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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민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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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3
슬픈 조막손, 언니의 유행가 내가 태어나고 나서 맨 처음 배운 노래는 가곡? 아니다. 육자배기? 아니다. 창피 따위는 아랑곳도 않고 털어놓는다. 유행가였다. 그것도 구슬픈 유행가. 말을 하자면 아득한 날로 돌아간다. 초등학교엘 들어가고 나서 서너 달 동안 우리들은 일본 노래를 여럿 배웠다. 일본 군가도 여럿 배운 터라, 선생님이 한 사람씩 나와 좋아하는 것을 뽑아 보란다. 한참 만에 내 먼개(차례)가 와 나도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갔다. 그런데 군가가 아니라 유행가를 부르자 선생님이 눈깔을 모로 박더니 종아리를 친다. 너는 반장이다, 반장이 그따위 탈(병)든 노래를 하면 되냐. 얼마 뒤 다른 반과 함께 노래 부르기를 할 때도 그 유행가를 불렀더니 교무실로 끌고 간다. 너는 반장인 꼴새에 다른 건 모두 으뜸인데 일본말만은 왜 꼴찌를 하며, 노래도 군가는 안 부르고 유행가를 불러? 어디서 배웠어, 유성기? 없다고 하자, 라디오? 그것도 없다고 하자 대란다.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서슴없이 언니(형)라고 하자 그 언니 데려오란다.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나쁜 언니라니, 그 언니는 나보다는 열댓 살 위, 착한 조막손이었다. 그 언니의 아버지는 내 큰아버지, 삼일만세 싸움 때 태극기 세 멱쟁이(가마니보다 큼)를 만들어 만세를 불렀다고 세 해 동안 때(감옥)를 살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경찰한테 매를 맞아 피를 반 동이나 쏟고 돌아가시고, 그래도 큰아버지는 또다시 마르크스주의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때살이(감옥살이) 아홉 해, 모두 열두 해. 그 도막에 큰어머니는 너무나 어려워 어딘가로 가고 말았다. 이에 어린 그 언니가 엄마 아빠를 울부짖다가 모닥불에 엎으라져 손가락 열이 모두 타버린 것이다. 그분은 그 손으로 소설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소설을 쓸 아무 턱이 없어 늘 혼자서 흥얼거렸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언니, 우리도 밤 좀 따라 가자, 우리도 냇가로 멱 좀 감으러 가자”고 칭얼대도 늘 흥얼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나가면 그 흥얼거림이 노래가 되는 것을 나는 귀담곤 했다. 어느 날이다. 우리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길닦기에 안 나온다고 우리 어머니를 잡으러 온 것이다. 가자, 못 간다 한바탕 벅적이 이는데 느닷없이 커단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만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이 세상은/ 눈 오는 벌판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라는 노래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놀랜 경찰이 “누구야, 썩어빠진 유행가를 부르는 놈이, 나와” 그러다가 “어, 이 새끼 이거 손가락도 없는 병신 새끼가 재수 없게 유행가를 불러 …” 발길로 차고 짓이긴다. “아이쿠 우리 언니 이제 죽었구나” 그러는데 느닷없이 뻑 소리가 나더니 쿵, 경찰이 벌렁 나자빠지는 것이었다. 이를 놓칠세라 우리 어머니는 부지깽이로, 나는 팽이채로 갈겼지만 끝내 언니는 잡혀가고 썰렁해진 집, 무달(침묵까지 삼킨 고요) 한 밤, 느닷없이 멀리서 흐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없는 이 세상은 달 없는 사막’ 어쩌고 하는 언니의 노래, 거기서 내가 그 노래를 아주 익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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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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