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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7 18:59 수정 : 2008.08.27 18:59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나를 비롯한 치우지 않기 분야의 강적 여러분,
가을바람과 함께 비움의 대청소 합시다

지난번 오뎅에 관한 이야기가 나간 후 나는 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자락에 다녀왔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왜 갔는지는 다음에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나는 강가에 나가 투망이나 (?) 던지다가-정확히는 누가 투망을 던지는 것을 바라보다가-소주만 실컷 먹고 돌아왔다. 물론 투망에 걸린 것인지 투망 쇠고리에 맞은 것인지 아무튼 거기 걸린 쏘가리 새끼 매운탕과 함께 말이다.(굳이 새끼 매운탕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그 쏘가리는 멍이 좀 들어서 그렇지, 나름 귀여웠다. 그리고 참 맛있었다.) 그러고는 여느 때처럼 호두과자를 사먹으며 돌아왔다.

소주·호두과자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

돌아와 오랜만에 한겨레를 접속하니 독자님들께서 소주 이야기, 호두과자 이야기를 올려주셨다. 순간 무슨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소주를 실컷 먹고 호두과자를 먹으며 돌아와 그 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분은 “혹시 공 작가님 지금 들고 계신 잔이 소주잔?” 하신 것도 깜짝 놀랐다. 마침 그럴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그분 때문에 오늘은 참아야지 하고 결심했던 소주가 너무 먹고 싶어진 것이다. 독자는 역시 무섭다. 우리는 아마 서로 모르는 사이에 온라인으로 한잔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뎅에서 소주로, 소주에서 호두과자로….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시대와 공간과 먹거리 인프라를 공유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독자 의견을 써주신 rjunwon님 말대로 나도 호두과자를 사먹는다. 평소에는 단 과자나 빵은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데 이상하게 고속도로 휴게소에만 들르면 호두과자 앞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체중에 대한 시름만 아니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그 따끈하고 달콤한 것을 먹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네에서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먹어도 이상하게 그만 못하다.

돌아오니 집안은 난장판. 아주머니가 하루만 결근하시면 집안이 이렇다. 내가 가끔 표현하면 아이들이 학교로 간 자리는 무슨 사제폭탄이 군데군데 터진 것 같다.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나부터도 청소하기보다는 어지르기를 즐겨 하는지라…. 령이 잘 서지를 않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우리 어머니는 참 깔끔한 분이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그 애들은 아직도 예전에 우리 집에 왔다가 놀란 이야기를 한다. 너무 깨끗하고 윤이 났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온 날 저녁에도 걸레질을 하고 계셨다. 나는 우리 집이 얼마나 깨끗했는가 하는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치우고 정리할 줄 모른다고 거의 매일 혼이 난 것만 기억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특징은 자기가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뿐, 도무지 자기가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것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바라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언제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일을 벌이기 마련이라서 그렇다. 언니와 나는 가끔 집안 치우기의 힘든 점에 대해 서로 통화를 하다가 “그저 이 모든 것이 그 새를 못 참고 우리들의 방을 다 청소해주었던 엄마 탓이다” 하면서 서로 흐뭇하게 끝을 맺는다. 칠순을 훨씬 넘어서도 여전히 손에 걸레를 들고 계신 우리 어머니는 불효하는 딸들 덕에 평생을 청소를 해주고도 아직 이런 억울한 비난에 시달리시는 것이다.

독립을 하고 나서 나는 참 자유롭게 살았다.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진 내 공간에서 며칠씩 이불을 안 갠 것은 기본, 좁은 방에 펴진 이불을 개지 않은 채 살짝 접어놓고 내 발길이 지나갈 정도로 좁은 오솔길을 살살 내놓으면 살 만하긴 했다. 그러고는 펴놓은 이불 위에서 만화도 보고 소주도 마시고 오징어를 쭉쭉 찢어 먹으며 야구 중계를 시청하곤 했다. 그렇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로워서 좋긴 한데 문제는 내 잠자리, 내 앉은 자리가 더러운 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청소 안 하는 버릇도 들었지만 깔끔한 장소에서 생활하던 것도 버릇은 버릇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이 두 가지가 상충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고, 자유롭고 더러울 것이냐 깔끔하고 귀찮을 것이냐 사이에서 방황하곤 했다.

