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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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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두명만 모이면 시작되는 소문과 뒷담화, 내가 퍼뜨린 헛소문도 어딘가 떠돌고 있겠지 한 십년쯤 거의 바깥일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계룡산에 암자를 짓거나 지리산으로 박히거나 외국으로 잠적해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화번호를 20명 내외에게만 알려주고 공식적인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워낙 내 업계(그러니까 문단이나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그들이 나를 칭찬하는지 욕을 하는지조차 잘 알 수가 없는데, 가끔 용케 번호를 알아내거나 집 앞으로 찾아오는 여성지 기자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썩 좋지 않을뿐더러 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결혼을 하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 했던 그분들…. 사우나의 표어 ‘큰 소리로 남의 험담을 하지 마시오’ 이제 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들은 예언자였을까, 혹은 내 은둔의 돌팔매자였을까? 솔직히 잘 살아 보겠다고 바깥 생활을 접고 들어앉은 사람에게 자꾸만 들려오는 그런 소문들이 그리 좋은 영향만을 끼치지는 않았으리라. 나에게 그러는 것은 또 좀 나은데 내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그러는 것은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은 내 탓이었지만 말이다. 흠 … 깃털이 자꾸 무거워지나 …. 그 무렵 내가 친구에게 이런 사정을 호소했더니 매사에 현명하기로 이름난 그 친구는 간단한 대답을 했다. “음 … 네가 그 소문들이 일어나는 그 소문의 중심부에 나가 자주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돼. 한마디로 자주 만나 자주 술을 마시며 자주 남의 소문에 대해 입에 올리고-특히 나쁜 일에 열을 올리며-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야.”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사람들은 자기와 함께 자주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사람의 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그 사람이 혹여 자기가 잠깐 빠진 자리에서 자기 욕을 하고 있을 게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막자고 내가 술자리에 나가서 남을 욕하고 있어?” 내가 어이없는 듯 물으니, 친구는 대답했다. “그러면 간단해.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살든지.” 아아, 세상사 그렇다면 세상에는 술자리에 자주 나가 남의 이야기만 하든지, 아니면 누가 내 이야기를 뭐라고 하든지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든지 두 가지 길밖에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비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참 후, 그것마저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사우나에 다녀온 아내가 하루키에게 물었다고 한다. “여보 남자 사우나에도 ‘큰 소리로 남의 험담을 하지 마시오’라는 표어가 붙어 있어요?” 하루키가 남자 사우나에는 붙어 있지 않다고 대답하면서-참,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밌다. 우리나라 술집에도 이런 표어를 붙여 놓으면 ?-다만, 일본 문단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녀평등이라고 비꼬아 놓은 것이다. 알다시피 하루키는 문단에 나오기 전 바를 운영했다는데 거기에 문인과 편집자들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을 퇴근시키고 나면 자신이 바텐더를 하며 술을 따르곤 했는데, 예를 들어 A와 B가 술을 마시며 C의 흉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C가 오면 A와 B는 얼른 반색을 하며 함께 화기애애하게 D의 욕을 한단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D도 온다. (하필이면이 아닐 것이다. 대개 반경 안에서 늘 보는 사람이 안줏거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정치가 흉을 본다. 그러다가 다른 약속이 잡힌 A가 떠나면 B C D 는 참았다는 듯이 A의 흉을 쏟아낸다. 그리하여 종내는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모두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2차, 3차, 4차까지 끝내고서야 일제히 집에 돌아간다는 슬프고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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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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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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