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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9 19:30 수정 : 2008.10.19 22:18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열린 1987년 7월 9일 연세대 운동장에서 이애주 교수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그의 넋을 위로하는 썽(한)풀이춤을 추고 있다. 고명진씨 사진

백기완-나의 한살매 11

죽은 희망 되살리는 ‘썽풀이 춤’

서러운 사람은 일으켜 주기보다는 더 서러운 소리를 들려주면 절로 벌떡 일어난다는 걸 나는 몸으로 겪어본 사람이다.

아마도 그게 용산역쯤 어데였을 거다. 차라리 얼어 죽고 싶어 남의 집 찬 굴뚝을 껴안고 밤을 지새우는데 어디선가 끼끙대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가보니 그럴 수가 없다.

낡은 들락(문)은 굵은 몽뎅이로 가로질렀고 그 안엔 피투성이의 가시나가 입은 헝겊으로 틀어 막히고 팔은 다듬잇돌에 꽁꽁 묶인 채 살려달라는 눈짓이다. 꼭 내 꼬라지 같아 나는 장도리로 몽뎅이를 뜯고 들어가 풀어주었다.

가시나는 그냥 냅다 달아난다. 얼김에 나도 따라갔다. 나보다는 한 서너 살 위인 것 같아 “누나 어딜 가느냐” 물었다.

쓸루(약)장수를 따라 춤을 추는 사람인데 양아치들이 노리개로 팔아먹으려고 해 시골집 양주로 내빼는 길이란다. 따라갔더니 나보다도 더 딱한 사람들이 보이기 차름(시작)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누나의 어머니가 저기 구장네 집엘 가서 네 애비가 기르던 누렁소를 끌고 오란다. 구장한테 가니 대뜸 돈 가져 왔느냐. 못 갖고 왔다고 하자, 소의 앞발을 널판때기 위에 올려놓고는 이따위 큰못을 빵빵 때려 박는다. 돈 안 가져오면 못 풀어준다고.


누렁소는 꼼짝을 못하고 웡웡 울고, 나는 소름이 끼칠 새도 없었다. 누나가 그 길로 서울로 가자며 묻는다.

“너, 아까 우리 소가 우는 걸 보았지?”

“응.”

“소가 꼼짝 못하는 것 같았지? 아니야, 소는 끊임없이 꿈적이는 거야. 판때기만 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 땅덩이를 한꺼술에 드는 몸사위, 그게 바로 춤이야, 멍석말이춤. 서울의 양아치들이 내가 좀 예쁘다고 내 발에 빵빵 큰못을 박는데 그래도 난 서울로 갈 거야. 가서 놈들과 싸우면서 사라져가는 멍석말이를 다시 빚을 거야.”

오시시 소름이 끼쳤다. 저 누나는 ‘멍석말이춤’을 살리고자 싸우러 가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뜻과 슬멋(재주)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공을 찰 수가 없는 틀거리, 그 잘못된 틀거리를 내지르러 가는 것, 그것이 참짜 공차기가 아닐까.

때가 흐를수록 내 발등엔 꽝꽝 큰못이 박히는 것 같을 적마다 그 누나를 떠올리다가 어느덧 쉰 해, 1987년이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나는 춤꾼 이애주 교수한테 학생들이 좋다고만 하면 장례식 앞자락은 하는 수 없이 기독교 투로 하되, 뒷자락은 멍석말이 가운데 우리 썽풀이 장례, 썽풀이춤으로 해 보자고 해서 이 교수가 이백만의 앞장을 서게 되었다.

피 묻은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는 것을 본 이우정 교수가 나한테 물었다. 이 교수 옆에는 김영삼 선생, 다른 옆에는 김승훈 신부, 김대중 선생이 있었다.

“백 선생, 저 이 교수의 춤은 어떤 겁니까?”

백기완
“꺼지는 땅은 끌어올리고, 무너지는 하늘은 갈라치고, 그리하여 죽었던 목숨, 죽었던 갈마(역사), 죽었던 하제(희망)를 일으키는 썽풀이 춤이지요.”

“하지만 저건 샤머니즘 아닌가요?”

“빼앗긴 목숨은 제힘으로 일어나 스스로 찾는 겁니다. 머릿속의 어떤 생각(절대자)의 이름(계시)이 아니라. 그러니까 샤만이라고 보는 눈이 샤머니즘일지 모르지요.”

“그렇다면 저 멋진 것을 왜 이제야 보여주나요?”

“교수님, 그렇게도 바라던 민주화다, 통일은 어찌해서 이제야 일구려 하는 겁니까? 그와 비슷하지요.”

이애주 교수는 어느새 이백만 사람 물살을 길잡아 시청앞에 닿았다. 그리하여 막춤의 맨마루(절정), 이백만이 넘는 썽난 랑이(민중)들을 군사독재 끝장의 불길로 불러일으키려는데 따다땅 펑펑, 그 때문에 두 가지를 이루질 못하고 말었다.

하나는 선거가 아니라 온몸으로 일으키는 갈마의 일어남이요, 또 하나는 인류문화의 어먹한(위대한) 알짜, 그 썽풀이 춤을 마저 빚질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그 썽풀이 춤을 제대로 빚어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 했으니….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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