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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1 19:40 수정 : 2008.10.01 19:40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두명만 모이면 시작되는 소문과 뒷담화, 내가 퍼뜨린 헛소문도 어딘가 떠돌고 있겠지

한 십년쯤 거의 바깥일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계룡산에 암자를 짓거나 지리산으로 박히거나 외국으로 잠적해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화번호를 20명 내외에게만 알려주고 공식적인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워낙 내 업계(그러니까 문단이나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그들이 나를 칭찬하는지 욕을 하는지조차 잘 알 수가 없는데, 가끔 용케 번호를 알아내거나 집 앞으로 찾아오는 여성지 기자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썩 좋지 않을뿐더러 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결혼을 하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 했던 그분들….

사우나의 표어 ‘큰 소리로 남의 험담을 하지 마시오’

이제 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들은 예언자였을까, 혹은 내 은둔의 돌팔매자였을까? 솔직히 잘 살아 보겠다고 바깥 생활을 접고 들어앉은 사람에게 자꾸만 들려오는 그런 소문들이 그리 좋은 영향만을 끼치지는 않았으리라. 나에게 그러는 것은 또 좀 나은데 내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그러는 것은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은 내 탓이었지만 말이다. 흠 … 깃털이 자꾸 무거워지나 ….

그 무렵 내가 친구에게 이런 사정을 호소했더니 매사에 현명하기로 이름난 그 친구는 간단한 대답을 했다.

“음 … 네가 그 소문들이 일어나는 그 소문의 중심부에 나가 자주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돼. 한마디로 자주 만나 자주 술을 마시며 자주 남의 소문에 대해 입에 올리고-특히 나쁜 일에 열을 올리며-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사람들은 자기와 함께 자주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사람의 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그 사람이 혹여 자기가 잠깐 빠진 자리에서 자기 욕을 하고 있을 게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막자고 내가 술자리에 나가서 남을 욕하고 있어?”

내가 어이없는 듯 물으니, 친구는 대답했다.

“그러면 간단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살든지.”

아아, 세상사 그렇다면 세상에는 술자리에 자주 나가 남의 이야기만 하든지, 아니면 누가 내 이야기를 뭐라고 하든지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든지 두 가지 길밖에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비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참 후, 그것마저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사우나에 다녀온 아내가 하루키에게 물었다고 한다.

“여보 남자 사우나에도 ‘큰 소리로 남의 험담을 하지 마시오’라는 표어가 붙어 있어요?”

하루키가 남자 사우나에는 붙어 있지 않다고 대답하면서-참,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밌다. 우리나라 술집에도 이런 표어를 붙여 놓으면 ?-다만, 일본 문단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녀평등이라고 비꼬아 놓은 것이다. 알다시피 하루키는 문단에 나오기 전 바를 운영했다는데 거기에 문인과 편집자들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을 퇴근시키고 나면 자신이 바텐더를 하며 술을 따르곤 했는데, 예를 들어 A와 B가 술을 마시며 C의 흉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C가 오면 A와 B는 얼른 반색을 하며 함께 화기애애하게 D의 욕을 한단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D도 온다. (하필이면이 아닐 것이다. 대개 반경 안에서 늘 보는 사람이 안줏거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정치가 흉을 본다. 그러다가 다른 약속이 잡힌 A가 떠나면 B C D 는 참았다는 듯이 A의 흉을 쏟아낸다. 그리하여 종내는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모두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2차, 3차, 4차까지 끝내고서야 일제히 집에 돌아간다는 슬프고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죽었다는 친구에게서 온 강연청탁 전화

솔직히 내 처지에서 이야기하면 조금 안심도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러는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아니다. 아직 확인 안 해 봤지만 아마 한국과 일본만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 같다. 2차, 3차, 4차까지 하고 집에 가는 것은 서양에는 거의 없는 일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얼마 전 강연을 갔다가 졸업한 지 25년 만에 대학 동창을 만났다. 강연장으로 찾아온 그녀를 만나 잠깐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가 물었다.

“너 F가 죽은 거 아니?”

F는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우리의 다른 동기였다. 강사로 떠돌다가 얼마 전 어렵게 지방대에 교수로 취직을 했다던 친구.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난 2년 정도 나는 그녀의 이름을 지상에서 본 일이 없는 거 같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연은 더 애절했다.

“자궁암이래 …. 걔가 워낙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잖아. 그래서 허리가 아픈 줄 알고 파스만 붙이면서 아프다 아프다 하고 그냥 다녔대. 그래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3기였다나봐. 그래서 그 남편이 거의 폐인 되어서 딸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대 ….”

강연에서 돌아오는데 죽었다는 그 친구 생각에 머릿속이 자꾸 하얗게 변해서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삶이 허무하고 두려워지는 기분이었다. 죽기 전에 연락이라도 한번 해볼걸 하는 미안한 마음도 사무쳤다. 그렇게 활발히 활동하던 친구가 글을 쓰지 않는데 왜 눈치를 못 챘을까, 내가 미웠다. 그 무렵 만나는 사람에게 그 충격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리고 잠 안 오는 밤에는 가끔 나도 아는 그녀의 착한 남편과 그 딸이 가여워서 솔직히 조금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하필이면 한겨레 이곳에 귀신 이야기를 쓰던 무렵이다-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것도 내 휴대폰이 아니라 우연히 집에 있는 날 받은 집전화로 말이다. “나 F야” 하는데 소름이 쫙 끼쳤다. 자기가 있는 대학에 강연을 와달라는 것이다. 바쁜 줄 알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 하는 부탁이니까, 하며 말을 흐렸다. 말은 응, 응 하고 있으면서 머릿속으로 별로 보지도 않은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집에는 마침 아무도 없어서 무서워 죽겠는데 무서운 생각 뒤편으로 슬며시 못 말리는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그 친구가 죽었는지 아닌지 내가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약속을 한다. 그리고 그 지방대학으로 간다. 그리고 강연장에 간다. 마침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온다. 내가 그녀의 부탁을 받고 갔다고 하면 대학에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선생님,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한다.-소설도 아니고 콩트감이겠지만 말이다. 한술 더 뜨자면 오늘이 그분 기일이에요, 할까?-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정말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 덜어질 거 같아서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 네이버에 그 친구의 이름을 쳤다. 정말 우스운 일은 그 친구의 이름 석 자를 치는데 손가락이 너무 떨려서 몇 번을 다시 쳤다는 것이다. 엔터키를 치는 순간, 맙소사!

3일 전까지 그 친구가 쓴 신문 칼럼이 어엿이 실려 있었다. 내가 그 친구의 활동을 보지 못한 건, 그러니까 순전히 내 무관심 탓이었고 죽음을 전해준 친구는 어디서 헛소문을 들은 것이고, 충격에 사로잡혀 내가 지인들에게 한 말은 또 소문이 되어 떠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아 ….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우리 이야기 하자니까 갑자기 조용해지네

요즘도 나는 술을 마시러 나가면 남의 흉을 자주 본다. 그럴 땐 딱 세 명이나 네 명이 좋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나서서 “우리 이제 남 이야기 그만 하자” 그런다.-그리고 이런 사람은 꼭 남의 흉을 재밌게 보아서 정점에 이를 때 그런다-그래서 내가 한번은 “좋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부인, 남편, 자식 말고 우리 자신! 자 너부터!” 하면 갑자기 술자리는 과묵해지고 조용해진다. 참 어려운 일이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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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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