자유롭고 더러울 것이냐 깔끔하고 귀찮을 것이냐

아직도 누가 내게 깔끔하신 분인 것 같아요 하면, 그 사람이 낯설거나 한 경우에는 모호하게 웃고 말지만 좀 친해진 경우에는 절대로 그렇다고는 못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된장국에 장아찌해서 밥 먹는 것이 제일 개운하듯이 어린 시절 버릇이 나와서 요즘은 나도 좀 치우기는 치운다. 하지만 아직도 과감한 자유를 택하는 강적들이 내 곁에는 몇 명이나 있다. 이번 지리산에서 만난 한 지인은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농가를 빌려 일 년을 살다가 주인에게 고소당할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혼자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즐기며 서울의 인공에서 벗어난 너른 마당에 아름다운 잡풀들을 양껏 키우고 있었는데-말이 키웠다고 하지만 잡풀이 어디 안 키운다고 안 크는 풀이던가-자기가 집 안에서 마당으로 나갈 만한 공간만 빼고 수풀이 거의 정강이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집 밖으로 오갔느냐고 물으니 그는 도인다운 풍모로 내게 말했다. 그게 밖에서 보면 길이 없어 보여도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마치 냇물에 징검다리 놓여 있듯 자기가 밟은 발자국만 한 공간들이 쭈욱 늘어져 있는데 그걸 밟고 오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큰소리를 치며 “자꾸 그렇게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침착하게 잘 살펴보면 다 길이 있다”는데 할말이 없긴 했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의 집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을 몇 번 초대했긴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마당에 난 수풀들 사이로 징검다리를 밟아 그의 방문 앞까지 가긴 했는데 그의 방문 앞에까지 가면 그저 기웃기웃하고 아무도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방 안에 그가 앉을 자리 하나만 남기고 남은 공간을 다 다른 것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이라 하면 뭐 소주병, 맥주캔, 재떨이, 라면 봉지, 뭐 이런 등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더러 자기가 조금씩 치워주면 엉덩이 몇 개는 붙일 수 있는데 왜 안 들어오냐며 몹시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다 길이 있고 앉을 자리가 있는데”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 후배 하나가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 겨우 손바닥만 한 자취방을 마련한 그는 예전의 나처럼 독립의 자유를 심하게 즐겼던 모양이다. 자기는 즐겁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들이 자신의 방에 자꾸 신발을 신고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화를 내보았지만 아무도 신발을 벗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는 신발을 벗기는커녕 담배를 피워 물고는 재떨이를 찾는 대신 그냥 방바닥에 재를 털었다고 했다. 우정을 모두 포기할 생각을 하고 그가 심각하게 화를 내니까 친구들이 몹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고 했다.

“그럼 원래 너는 이렇게 사는 거 아니었단 말이야?”

막장까지 갔던 후배가 청소를 시작한 사연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그때서부터 그 후배는 청소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도 아직 그의 집에 가본 적은 없다.

가끔 지저분한 방 안에서 그냥 모든 것을 놔두고 싶을 때 나는 수도원이나 산사의 복도나 마루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실은 하나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내 방이고 내 자리이고 내 집일 텐데 싶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가을바람이 분다. 여름옷들을 정리하고 여름내 땀에 젖은 이불을 빨고. 아마도 다음주쯤에는 대청소를 한번 해야겠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청소라는 게 막상 시작해보면 버리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올려다보니 욕심만 무성해서 사다 놓은 것들이 내 방에 그득하다. 하늘도 자욱한 먹구름들을 다 쓸어 버리고 가을을 맞는데 나 역시 그렇게 가을맞이를 시작해야겠다. 그게 몸의 것이든, 그게 마음의 것이든.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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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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