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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23:50 수정 : 2008.06.18 23:50

허영쟁이를 질타한 강원도의 힘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조그만 집 지었던 산골마을에서 나는 돈만 아는 나쁜 사람으로 몰렸다네

몇 해 전 강원도 산골에 조그만 집을 짓고 나는 드디어 강원도에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당장 라면을 끓일 가재도구도 풀지 못해서 이웃 주민에게 자장면을 배달시킬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산골이니 당연히 중국집은 없고 아마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콩국수 정도는 배달시킬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삿짐을 나르는 분하고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하고 한 여덟 명분의 콩국수를 주문하니까 한 시간쯤 지난 다음 콩국수가 도착했다.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배달비’ 제안

땡볕 아래서 가재도구를 나르고 정리하느라 배가 고파서였을까, 콩국수 맛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손으로 직접 민 듯한 약간 두둘거리는 쫄깃한 국수하며 국산 콩을 방금 갈아낸 고소한 맛이라니…, 콩국수를 날라 온 주인 양반은 우리가 그걸 다 먹을 때까지 한쪽에서 묵묵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배달 온 사람이 바로 옆에서 기다리는 모습은 몇 해 전 구례에 갔을 때 “오빠다방” 미스 강이 그러는 걸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 먹은 콩국수 그릇을 챙겨주며 내가 주인에게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배달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무뚝뚝하게 생긴 주인은 생김새만큼이나 무뚝뚝한 강원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여기 오는 데 오토바이로 20분이래요. 기름값도 안 남아요.”

콩국수 한 그릇이 3000원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얼른 머리를 굴려서 “아저씨 그럼 배달비를 한 그릇당 천 원씩 더 받으시면 되잖아요” 하고 말했다. 주인은 천천히 그릇을 챙겨 넣으면서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간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원래 한식집이에요. 평창 소고기 파는 곳이지요. 이건 친구가 사정이 하도 딱하다고 해서리 내가 마누라한테 특별히 만들어 달래서 가져온 거래요…. 게다가 도시 사람들…, 얼마나 현금 많은지 모르겠지만 천원이 어딘데, 배달한다고 어뜨케 그걸 더 받는대요? 공평해야지. 그렇게 돈만 알고 살므는 동네 사람들한테 미안해서리…, 싫어요.”

말투가 하도 같잖다는 표정이어서 나는 내가 돈만 아는 나쁜 사람처럼 느껴져 잠시 겸연쩍었다. 내 딴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합리적인 제안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돈만 알고 살므는 동네사람들한테 미안해서리”라는 말이 이삿짐을 정리하는 내 귀에 웅웅거렸다. 앞으로 이 집에 손님이 오면 꼼짝없이 음식은 내가 손수 해 먹여야 하겠구나 생각하자 약간 한숨은 나왔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좀 신선했고 또 약간 감동적이었다.

그 다음부터 해발 700미터에 있는 시골집에 여름이면 손님들이 밀어닥쳤다. 선풍기 한 대 없이 여름을 날 수 있는 곳이기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서울이 덥다고? 여긴 추워 죽겠어…. 언제 시간 나면 한번 와” 하고 깔깔거리며 빈말을 했던 것인데, 내가 하는 다른 말은 그렇게 잘 믿지 않던 친구들이 그 말은 철석같이 믿고 들이닥쳤다.

오이할머니도, 컴퓨터가게 사장님도…오 하느님!

친구들이 온다는 날이면 하는 수 없이 장을 보러 갔다. 차로 30분이니 왕복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장이 서는데 평창장은 5일·10일, <메밀꽃 필 무렵>에도 나오는 대화장은 4일·9일이다. 그렇게 장이 서지 않는 날이면 작은 노점상들이 푸성귀를 가지고 나오곤 했다.

