이 중량을 초과했다. 내가 좀 당황하고 있자니 담당 아가씨가 “저 선생님 팬이에요” 하며 살짝 눈감아 준 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벌써 15년 전쯤 둘째를 낳던 날이었을 것이다. 첫아이를 수술로 낳았기에 둘째도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에 들어갔다. 원래 제왕절개 수술은 하반신만 마취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마취가 잘못되어 그만 코까지 마취되는 바람에 병원의 비상벨이 울리기까지 나는 유일하게 감각이 있는 눈만 깜빡거리며 “음, 참 이상하게도 죽는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 몹시 추웠다. 나는 알몸이었고 홑겹의 이불이 하나 덮여 있었으니까. 아직 얼얼한 상태로 덜덜 떨고 있는데 간호사가 지나가길래, “저 춥거든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간호사는 무심히 내게 다가오다가 내 이름을 보더니 과장되게 말해서 비명을 질렀다.

“아아 선생님, <고등어>하고 <무소의 뿔>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 쓰신 그분 맞죠? 아아 여기서 뵙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저 팬이에요! 사인 좀 해주세요.” (그 간호사도 지금은 아이를 낳아 보았겠지. 혹시 수술했다면 깨어날 때 얼마나 추운지 알겠지.) 솔직히 말해 약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지금 내가 사인할 때예요?”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는데 비명소리를 들은 간호사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더니 “아아!! 선생님!!! 선생님!!!” 하더니 한 술 더 떠서 동료들을 불러대며 “이리 좀 와봐! 여기 진짜 공지영 있어!” 하는 것이었다.

알몸이 보일까봐 홑겹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아 춥다구요, 담요를 좀 주세요” 하고 있는데, 이 간호사들은 그런 내 모습이 뭐가 우습다고 까르르 웃으며 “선생님, 그럼 담요 드릴 테니 사인해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담요를 두 개 더 덮는 조건으로 알몸이 보일까 조심조심 팔을 내밀어 한 열 명의 간호사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내 오른쪽 팔이 아직 시큰거리는 것은 그때 조리를 잘 못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눈물 범벅으로 법원 나오다 터진 웃음

또 한번 기억나는 일은 몇 년 전 이혼을 할 때의 일이었다. 법원에서 이미 별거 중인 전남편과 만나 함께 서류를 제출해야 했는데 한 시간쯤 있다가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가니 그날따라 이혼하는 부부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커다란 로비에 가득 이혼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 있었고 모두가 제각각의 방향을 보며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봐 주눅이 든 나는 실내로 날아든 꿩처럼 어찌 됐든 구석진 자리를 찾아 겨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화장실 옆 복도 끝이었던 것 같다. 창밖을 바라보며 훌쩍이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어떤 남자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가 내게 내민 것은 내 책 두 권이었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내 얼굴에 경악의 빛이 어렸을 것이었다. 내가 손을 내젓자, 그가 말했다. “아까 접수하시는 것 보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지금 힘드시다는 것도 압니다 …. 하지만 선생님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이 아니면 제가 언제 선생님을 뵙고 또 언제 사인을 받아 보겠습니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서점에 가서 얼른 책을 두 권 사왔습니다. 선생님 제발 ….”

한 십오 분 실랑이를 벌였을까. 나중에는 실랑이를 끝내기 위해 나는 결국 그에게 사인을 해주고 말았다. 그의 말에도 나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다시 법원을 나오는데 그 남자가 계속 떠올랐다.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삶은 꼭 한 가지 빛깔로만 칠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름에 대해서도 역시 말이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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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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