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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민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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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4
사람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숨도 못 쉬게시리 죄여오는 먹개(벽), 그것을 가르며 삐져나오는 안간 숨결, 그 꿈 나래가 아닐까. 그 꿈으로도 숨을 이을 수가 없을 땐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옛이야기라고 믿고 있다. 나는 어려서 ‘하루거리’를 그리 많이 앓았다. 하루걸러 한낮만 되면 춥고 떨려 꼭 죽을 것만 같은 탈(병). 하지만 쓸풀(약) 따위는 무엇도 싫었다. 돼지기름데이 딱 그것 한조박만 그냥 날거로 질겅질겅 꿀꺽하면 살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는 거라. “야 엄마이, 거 돼지기름데이 한 조박 안 되네.” “고마이 있으라우, 이제 네 애비가 와. 그땐 돼지도 통이고 소도 통으로 잡는다니까.” 그 말만 믿고 깜빡했다가 깨어나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똥을 쌌는데 똥은 없고 지렁이 엉킴 같은 횟덩이뿐이다. 텅 빈 속은 가릿가릿하고 몸뚱인 불덩어리인데다 입술은 바싹바싹. 나는 아예 입을 찢었다. “야 엄마이, 나 거 간장 탄 찬물이라도 한 사발 달라우.” 그때 우리 집엔 설탕은 없고 여러 해 묵은 간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물에 타 마시면 백해고 천해고 거뜬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따라 야릇했다. 마시자마자 울컥 게우느니 노오란 똥물뿐, 핑하고 넋을 잃었는데 우는 소리에 깨니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어쩌면 애비가 돌아온 날 애가 죽다니, 그것도 애비가 탈과 함께 빚만 지고 돌아온 날.” 나는 소리 아닌 소리를 질렀다. “야 엄마이, 나 안 죽었어. 거 간장 탄 찬물 한 사발만 더 달라우 …” 할머니 어머니가 놀라시는 거였다. “옳아 옳아, 내 새끼가 옛날이야기처럼 살아 왔구나!”그러면서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그날은 ‘장산곶매 이야기’가 아니라 ‘이심이 이야기’였다. 옛날 옛날 아주 꼬꼬지 옛날, 저 깊은 바다 밑에선 먹는 건 짠물이요, 하는 짓은 노래뿐인 물고기 노곳떼(노래하는 고깃떼라는 준말)가 살았구나. 노래만 할 줄 알았으므로 어찌나 착한지 아무도 안 사는 물속으로 가고 거기서도 네 이놈 잡아먹겠다, 그러면 더 깊은 물 속에서 사는데도 착하게 노래만 해갖고는 살 수가 없었어. 이래저래 잡아먹혀 다 죽게 되었대. 이때야. 그 노곳떼 가운데서도 가장 야들하고 몸도 작은 이심이가 용왕을 찾아가 말하질 않았겠니. 용왕님, 우리 노곳떼가 다 잡혀 죽게 되었으니 좀 살려 달라고 하자, 네 이놈 이곳 용궁은 힘센 놈이 힘없는 놈을 잡아먹는 데거늘 이 용궁의 할대(법칙)를 어겨? 저놈을 대뜸 때(감옥)에 처 넣거라. 그래서 죽게 되질 않았겠니. 그런데 말이다, 그 용궁의 딸 보라난이(공주)가 노곳떼 노래에 반한 터라, 몰래 살려줘 나와 갖고는 마음을 다졌어. 내 이참부터는 나를 먹겠다는 놈하고 나도 목숨으로 싸워보리라고. 그래 맞붙었더니 어라? 이기더란 말이다. 그런데 한술 이길 것이면 몸에 쇠비늘이 하나씩 나는 거야. 또 붙어 이기면 또 쇠비늘 하나가 붙고. 마침내 온몸이 쇠비늘로 되니 어더렇게 되었겠어. 어더렇게 되긴, 곧장 앞으로 용궁으로 쳐들어간 거지 뭐. 네 이놈 용왕놈 나오너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어럽쇼 재가 ‘푸석’ 하는 거야. 알고 보니 용왕이라는 것이 상어였는데 그놈이 어찌나 놀랐던지 이심이 한소리에 재가 된 거라. 아, 우리 모두가 속았었구나 하고 용궁을 엎어버리고선 보라난이를 찾아보질 않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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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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