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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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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베란다 밖 허공에 둥둥 뜨거나 생머리 풀어헤치고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나는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냥 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 보지 않는다. 공포스러운 소설도 ‘절대’ 읽지 않는다. 하기는 공포에도 종류가 갖가지여서 심리적 스릴러나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범인이 나와 도끼로 사람을 죽이고 하는 것은 좀 나은 편인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공포물이란 귀신이나 유령 등이 나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공포에 반응하는 게 달라서 내 딸 같은 아이는 “귀신은 삼십 마리(?)쯤 드글거려도 하나도 안 무서운데 벌레가 나오는 영화가 그렇게 무서워” 한다.
한복을 입고, 입술에는 피까지 …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겠지만 나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워낙 아무거나 잘 믿으니까 귀신도 믿겠지 뭐, 하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세상에 없는 것을 전세계 그 많은 사람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세계 도처에서 가지가지 형태로 보았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있다’를 증명하는 것보다 귀신이 없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는 편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이 있다고 믿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귀신을 본 적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귀신을 본 첫 번째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이상하다. 때는 내가 열 살 무렵, 환한 대낮이었으니까 말이다. 시간만 귀신이 나오기 이상한 게 아니다. 장소는 우리 동네, 나는 내 친구들 5명 정도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골목에 우리 아이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과 떠들며 길을 가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한 이십 미터 전방의 한옥 집 굴뚝 옆으로 어떤 여자가 가슴까지만 내밀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길게 풀어헤친 생머리에 (여자 귀신의 경우 숱이 아주 많다. 내 머리라면 풀어놓아도 절대 그 모습은 안 나올 텐데. 숱 많은 여자 분들은 좀 걱정이 되려나) 흰 한복을 입고 (윗도리만 보였지만) 입술에는 피까지 …! 말하자면 전형적인 귀신의 모습, 도저히 귀신이 아닐래야 아닐 수 없는, 귀신이 아니기는 몹시 힘든 귀신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귀신을 본 순간 귀신이다! 라고 말했고 친구들은 내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으나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바라보니 그녀는 내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더니 흥! 하는 표정으로 마치 창문가에 머리를 내밀고 있던 사람이 창문을 닫고 사라지듯 사라져 버렸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싶어 겨우 무서움을 내색 안 하고 걸어가다 보니까 귀신이 머리를 내밀었던 곳은 한옥과 한옥 사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빈터였는데 잡동사니만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도 인적이 좀 드문 골목이긴 했지만 나는 그 후로 그 골목길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엄마와 함께 그 골목을 걸어가게 되었다. 귀신이 나왔던 작은 굴뚝 앞을 지나치며 바라보니까 놀랍게도 내가 처음 귀신을 보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좁은 공간이 판자로 메워지고 X자로 봉쇄되어 있었다. 여기서 귀신을 본 게 나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또 한편으로는 귀신이 판자가 있으면 못 나오나, 싶기도 했다. 나중에 한 30년쯤 지나 어떤 티브이 프로에서 아이들이 귀신을 보는 이야기가 시리즈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재현한 귀신의 모습이 내가 본 귀신과 너무 똑같았고 또 아이들이 낮에 집단으로 그것을 보는 것을 보고 옛 생각이 나서 무서웠던 기억도 있다.
내 친구들이 악몽을 꾼 이유가 그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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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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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는 별로 귀신을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 막내를 낳고 살던 집은 베란다가 산을 바라보고 있는 전망이 좋은 집이었는데 나는 그 집에서 세상에 태어나 겪고 본 것보다 제일 많은 귀신을 보게 된다. 어느 밤이었는데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때 ㄱ자로 놓아진 소파 끝 쪽을 문득 바라보니 어떤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여자는 유령처럼 투명한 형태였지만 헤어스타일과 스웨터 치마 모양 등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 치마 모양과 머리 스타일이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난 1970년대 중후반 정도의 것이었다. 두려움에 질린 나는 온 방에 불을 켜고 티브이를 틀어 사람 말소리를 들리게 했다. 그러고 애들이 잠든 곳으로 가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우리 애들 건드리면 죽어! 너 죽을 줄 알아!”
그 후 나타나는 귀신들은 각 시대별 머리 모양과 의상을 입고 있었다. 60년대식으로 고름 대신 브로치를 단 한복 입은 여자도 보았고 단발 파마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의 머리 모양을 한 귀신도 있었다.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는 날에는 더했다. 가끔 예비군복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도 스윽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직도 왜 전세계에서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는 날에는 귀신의 활동이 왕성해진다는 증언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누가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지만 …)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친구들은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면서 자기 평생 이런 악몽은 처음 꾸어 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한국전쟁 때 엄청난 격전지였고 그 산이 바로 공동묘지로 쓰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산 코앞으로 베란다가 나 있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다니 ….
그 이후 신앙을 가지게 된 나는 산 쪽으로 십자가를 걸어놓고 귀신이 보일 때마다 말했다. “여기는 더 큰분이 계시는 곳이야. 네가 들어올 곳이 아니야”
신기하게도 (무슨 간증이 아니라) 그 이후로 그 귀신들은 우리 집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베란다 밖 허공에 둥둥 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전기값은 생각도 않고 돌아다니며 불을 켜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너 여기 들어오면 안 돼. 내가 가만히 안 놔둘 거야”
귀신을 보는 일이 많아지자, 친구들에게도 자연스레 그 일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귀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마디씩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 하나는 술만 취하면 귀신을 본다고 하는데, 어떤 날은 늦은 시간 집에 돌아가 불 꺼진 현관문을 여는데 어떤 남자가 식탁에 앉아 있더라고 했다. 친구는 “가만 내가 술김에 또 친구 녀석을 집에 와서 한잔 더 하자고 불렀나?” 생각하는데 금세 모골이 송연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비가 스물스물 내리고 있는데 귀신이 나타날 기미가 우리 집에 자욱이 어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는지 말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특별히 해를 끼치지도 않고 병균을 옮기지도 않고 집안의 물건을 파손하거나 훔쳐가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랑의 전설>에서처럼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다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잘 아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이 귀신이 나타날 기미가 자욱한 사태를 알리고 의견을 구했다.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귀신한테 쫓기는 꿈꾸면 키가 큰다?
“그것들이 다 불쌍한 영들이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보거든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좋은 데로 가라고 토닥토닥 일러주고 기도해줘라.”
그렇게 마음먹은 그날부터 귀신들은 집에 출몰하지 않았다. 나중에 독일 베를린에서 일년을 체류하는데 그 집 부엌에서 키가 내 반 만한 꼬마의 흔적이 아른아른거렸다. 그때 왠지 독일 귀신은 좀 덜 무서운 듯하고 아무리 귀신이지만 꼬마라서 그런지 나는 그를 위해 꾸준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직 귀신을 직접 접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그 또 며칠은 잠을 못 이룬다. 돈 내고 시간 투자하고 잠 못 자고 무섭고 이런 짓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어느 날 우리 막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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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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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귀신한테 쫓기는 꿈은 왜 꾸는 거야?”
“키 크느라고 그러는 거야 무서워하지 마”라고 대꾸해주다가 짚이는 게 있어 내가 얼른 물었다.
“너 귀신한테 쫓기는 꿈 지난번에 엄마 말 안 듣고 집 나간 날 밤에 꾸었지?”
그러자 화들짝 놀란 막내는 대답한다.
“엄마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 정말 귀신이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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