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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소함을 앗아간 물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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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저녁 외식의 여유를 포기하게 하고20년 전의 부모 마음까지 헤아리게 하다니 주말은 완벽했다. 스케줄도 없었고 황사도 걷혔고 날씨는 화사했다. 창문을 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월 아침의 싱그러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나는 벼르던 옷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음악을 좀 크게 틀어놓고 입을 옷과 입지 않을 옷 그리고 다음 계절에 입을 옷을 나누며, 평소에 쓰지 않던 몸의 부위를 조금씩 운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방은 난장판이었지만,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리고 다시 정리하고 났을 때의 개운함은 누가 뭐래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옷 정리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새로 문을 연 집 앞의 숯불구이 장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모든 게 셀프서비스라는 흠이 있긴 하지만 장어도 맛있고 값도 싸서 넓은 주차장이 꽉 차는 식당이었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조금 일찍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맹물이나 콜라를 주고 딸아이와 나는 약간의 소주도 곁들일 그런 생각도 했다. 젊을 때 <사랑이 끝난 후의 담배>라는 다소 멜랑콜리한 샹송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대청소가 끝난 후의 소주라니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그때 딸아이가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엄마, 뭐 해?” “뭐하긴 옷장 정리하고 있지” “엄마 지금 춤추고 있을 때야? 물대포 쏘아서 사람들이 다쳤대 …. 인터넷 좀 봐봐. 지금 장난이 아니야.”
“엄마 지금 춤추고 있을 때야?” 딸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그때까지도 거의 아무것도 짐작하지 않은 채로 인터넷을 켰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생각하는 일이지만―아마 숭례문이 불타던 그날부터였을 것이다―뉴스를 보거나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올라가고 몸은 요란하게 니코틴을 부르는 증세가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나는 내 몸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처참한 동영상을 보는 순간, 이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딸과 함께 동영상들을 보면서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아아, 안 돼. 난 <한겨레> 원고를 써야 해!”였다. 딸 위녕이 둥그렇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모기만한 목소리로 다시 변명하듯 말하고 말았다.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쓸 거라고 했단 말이야. 작가 생활 이십년 만에 이런 약속을 한 게 처음인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가볍고 사소한 이야기를 써! …” 위녕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는 거실로 나가 뉴스 채널을 틀었다. 물줄기가 시청앞 광장을 가로지르고 버스에 올라간 시민들이 떨어져 내리고 여학생이 머리채를 잡히더니 군홧발로 머리를 짓밟히고 있었다. 기억이란 건 참 이상하다. 갑자기 아무 방비도 없이 나는 80년대에 서 있는 듯했다. 그때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 아이들이 이제 셋이나 생겨나 내 곁에 있는데 그들의 존재는 다 잊어버리고 나는 오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영화 화면으로 비유하자면 나 혼자만 남고 내 주변은 조도가 몹시 올라가 흐릿해지면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의 어느 광장으로 이동해 서 있는 듯한 그런 환각이었다. 경찰청장이 나와서 ‘경찰이 행한 폭력 사태에 대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환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똑같이 돌아가고 있었다. 저렇게 시작되었던 시위에서 죽어간 후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덧 거실에 틀어놓은 티브이 앞으로 아이들 셋이 다 모여들었다. “엄마,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도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이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잖아.” 딸아이가 말했다. 내가 멍한 채로 대답을 하지 않자, 딸 위녕이 다시 말했다. “엄마는 설마 내가 광화문으로 간다면 말리고 그러진 않겠지?”
그땐 부모님을 비겁하다 비난했었지 아이들 셋이 일제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저기 … 저기는 차라리 엄마가 갈 테니 너희들은 집에 있어. 그래! 그게 좋겠다. 너희는 일단 집에 있고 엄마는 저기로 가고 ….” 나는 아주 좋은 생각을 해낸 듯이 기쁘게 말했다. “엄마 386 세대로서 그게 할 말이야? 게다가 작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딸이 대꾸했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딸이 다시 말했다. “엄마도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랑 똑같은 거잖아. 그때 그래서 그렇게 싸웠다면서?” “뭐가 같아?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런 데 못 가게 했긴 했지만 자기네가 간다고도 안 했어!” “결국 같은 거지! 못 가게 하는 거니까.” “뭐가 같니? 그건 엄연히 다른 거야.” 나는 자신 없이 말했다. 아아, 이명박 정부가 내게 20여년 전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 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젊은 나를 말리던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그 순간 통째로 느낄 수 있었고, 약간 통증이 일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 무렵 그저 우리 부모님을 비겁한 시민이라고만 비난하고 있었고 지난 28년 동안 한 번도 이 생각을 바꿔본 적이 없었다. “엄만 나보고 어디든 다 가 보라며? 네가 원한다면 사막도 가 보고 높은 산에도 올라가 보고, 세계의 오지도 가 보라며? 그런데 왜 광화문은 안 된다는 거야?” “네가 사막에 가고 산에 올라가고 세계의 오지에 간다면 물대포 쏘고 네 머리 휘어잡고 때리는 사람이 없지만 … 광화문엔 있잖아.” “엄마, 저기 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휴대전화가 가끔 불통이 된대. 우리 모두가 저기 가서 경찰에 가면 누가 우리 면회 오나?” 막내 제제가 물었다. 그러자 둘째 둥빈이 대답했다. “그거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시겠지!”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위녕이 다시 말했다. “불쌍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때문에 경찰에 왔다 갔다 하셨다는데, 이제 우리 형제들과 엄마 때문에 또 경찰서로 오셔야 한다니.” 우리 가족은 이미 광화문으로 나가서 각자 흩어진 채로 경찰서로 모두 연행된 듯했다. 나는 아이들이 광화문으로 가는 광경을 그려보았다. 거기서 방패로 맞고 물대포에 젖어 생쥐 꼴이 된 채로 끌려가는 광경을 ….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 생각이 계속 났다. 내 귀가 시간을 체크하면서 나를 야단치시던 그분들의 마음을. 아이들을 키워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던 이 유명하고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가슴에 사무칠 수가! 게다가 나는 결코 그걸 깨닫고 싶지도 않은데! 한나라당 해커를 둘러싼 설전 우리는 저녁 외식을 포기하고 치킨에 생맥주를 시켜 온 가족이 티브이 앞에서 그것을 먹었다. 지난 독일 월드컵 이후 나는 가장 오래 텔레비전을 봤다. 우울한 내 얼굴을 보았는지 둥빈이 제 방으로 가더니 나를 불렀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해킹한 해커가 설치해 놓은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못생긴 고양이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말하나 말하나 마나! 머리 맞나 진짜 머리 맞나. 헬멧 같은 이게 머리 정말 맞나.’ 아들 녀석 둘이 동영상을 반복해 들으며 낄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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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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