그날은 장날이 아니라서 장터는 한산했다. 밭에서 화학비료 안 주고 키운 듯한 구부러진 오이며 윤기 나는 작은 고추들을 작은 보자기에 쌓아놓고 파는 할머니들이 주르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오이 한 무더기를 가리키며 사려고 하자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이 오이의 주인이 자기 친구인데 화장실을 간 것 같으니 잠깐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일이지만 시골의 ‘잠깐’과 도시의 ‘잠깐’은 얼마나 다른가. 그날도 어김없이 그 잠깐은 거의 십 분을 흘러가도록 지나가지 않았다. 이것저것 더 살 것도 많은데 부엌에 찬거리를 잔뜩 벌여 놓고 온 게 마음에 걸려서 나는 그냥 도시에서 장을 볼 때처럼 “그럼 이분 것 말고 할머니의 오이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 염치가 있지. 화장실 간 게 무슨 죄라고 내가 그 사람 것을 가로챈단 말이래요?”

“아니… 가로채다니요? 가로채려는 게 아니라, 제가 시간이…” 하고 우물거렸지만 할머니는 이미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을 해도 단단히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 할머니 것을 사지 않은 것만 못한 사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두 할머니의 오이를 몽땅 샀다. 6000원이었다. 나는 군청 옆의 컴퓨터가게 앞에 세워둔 내 차 앞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바꿔야 할 거 같아요. 8년이 넘은 거 같아서”라고 내가 말했던 가게였다. 고장이 잦은 우리 컴퓨터를 들고 가면 작은 부품들을 여러 번 무료로 바꾸어주어서 내가 큰맘 먹고 했던 말인데 기어이 땀을 흘리며 30분 만에 컴퓨터를 수리해 주던 사장님이 거기 계셨다.

“아직은 쓸 만해요. 아직 쓸 만한 걸 얻다 버리려고 그래요?”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이 앞선 것은 내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끔 미사에 가는 시골 성당이 보였다. 한때 저기에 가서 훌쩍거리며 “하느님, 세상이 무섭고 싫어요” 하곤 했는데 왠지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강원도에 오면 내가 돈만 아는 사람이고 남의 것을 가로채도록 종용하는 염치없는 사람이고 쓸 만한 것을 마구 버리는 허영쟁이가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강원도 기자는 만날 스키장에만 있다고?

그날 친구들과 오랜만에 그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하는데 티브이에서 광화문과 촛불 쇠고기가 난무하고 있었다. -결국 또 단어를 쓴다. 이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이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친구들만 아니면 저놈의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싶은데, 어지럽고 심란한 뉴스들이 줄줄이 이어진 다음 강원도 로컬뉴스가 시작되었다.

한때 나는 강원도에서 기자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그 집에서 뉴스를 볼 때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봄이 끝날 때까지 이 지방의 로컬뉴스는 몽땅 스키장 소식이다. 스키장이 개장되고 눈이 내리고 스키장이 성황이고 스키장이 폐장되고…. 아이들이 한번은 “엄마, 강원도 기자는 맨날 스키장에 가 있으면 되겠다” 해서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이제 이 여름에는 어떤 뉴스가 있을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중앙의 뉴스가 어지럽고 심란한 때에는 정말 스키장에 쌓인 눈을 화면으로 구경해도 좀 나을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초여름, 뜻밖에도 보디빌딩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몸을 이리 접고 저리 접고 해서 근육을 이렇게 드러내고 저렇게 구기고…. 과장되게 말하면 지구의 뉴스를 보다가 은하계 뉴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체육관에서 벌어진 보디빌딩 대회를 본 시민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저도 게으른 편인데 막상 저분들을 보니 저도 열심히 운동을 해서 저런 몸매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참 좋은 대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그날 우승자의 몸매를 보여주는 화면을 배경으로 이렇게 말했다.

“몸매를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강원도의 힘입니다.”

친구들과 나는 배를 잡고 유쾌하게 웃었다. 이건 정말인데, 강원도가 나라라면 나는 그리로 이민 가고 싶었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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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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