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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민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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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13
열여섯이 되던 해 나는 마침내 뒷골목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주먹전쟁이 아니다. 혼자서 세 해 안에 중학교 배우기(6년제)를 몽땅 해치우기로 한 것이다. 그것을 나는 세딱싸움 그랬다. 닥치는 대로 외우고, 닥치는 대로 읽고, 닥치는 대로 먹는다 그거였다. 무엇부터 외울까? 애들이 영어를 그렇게 많이들 배우니 나도 영어를 외우자. 사전이 없다. 글묵집(책방)엘 가서 영어사전을 빼들고는 한 때결(시간)씩 서서 외우자. 한 때결이 지나면 알범(주인)이 싫어하므로 또다른 글묵집으로 가는 것을 날마다 거듭했다. 낱말을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혼자 외우다 보니 사과를 ‘애플’ 그러질 못하고 ‘에이플’ 그랬다. 애들한테 놀림을 받았다. 내질(발음)을 모른다고. 그렇구나, 영어는 내질부터 알아야겠다 싶어 어느 대학생한테 영어 내질을 좀 알으켜 달라고 했다가 도리어 시꺼먹고 말았다. “야 임마, 네가 영어는 배워서 뭘 해. 대학을 갈 거냐, 미국엘 갈 거냐, 없는 새끼가 제 가름으로 살아 임마.” 이때 내 떠방(반응)은 어떠했을까. 피투성이의 싸움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많이 울었다. 그다음은 닥치는 대로 읽기인데 글묵(책)이 있어야 읽질 않겠는가. 그래서 또다시 글묵집엘 가서 아무거나 빼 읽는데 그 집 알범이 잡아 끌어낸다. 쪼매난 새끼가 사랑 이야기나 읽는다고. 난 알 수가 없었다. 사내계집의 사랑이 왜 나쁘냐.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빼들은 것은 <삼국지>, 골목 애들한테 나도 ‘삼국지’를 읽는다고 했다. 애들이 콩콤(재미)있지 그런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그 이야기 속엔 나같이 딱한 애란 뒤져도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다루는 꾀만 날뛸 뿐 죽어가는 나를 살려내던 우리 집의 옛이야기 같은 것이 없는 것이 못마땅했다. 또 어떤 것이 사람 사는 마을이요, 사람의 나라인가가 잘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콩콤이 없었다고 하자 쥐어박는다. 널마(대륙)의 모진 삶에 거퍼 몰아치는 바람을 모르는 바보라고 쥐어박는 애는 똑뜨름(역시) 어느 중학생이었다. 내가 옳은지, 그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피 흘리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또 빼들고 읽은 것이 <장발장>, 그 이야기의 첫머리가 나는 그렇게도 좋았다. 배는 고픈데 떡은 길거리 가게의 유리 속에 있어 먹을 수가 없자, 에라, ‘쨍그당’, 그 소리는 사람 사는 벗나래(세상)의 사람답지 못한 모든 틀거리를 단 한사위로 깨트리는 한소리라고 여겨져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딴 애들은 달랐다. “이야기는 그렇게 종집게로 끄집어 보는 게 아니야 임마, 긴 흐름을 제 삶과 엇대서(비교) 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글묵 한 둘을 읽고 까불지 말란다. 그 말도 괜찮은 것 같았으나 나는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일으킨 싸움이니까.그다음 내 싸움은 닥치는 대로 먹자는 건데 그게 더 어려웠다. 먹거리가 있어야 닥치는 대로 먹질 않는가 말이다. 이참도 떠올리면 가슴 찡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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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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