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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8
“야 아바이, 콩나물에다 꽁치 통조림 까 넣고 끓이는 국 먹어 봤어. 우리 그거 한 술 먹어 보자우.” 그래서 쌀 한 되로 밥을 지으니 밥이 여덟 그릇, 거기다 꽁치 콩나물국 한 솥을 몽땅 득달처럼 먹어치웠다. 한동안 너끈할 거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추워진다. ‘어라, 모처럼 먹었는데 춥다니’ 꿈적여도 미념(소용)이 없었다. 왜괙 게웠다. 아까웠지만 어떡허랴. 와들와들 떨릴 짬도 없었다. 숨이 가빠 한 발자국도 떼질 못하겠다. 겨우 전봇대에 기대 쓰러졌다. 지나던 누군가가 야 이거 ‘엠병’(장티푸스)일 거라 하고 누구는 ‘급성폐렴’일 거라고 한다. 내 보금자리 서울역 마루로 가다가 뜻밖에도 아버지와 다시 마주쳤다. “이게 어더렇게 된 거가. 괜찮아, 따슨 눌데(방)에서 한숨 자고 나면 거뜬해. 자, 가자우.” 효자동 끝까지 걸으며 기며 갔다. 야트막한 잿집(기와집) 큰들락(대문)을 밀치며 “아주마이, 우리 애 좀 뉘우자구요.” 거의 어거지로 따슨 눌데에 뉘어놓고 아버지는 어딘가로 가신다. 아무리 따슨 눌데에 누웠어도 춥고 숨이 차 견딜 수가 없는데 그 집 아들이 “이 새끼 이거 발진티푸스가 틀림없다”며 질질 끌어다가 한데에 팽개친다. 캄캄한 밤, 눈보라는 쌩쌩. 이때 멀리서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떠나는 소리~’ 익은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다. 내 꼴을 보자마자 “누가 그랬어.” 딱 그 한마디 끝에 돌멩이로 그 집 들락(문)을 왕창왕창 다 짓모은다. “나와, 이 백땅년 죽이겠다”고 다 부숴 놓고선 가잖다. 한참을 기어 나왔다. 웬 마차가 눈을 맞으며 딸랑대고 있다. (그땐 왜놈들이 놓고 달아난 말로 역마차가 있었다.) “아저씨, 우리 애가 아파서 그래요. 돈은 없지만 서울역까지만 좀 데려다 주시우.” “그래요, 사람은 돈보다 목숨이지요.” 그러면서 달리는데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 누구를 싣고 가는 서울거리냐 / 울어라 역마차야 세종로가 여기다 / 삼각산 바라보니 별빛이 반짝’ 그 소리를 들으며 서울역 큰마루 찬 바닥에 뉘어 놓고선 아버지는 어딘가로 또 가신다. “넌 고기만 한 조박 먹으면 나아, 내 곧 올게.” 곧 오신다던 아버지를 기다리길 한 댓새. 한데서 몇 날을 쿨적이던 젊은이 하나가 죽어 나간다. 한 늙은이는 밤새 동태가 되고. 나도 얼마 안 남았지 싶을 때였다. “여기 백기완이란 소년 어디 있습니까. 백기완이란 소년 모르세요?” 그런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 새끼가 또다시 나를 소매치기로 몰려는 건 아닌가.’ 하지만 놀랄 일이다. 임정의 큰어른 조소앙 선생이시다. 나를 보시더니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가잔다. 김구 할아버지와 너를 중학교엘 보내기로 했으니 가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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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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