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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8 18:42 수정 : 2008.10.08 18:42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4

사람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숨도 못 쉬게시리 죄여오는 먹개(벽), 그것을 가르며 삐져나오는 안간 숨결, 그 꿈 나래가 아닐까. 그 꿈으로도 숨을 이을 수가 없을 땐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옛이야기라고 믿고 있다.

나는 어려서 ‘하루거리’를 그리 많이 앓았다. 하루걸러 한낮만 되면 춥고 떨려 꼭 죽을 것만 같은 탈(병). 하지만 쓸풀(약) 따위는 무엇도 싫었다. 돼지기름데이 딱 그것 한조박만 그냥 날거로 질겅질겅 꿀꺽하면 살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는 거라.

“야 엄마이, 거 돼지기름데이 한 조박 안 되네.”

“고마이 있으라우, 이제 네 애비가 와. 그땐 돼지도 통이고 소도 통으로 잡는다니까.”

그 말만 믿고 깜빡했다가 깨어나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똥을 쌌는데 똥은 없고 지렁이 엉킴 같은 횟덩이뿐이다. 텅 빈 속은 가릿가릿하고 몸뚱인 불덩어리인데다 입술은 바싹바싹. 나는 아예 입을 찢었다.

“야 엄마이, 나 거 간장 탄 찬물이라도 한 사발 달라우.”

그때 우리 집엔 설탕은 없고 여러 해 묵은 간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물에 타 마시면 백해고 천해고 거뜬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따라 야릇했다. 마시자마자 울컥 게우느니 노오란 똥물뿐, 핑하고 넋을 잃었는데 우는 소리에 깨니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어쩌면 애비가 돌아온 날 애가 죽다니, 그것도 애비가 탈과 함께 빚만 지고 돌아온 날.” 나는 소리 아닌 소리를 질렀다. “야 엄마이, 나 안 죽었어. 거 간장 탄 찬물 한 사발만 더 달라우 …” 할머니 어머니가 놀라시는 거였다. “옳아 옳아, 내 새끼가 옛날이야기처럼 살아 왔구나!”


그러면서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그날은 ‘장산곶매 이야기’가 아니라 ‘이심이 이야기’였다.

옛날 옛날 아주 꼬꼬지 옛날, 저 깊은 바다 밑에선 먹는 건 짠물이요, 하는 짓은 노래뿐인 물고기 노곳떼(노래하는 고깃떼라는 준말)가 살았구나. 노래만 할 줄 알았으므로 어찌나 착한지 아무도 안 사는 물속으로 가고 거기서도 네 이놈 잡아먹겠다, 그러면 더 깊은 물 속에서 사는데도 착하게 노래만 해갖고는 살 수가 없었어. 이래저래 잡아먹혀 다 죽게 되었대.

이때야. 그 노곳떼 가운데서도 가장 야들하고 몸도 작은 이심이가 용왕을 찾아가 말하질 않았겠니. 용왕님, 우리 노곳떼가 다 잡혀 죽게 되었으니 좀 살려 달라고 하자, 네 이놈 이곳 용궁은 힘센 놈이 힘없는 놈을 잡아먹는 데거늘 이 용궁의 할대(법칙)를 어겨? 저놈을 대뜸 때(감옥)에 처 넣거라. 그래서 죽게 되질 않았겠니.

그런데 말이다, 그 용궁의 딸 보라난이(공주)가 노곳떼 노래에 반한 터라, 몰래 살려줘 나와 갖고는 마음을 다졌어. 내 이참부터는 나를 먹겠다는 놈하고 나도 목숨으로 싸워보리라고. 그래 맞붙었더니 어라? 이기더란 말이다. 그런데 한술 이길 것이면 몸에 쇠비늘이 하나씩 나는 거야. 또 붙어 이기면 또 쇠비늘 하나가 붙고. 마침내 온몸이 쇠비늘로 되니 어더렇게 되었겠어. 어더렇게 되긴, 곧장 앞으로 용궁으로 쳐들어간 거지 뭐.

네 이놈 용왕놈 나오너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어럽쇼 재가 ‘푸석’ 하는 거야. 알고 보니 용왕이라는 것이 상어였는데 그놈이 어찌나 놀랐던지 이심이 한소리에 재가 된 거라. 아, 우리 모두가 속았었구나 하고 용궁을 엎어버리고선 보라난이를 찾아보질 않았겠니.

백기완
그런데 말이다, 바다에서 뭍으로 쫓겨났다는 거야. 그래 이래저래 찾았더니 아이구야, 그럴 수가 있겠어. 보라난이가 사람이 되어 살고는 있는데 얼마나 짓밟히고 뜯겼던지 갈대할멈이 된 거라. 갈대할멈.

뿔따구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심이는 어더렇게 되었겠어. 그야말로 불방메 시뻥메가 된 거지 뭐. 그래갖고 보라난이의 피눈물 나는 발자국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따름따름(점점) 하늘높이 치솟는 불기둥 시뻥메가 돼갖고 보라난이를 노리개로 부려먹던 커단 잿집(기와집)을 어더렇게 했겠어. 어더렇게 하긴, 그 집 마루 한가운데를 내려치니 꽈당! 한줌 재가 되더래.

“그래서?”

이참엔 그 보라난이를 밥띠기로 부려먹던 집을 보자마자 이심이의 뿔대 시뻥메가 얼마나 약이 올랐던지 하늘높이 오르고 더 오르다가 그냥 내려치니 어더렇게 되았갔어. 그냥 꽈다당, 한줌 재가 되드래.

“그래서?”

그 고운 보라난이를 잡아다 패던 망나니네 집을 보고서는 그 시뻥메에서 불꽃이 느닷없이 화다닥 튀자마자 그대로 내려치니, 어라 그렇게도 쪼글쪼글 늙고 탈이 나있던 보라가 글쎄 어여쁜 가시나로 다시 태어나드래.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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