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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8 21:54 수정 : 2008.10.09 18:16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조작과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추방됐던 조지 오글 목사(맨 왼쪽)와 제이스 시노트 신부(왼쪽 두번째)가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방한해 인혁당 유가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문동환-떠돌이 목자의 노래 6-5

“처형을 받아야 할 사람은 버젓이 대로를 활보하고 있는데 애매한 사람의 목에 밧줄이 걸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다. 1975년 4월9일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된 여덟 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날은 마침 목요기도회 날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종로5가로 가던 중 라디오에서 그날 새벽에 서대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소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가족과 면회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집행을 했단 말인가!’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그 격정의 심정으로 강단에 올랐다. 내 설교는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누가복음서> 18장에 있는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억울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하도 끈질기게 매달리니 재판관이 하는 수 없이 들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매달려 보기도 전에 죄 없는 이들이 어처구니없이 처형되었다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준비한 원고는 제쳐두었다. “오늘 정말 처형을 받아야 할 자가 누구입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대법원장!”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박형규 목사의 부인 조정하씨가 벌떡 일어서더니 “박정희!”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러나 역사의 심판관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립시다. 하느님은 억울한 자의 심판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끝내 정의가 이기고야 말 것입니다.”

사형당한 8명 가운데 6명의 주검은 가족들에게 돌려주었으나 나머지 두 구는 가족의 허락도 없이 구치소에서 화장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극심한 고문의 흔적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중 송상진씨의 주검은 그날 오후 함세웅 신부의 응암동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목요기도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응암동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주검을 싣고 가던 응급차가 응암동 사거리에서 방향을 바꿔 화장터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이를 지켜보던 우리들은 격분해 차를 온몸으로 가로막았다.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들과 선교사들, 목사와 부인들이 달려들어 차를 성당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경찰들과 격투가 벌어졌다. 문 신부는 그때 다리를 다쳐 지금도 다리가 불편하다. 나와 익환 형도 그때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들어 싸웠다. 이해동 목사는 우리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훗날 “형제는 용감했다”고 말하곤 했다. 익환 형은 그때까지만 해도 <구약성서> 번역에 몰두하느라 민주화운동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있었으나 이날 이후 점점 더 깊이 투신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들의 분노는 컸다. 이해동의 아내 이종옥은 껌을 씹어서 응급차의 열쇠 구멍을 막아버리기도 했다. 한참 동안 팽팽하게 대치를 하던 중 결국 크레인이 나타나 차를 화장터로 끌고 가 버렸다.

그 다음날 설교를 한 나와, 사회를 본 이해동, 성명서를 쓴 김상근, 박형규의 부인 조정하, 전창일의 부인 임인영씨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조사관의 책상에는 내가 전날 설교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나는 예수가 “너희들이 악한 관원들 앞에 붙잡혀 갈 것인데 무엇을 대답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조사관이 물어보려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을 연행한 것은 당국에서 눈엣가시인 목요기도회를 중단시키려는 의도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 악명 높은 안기부에서 5박6일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문동환 목사
인혁당 사건을 외국에 알리다가 추방을 당한 조지 오글 목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15년 동안 감리교 선교사로 있으면서 인천의 산업선교 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이미 74년부터 인혁당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직후 그는 남산으로 끌려가 17시간 동안 밤샘조사를 받았다. 당국에서는 그에게 인권운동에 가담하지 않고 강의만 한다면 추방하지 않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심정이 역력히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불의를 보고 입을 다물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나는 그에게 정부와 타협을 하고 남아 있는 것보다 양심선언을 하고 추방당하는 것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수의 뒤를 따라 억울한 자를 돕는 일을 했을 뿐, 어떠한 정치적인 행동을 한 일이 없다”는 양심선언을 한 그는 74년 12월 당당하게 추방을 당했다. 선언서를 읽으면서 눈물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문동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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