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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3 21:40 수정 : 2008.12.03 21:40

그 친구 전화 받을까 말까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뒤에서 힘든 이를 보살피는 사람들, 동물 겨우살이까지 걱정하는 그 시인, 세상엔 이런 천사도 있다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슬프게도, 대개는 나쁜 사람을 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들이 내게 준 교훈이 하나 있는데 절대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다른 느낌으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는 때도 있다. 세상에 내려온 천사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곱고 아름다운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내가 취재하러 달려간 끔찍한 현실의 한복판에 살고 있었다. 물론 날개옷도 날개도 없이 말이다.

성한 내 아이 보살피기도 힘든데…

사형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구치소에 갔을 때 그곳에 10여년을 말없이 봉사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우선 그 첫번째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험한 교도소에,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나누어주고 성서도 권해준다. 조용히, 뒷자리에서 어머니 혹은 이모나 누이처럼 보살펴주는 사람들. 그중에서 나와 함께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사형수들을 면회하는 분들은 세 명인데 그들은 이렇다.

한 사람은 내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주인공의 올케 역(?)으로 잠깐 등장시킨 적이 있는 사람인데 하루 종일 일 년 365일 착한 일만 하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다. 교도소 봉사에 병원 호스피스 봉사, 게다가 장애인 고아들을 데려다가 집에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다 보낸다. 마치 기숙사에 맡겨둔 아이들을 데려오는 엄마처럼 정기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성한 내 아이 보기도 힘든데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서너 명을 그러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고도 짬짬이, 집 앞의 길거리에서 일꾼들이 신문지를 펴놓고 밥을 먹는 것을 보면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식탁에 정성껏 차려준다. 자기 집 일꾼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한 분은 교도소 봉사는 물론, 에이즈 공동체에 가서 간호를 하는 봉사를 한다. 보통 사람은 곁에 가기도 싫어하는 그들의 임종까지 지켜주고 남들 다 피하는 그 사람들의 수발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가 와해되어 거리로 나앉자, 십 년 동안 모은 쌈짓돈을 헐어서 그들에게 조그만 가게를 차려주었다. 그녀 자신은 교도소 봉사를 위해 첼로를 들고 버스를 타고 오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바이올린을 하는데 다른 분들과 함께 산골마을의 아이들에게, 낙도의 정신지체아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연주여행을 정기적으로 다닌다. 낙도에 있는 정신지체 아이들은 너무 심심해서 신기한 것들을 좋아하는데 그분이 그곳에 갈 무렵인 이런 연말이면 고장난 시계나 렌즈 없는 안경테 같은 것을 모으신다. 정신지체아들이 그런 것을 새로 차보고 써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그분을 보고 있으면 자선이라는 것이 꼭 물질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또 있다. 시를 써서 고아원에 나눠주시는 분, 그분은 시인이고 또 유명한 분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련다. 그냥 누군지 짐작이 가시거든, 으흠, 하고 넘어가시기 바란다.

지난 주일인가 낙장불입 시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쓴 <한겨레> 에세이를 읽고 가지가지 방법으로 추적을 해서 누군가 지금 그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낙장불입 시인은 전화를 바꾸어 주면서 “지영씨 대학 후배라네” 했다. 순간 스쳐가는 생각, 내가 81년에 대학을 입학했으니까 일 년에 4천 명씩만 그 학교에 입학을 했다 해도 내 후배의 수는 4000명×27년 하면 자그마치 십만 팔천 명의 사람들이 나의 대학 후배라고 주장할 수가 있을 텐데 그중의 한 명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전화를 바꾸어 주는 것은 나에 대한 원망이겠지 싶어 미안해졌다. 역시나 전화를 받아보니 모르는 사람. 그냥 멀뚱하고 민망하고 어색하게 전화를 끊고 말았다.

“사람은 그럭저럭 살지만 너구리 오소리는 정말 힘들지”

아무튼 오늘 새로 소개하는 시인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23년 전, 내가 `작가회의'에서 전화도 받고 심부름도 하고 청소도 하는 간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그때 시골의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면 직함과 용모가 그렇게 맞아떨어지는지 연극이나 영화를 공연한다면 딱 인자한 시골 선생님 역으로 뽑힐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꽤 유명해졌고 우리는 행사장에서나 멀리서 가끔 얼굴을 보았을 뿐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도 나도 많은 아픔과 영광과 오욕과 소문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를 안 후 처음으로 우리는 마주앉았다. 두 사람이 만나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심한 병에 걸려 산골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여서 그가 더욱 궁금했다. 그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너무 많은 사랑을 하려다가 사람에 치여서 병이 난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 병의 원인이 된 사람 독을 풀기 위해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는 정말 그리로 갔다. 너무 깜깜한 겨울 밤, 너무 짙은 어둠이 무서워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불자락을 붙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단출한 오두막이 너무 추워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 그토록 절절히 봄을 기다리며 그는 사람과 세상이 그에게 묻혔던 때를 씻어냈다고 했다.

그는 그 아픈 와중에 딱 한 번 시내로 외출을 했는데 아이들 학예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아이들 학예회도 아니었다. 그건 말썽만 부리고 학교를 그만둔 옛 제자 때문이었다. 그 제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나쁜 일 말고 처음” 하는 일을 하나 골라냈는데 그것이 바로 아이들 학예회에서 피아노를 운반해주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편지를 쓴 것이다. 그러자 시인은 ‘절대요양’이라는 의사의 명령도 어기고 공기 나쁜 시내로 버스를 세 번이나 타고 들어간 것이다.

나: 산골에 살면 좋기는 하겠지만 이제 겨울이니 좀 힘들겠네.

시인: 힘들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나: 그래? 다른 사람들 사정이 더 나쁘나?

시인: 아니 사람은 그럭저럭 살지만.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 산토끼들은 정말 힘들지.

나: #$%&(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그 시인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연락처는 우편배달부.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은 산골(게다가 약간 젊은 병자 시인이 얹힌)에서 집대원은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약도 사다 주고 말벗도 되어주는 성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건 시인이 나에게 특별히 이야기해준 것인데 그 우체부는 그 산골을 오르내리면서 눈에 띄는 좋은 약초가 있으면 캐다가 그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드린다고 했다. 가끔 산삼으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체부는 아무 미련 없이 흔쾌히 그걸 노인들에게 드린다고 한다. 속물인 나는 얼핏, 그걸 팔아서 더 많은 돈을 만들어서 그걸로 약을 사드리면 하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아니다. 이미 그분들의 경지는 그런 셈법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돈때 묻은 약을 먹으면 아마 그분들은 병이 낫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착한 일 하러 가야 한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시인에게 전화가 오면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 이 시인의 전화를 받으면 십중팔구 나는 착한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아마 북한 동포 돕는 일이거나, 아마 고아원 돕는 일이거나 아마도 야생동물 보호하거나 그도 아니면 제자가 피아노 미는 거 보러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게으름 피우며 놀고 싶을 때나 내 코가 석자일 때. 그래서 나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면 게으른 내가 피하는 줄 알 텐데도 성실하게 긴 문자가 온다. 내가 짐작한 대로 뭐 좋은 일 하러 가자는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핑겟거리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그의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한 삼십 분쯤 괴로워진다. 그의 유일한 흠은 아마도 그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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