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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20:39 수정 : 2008.10.22 20:42

“제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나이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 남 탓하는 버릇들 …
얘들아, 이게 다 엄마 탓이라구?

지난번 연재에 ‘같은 이야기만 20년째’라는 칼럼이 나간 뒤 나는 <한겨레>의 이 연재를 꽤 많은 사람이 관심 있게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 이제서야 말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 친구들과 만날 일이 유난히 많았는데 술을 마시다가 한 사람씩 ‘슬며시’ 내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지영아 저번 쓴 연재 말이야, 그 친구가 그러니까 혹시 … 나 아니니?”

처음에는 “아니야, 그럴 리가. 그거 너 아니야’ 하다가 말았는데 모임마다 한두 명씩 꼭 ‘슬며시’ 다가와서 “그거 혹시 나?” 하고 묻는 소리를 들으니까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글로 콕 찍어 놓으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게 자기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글로만 이러면 좀 나은데 말로도 그걸 잘한다는 거다. 그래서 예전에 어떤 친구는 “네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소리를 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하면 꼭 자기 흉을 보는 것 같아서 뜨끔한다는 것이다.

슬며시 다가와 한결같이 묻는 질문

하지만 조금 더 사귀어보면 사실 이런 말도 해줄 수 있다. 나 역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술버릇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끝이었는데 자기가 술 취했을 때 버릇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각자 상대방의 흉을 유쾌하게 보며 깔깔거리던 자리였다. 나는 술을 먹고 약간 취하면 “나 졸려, 이제 집에 갈래” 하고 벌떡 일어나 나와서 누가 뭐라고 설득을 해도 기어이 집으로 가는 이상하고 유명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친구의 말은 좀 달랐다. 내가 그렇게 취하기 조금 전, 그러니까 벌떡 일어나 집으로 가기 조금 전의 버릇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하던 말을 또 하고, 하던 말을 또 하는데 문제는 그게 혼자가 아니라는 데에 특이성이 있었다. 그 장면을 살짝 중계하자면 이렇다.


나: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다고 했지?
친구 ㄱ: 나 광주 출신이야.
나: 아, 그래? 너 그럼 ㄴ 알아?
친구 ㄱ: 알다마다! 친한 사이인걸 … 걔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내가 닷새나 그 집에서 밤샜잖아.
나: 그래? 그럼 우리 그때 봤을 수도 있네. 나도 그때 광주까지 내려가서 문상했는데.
친구 ㄱ: 그래? 왜 내가 너를 못 봤을까?

이 대화가 한 다섯 번씩 오고 간다는 것이다. 다들 취해 있어서 누가 세 번씩 이야기를 하든 다섯 번씩 이야기를 하든 상관하지 않는데, 기억력이 좋은 친구는 그날 하필이면 몸이 아파서 술을 먹지 못하고 있다가 이 광경을 목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다음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내가 친구 ㄱ을 만나더니 다시 묻더라는 것이다.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다고 했지?”

그러자 친구 ㄱ은 태연하게 “응 나 광주 출신이야” 했고 나는 마치 모든 것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놀라며 “그래? 그럼 ㄴ 알아?” 하자 친구 ㄱ은 더욱 놀라며 “아니 네가 어떻게 ㄴ을. 그럼 그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 하며 여섯 번째를 반복하는데, 어제 술자리에서 멀쩡한 친구 보기에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물론 나와 ㄱ은 그 어떤 것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20년째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그 친구에게 내가 너무했나 하는 마음이 이제야 든다. 어른들 말씀이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기 싫고 입은 자꾸 열리니 참 이것 또한 큰일이긴 하다.

갈수록 지갑은 열기 싫고 입은 자꾸 열리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입이 열리되, “제 탓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이러면 좋은데 그것 또한 거꾸로 간다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머는 지구본 유머다. 아시는 분 많겠지만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느 학교에 장학사가 시찰을 나왔다. 과학실을 시찰하던 장학사는 23.5도가 기울어져 있는 지구본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제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학생, 이 지구본이 왜 이렇게 기울어져 있지?”

그러자 학생은 당황하며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내가 안 그랬어요.”

그러자 과학교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아까 다 똑바로 놓으라고 했지?”

보다 못한 교장 선생이 나섰다.

“어서 시정하도록 하세요.”

내 친구는 결혼 초기에 아이가 막 걸음마를 할 때,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아이 우는 소리에 달려와 보니 아이가 넘어져 입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야구중계를 보던 남편에게 “애 하나 안 본다” 하고 잔소리를 하자 남편이 “내가 안 밀었어”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지금도 웃는다.

얼마 전 어느 회사를 방문했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다. 거래처라 자주 들르는 곳인데 임신을 한 여직원을 보고는 “미스 김이 처녀 아니었어요? 언제 결혼했죠? 배가 부르네” 하자 친구를 안내하던 사람이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다.

심리학에 따르면 언제나 남의 탓을 하는 성격장애와 언제나 자기 탓을 하는 신경증적인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면 주로 남자에게 성격장애가 많고 여자에게 신경증적인 요소가 많은데, 병원을 찾는 이들은 주로 신경증적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둘 다 병적인 상태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면담 치료에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탓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 지 하루가 지났거나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쯤 지나면 남을 변화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긴 하다.

나 역시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그 쉽고도 유명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이는 “남의 눈의 티끌을 보지 말고 네 눈의 들보를 보라”고 했다. 성서에 근엄하게 써 있어서 그렇지 당시로서는 이게 상당한 유머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난한 이들이 예수를 따라다니고 부자인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위선적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싫어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유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곡을 콕 찌르는 말만이 정말 우습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말씀을 놓고 내 친구는 자기 남편 흉을 보다가 열을 내며 말하기도 했다. 그 애는 들보를 이리저리 잡는 시늉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알아, 내가 들보보다 더 큰 결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들보 사이로 요리조리 보아도 남편의 티끌들이 너무 잘 보이는 걸 어떡해?”

“들보 사이로 티끌이 너무 잘 보이는 걸 어떡해”

오늘도 우리 둘째와 셋째는 티격태격한다. 언제나처럼 애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니가 먼저 그랬잖아!”

“형아가 그러니까 내가 그랬지.”

그러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억지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됐다, 다 에미 탓이다. 내가 너희들을 더 좋은 성격으로 낳지 못해 그렇다. 그러니 그만들 해라” 하면, 아이들은 엄마에게 감동을 받아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라도 해야 하는데 천만의 말씀,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둘이 입을 맞추어 그런다.

“맞아, 엄마 탓이야!”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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