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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3 18:17 수정 : 2008.10.16 18:48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7

“기완아, 만원만 만들 거라, 그것만 만들면 너는 그렇게도 안타깝게 바라던 축구선수가 된단다.” 열해가 가고 백해가 가 하얗게 늙는 한이 있어도 만원만큼은 죽어도 만들고야 말리라 다짐하며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낡은 벽돌에 묻은 세면을 떼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고되고 품삯은 몇 푼 안 되었다. 더구나 괴로운 건 일을 끝내도 돌아갈 데가 없는 거라, 그야말로 하염없이 걸어 가는데 아버지를 만났다.

“야 아바이.” “어 기완아.” 우리는 남이 보거나 말거나 껴안고 뒹굴었다.

“야 아바이, 아직도 눌데(방) 하나 못 얻었네, 이거 죽겠구나 이거.” “고마이 있으라우, 이제 곧 돼.” 그러면서 씹씹이 가신다.

“야 아바이, 밥도 안 먹고 헤어지네.” “고마이 있으라니까, 이제 곧 돼.”

나는 쫓아가 아버지 손을 잡고 남산 올라가는 길바닥 밥집에서 동태 대구리 찌개와 밥 두 그릇을 시켰다. 나는 낼름 먹었는데 아버지는 그냥 앉아만 계신다.

“아바이, 왜 그래 나 돈 있어” 하고 몇 푼을 내놓았는데도 그냥 일어서련다. 아주머니가 안됐던지 밥 한 그릇을 거저 주는데도 아버지는 그냥 일어서 가며 “고마이 있으라우, 이제 곧 돼” 그러시는데 터진 입술에서 마른 피가 썰핏 어린다.

‘아, 덤덩이(산덩어리) 같은 우리 아버지가…’ 나는 불끈 쥔 주먹으로 눈자위를 훔치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나는 돈 만원 만은 만들어야 한다, 단돈 만원’ 그러는데 길가 집 먹개(벽)에 ‘알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서울에서 가장 높은 8층집 ‘반도여관(요즈음 롯데여관)’을 차지한 미군이 ‘승강기 몰이’를 찾는 것이었다. 나이는 열셋에서 열여섯, 영어를 좀 하고 욱끈(건강)한 애, 그거였다.

나는 첫 다룸(시험)에서 한발은 올렸다. 또 한발은 높은 사람을 만나서 댓거리(면접)를 하는 것이었다.

“이봐, 영어를 알아?” “네, 조금.” 그러면 “미합중국을 영어로.”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 그러면 “위대한 미국은.” “더 그레이트 아메리카.” “됐어.” 몇 날 있다 와 보란다. 가보니 내 이름 딱 하나만 붙어있다.

너무나 기꺼워 달뜨게(열심히) 승강기 모는 걸 배우는데 내가 한때 일을 하던 집, 밥 많이 먹는다고 내쫓았던 설렁탕집 아저씨가 날 보더니 “너 여기서 일하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앞으로 너는 큰사람이 될 거다, 길을 잘 들었으니” 그런다. ‘길을 잘 들었다고?’

또 벽돌 까는 일터 일꾼들의 입도 바빠졌다. “그 새끼, 그거 말없이 혼자 일만 하더니 아무튼 무언가 있었던 놈이라고 무언가” 입이 닳고.

우리 라비(고향) 사람들도 “기완이가 잘됐어, 이제 미국까지 갈 테니 두고 보라니까” 그러고.

그런데 뜸꺼리(문제)가 일고 말았다. 승강기를 탔다 내렸다 하는 미군들이 다 떨어진 내 꼬라지를 보고 입을 삐쭉이고 장교 하나는 날더러 “꼬마 심부름꾼 임마, 이따위론 안돼, 미군 옷으로 갈아 입어야지”라고 나무라다가 군밤까지 먹인다. 나는 손을 쳤다. 그런데 날 또 툭 건드린다. 이에 눈깔을 치켜뜬 것이 그만 탈이 되고 말았다.

백기완
미군들이 차지한 그 여관 한국사람 높은네가 나를 불러다 놓고 “미군 옷은 왜 안 입느냐, 남대문 시장엘 가면 판단다.” “내가 미군이 아닌데 승강기만 몰면 됐지, 왜 입어야 하느냐”고 했다. 그것은 이 여관의 할대(규칙)에 어긋난다. 또 미군 장교한텐 왜 눈을 흘겼느냔다.

“아저씨, 내가 심부름꾼입니까. 아니라구요, 승강기 모는 사람이지. 그런데도 날더러 꼬마 심부름꾼이라며 군밤을 먹이는 놈을 가만두는 것도 사람입니까?” 그랬을 뿐인데 소릴 지른다. “너 같은 막떼쟁이는 오늘의 한국 사람이 아니다. 오늘의 한국 사람이라면 미군한테 고마움을 알아야지, 고얀놈 대뜸 나가.” 소리소리 지른다. 나는 더 크게 “그래 나갈 거야, 이 개새끼들아” 하고 문이 부서져라 꽝 닫고 나오고 말았다.

한 달에 쌀 여덟 말을 받기로 했었다. 아버지와 내가 한 달을 먹어보아야 다섯 말, 나머지 세말씩 한해만 모을 것이면 그까짓 만원이야 안 되랴. 마음도 달뜨게 일손도 달뜨게 움직였었지만 다 틀리고 말었다.

뒷날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야 임마, 나갈 놈은 네놈들이라고 했어야지. 아무튼 잘했어 임마.”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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