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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의 깨달음과 촛불집회 오징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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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딸의 머리칼을 그을리고 변상해 주겠다는 남학생의 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진 밤 내가 오랫동안 만나온 사형수 중 한 명은 지난 부활절 무렵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해 보면 지난 10여년, 사형수로 지내며 죽음을 기다리던 하루하루가 자신에게는 실은 생명의 길이었다고 말이다. 내가 가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사형수가 정말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지만, 정말이다. 그들은 우선 10여년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교화위원들과 종교위원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달라진 사람들이다. 지난 10여년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잃어버렸다는 사람들이 웬 땅과 건물은 그렇게 많이 모아들였는지 이상하긴 하다. 땅을 사느라 현금과 보석과 금붙이와 유가증권을 잃어버렸다는 말인가 원, 쩝!- 우리나라에서 제일 달라진 게 뭐냐고 물으면 나는 일단 고속도로 화장실과 경찰이라고 대답했는데 이제 그 대답을 수정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니 이제 경찰 대신 사형수들이라는 목록을 끼워 넣으면 어떨까 싶다. 그 사형수는 유명한 조폭 출신이다. 어느 조폭 출신의 ‘삐딱한 책’에 관하여 그는 이런 말을 했다.“생각해 보면 지난 10년 동안 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조성애 수녀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분이 저를 사람 만들어 주셨어요.” 조성애 수녀님은 내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에서 모델로 삼은 분이기에 호기심이 생겨났다. 얼마나 좋은 말씀을 해주셨으면 싶어서, 그 내용을 물었다. 사형수 한 명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한 말이라면 내 책에 넣어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그는 뜻밖의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처음에 구치소에 들어올 때까지 나는 내가 책상 위에 책을 이렇게 삐딱하게 놓으면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실제로 후배들(아마도 조폭 조직원인 듯)이나 구치소 내의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들아 이렇게 삐딱하게 책을 놓으면 어떠냐?’ 하고 물으면 ‘형님, 멋있습니다, 형님’ 하고 대답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수녀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얘야, 혹시 말이다. …네가 멋있다고 책을 그렇게 삐딱하게 놓아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게 하나도 안 멋있고 그냥 삐딱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니?’ 하고 말이죠. 그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 훌륭하신 수녀님 말씀이니 내가 납득하지 못해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러고서 자세히 보니까 정말 제가 삐딱하게 책을 놓는 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멋있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놀라웠어요. 저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거든요.” 나는 소설을 위해 여러 가지 취재를 하면서 사람을 이렇게 죽이고 저렇게 죽인 이야기도 들었고, 그런 잔인한 인간이 어떻게 숭고함에 가까운 사람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지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 사람의 말처럼 나를 충격에 빠뜨리지는 못했다. 어떻게 자신이 하는 일이 ‘멋있는 일’이라고 그토록 믿어 왔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 주변의 사람들이 ‘멋있습니다, 형님’ 하는 말을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할 수가 있을까. 처음에는 소설 취재를 위해 드나든 구치소였지만 실은 그곳은 이 세상과 삶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들은 가끔 여러 가지 죄목으로 그곳에 와 있는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소식을 그들의 눈으로 전해주기도 한다. 죄목은 밉지만 인간적으로 그곳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준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조차 경멸의 대상이었다. ‘도무지 자기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안중에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경의도 표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말을 그들은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그 사람? 세 살 먹은 애야, 애!” 그들의 입을 통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소위 최고 학부를 나오고 세상의 모든 권력과 재물을 다 가진 듯한 이들이 벌거벗은 인간 자체로 놓였을 때 어떤 사람인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사형수들에게까지 경멸을 받는 저런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경제를 위탁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하기도 한 것이다. “왜 싸우느냐”에 대한 전세계 어린이의 반응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늘 골치가 아픈 것이 지네들끼리 싸움을 할 때다. 폭력이 개입되지 않는 한 모른 척하고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기로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왜 싸웠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를 한 명이라도 하루 이상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왜 싸우느냐?”라는 질문에 전세계 아이들이 하는 대답은? 그건 “나는 가만 있는데 쟤가 먼저 그래서”이다. ‘으응, 엄마, 그건 내가 먼저 동생을 때리니까 당연히 동생이 화가 나서 나에게 달려들었어요’라든가, ‘엄마, 제가 먼저 형을 너무 귀찮게 해서 형이 화가 났어요’ 하는 형제를 가진 집은 저에게 연락 바란다. 새로 나온 책을 한 열 권쯤 드릴 수도 있지만 복이 많으시니까, 그냥 여러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으로 상을 받으실 것으로 믿는다. (어떻게든 쇠고기라든가, 시위라든가, 촛불, 광화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왜냐고? 나는 여기서 사소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겠느냐고? 모르겠다. 그러고 싶으니까!- 이리저리 애를 쓰지만 하는 수 없다. 요즘은 무엇을 쓸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쇠고기, 시위, 촛불, 이 단어들을 피하느라 밤에 잠이 안 온다. 하필이면 왜 이 시기에 연재를 시작했는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 머릿속은 쇠고기, 촛불, 광화문,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광화문에 나갔던 딸이 시위 소감을 묻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엄마, 시위 내내 그렇게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나는 거야. 같이 시위에 참가한 친구랑 사람들이 오징어를 가져와서 구워 먹는 모양이다, 이야기하고 나도 갑자기 오징어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 내 머리칼에 불이 붙어 그슬리고 있는 중이었어.” 딸은 내게 노랗게 그슬려 바스러진 머리칼을 보여주었다. 좁은 공간에 촛불을 들고 앉아 무대를 넋 놓고 쳐다보고 있으려니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의 긴 머리칼이 그슬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딸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이야기를 더 보탠다. “그런데 내가 놀라서 어머 내 머리! 하니까 내 뒤의 남자가, 어머 이를 어째 머리칼에 불이 붙었네, 하면서 그걸 끈다고 내 등을 그 큰 손으로 퍽퍽 때리는 거 있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사람이 너무 미안해하면서 ‘제 잘못입니다. 미안합니다’ 하더니 내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더니, 혹시 다음번 미장원에 가실 때 제가 돈의 일부를 변상해 드릴게요, 하는 거야…. 어떻게 그 돈을 받겠어? 그래서 괜찮습니다, 했어.” 그런 이들이 ‘당신 탓’이라고 하는데… 혹시나 이게 용돈을 더 받아내려는 딸의 책략이 아닐까 의심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언제쯤 어른이 될까. 적어도 시위대에서 딸의 머리를 그슬어 오징어를 먹고 싶게 만든 그 남학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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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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