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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30 18:39 수정 : 2008.10.30 18:39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20

돌아가신 둘째 언니(형)의 뼛조각이라도 찾겠다고 강원도까지 갔다가 몰아쏘기(집중사격)의 과녁이 되어 거의 죽다 살아온 뒤 나는 이 땅 이 나라에 마주한(대한) 꼴눈(증오)이 밑두리에서부터 치밀었다.

그때는 거리의 부랄(조사)도 성가셨다. 그래서 “신분증 내놔!” 그러면 다짜고짜로 “그래, 난 죽일 놈이다, 쏘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곤 했다. 보기 싫은 건 또 있었다. 그즈음 부산 거리는 싸움터와는 달리 돈이 좀 있다고 힘이 좀 있다고 서로 으스대는 꼴들이 그대로가 썰통(난장)이라, 참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북새에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돈 선생이 ‘해외유학장려회’를 만든 첫꺼리로 날더러 미국 유학을 가란다. 나는 그때 그분의 아들한테 이레에 한 술씩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대뜸 싫다고 했다.

“어허, 너 같은 애가 총알받이가 되는 걸 막아야 해. 또 너 같은 애가 미국 유학 첫술이 되는 것이 이 썩은 바투(현실)를 찌르는 송곳이 될 터이매 가야 해.”

“선생님, 이참 이 땅은 불구덩이입니다. 그 불을 끌 생각을 해야지 나만 내빼서야 되겠습니까?”

“야 기완아, 할 일은 오늘의 바투에만 있는 게 아니야. 내 어떻게 해볼 터이니 내 말 듣거라!”

나는 그 손길을 뿌리치고 서울로 왔다.

전쟁이 한창일 적이라, 한강 넘기가 쉽질 않았다. 나는 영등포에 내려 자장면 한 그릇을 샀다. 그것을 낡은 냄비에 담아 갖고 어렵게 한강을 넘어 남산에 올라 펴놓았다.


“언니, 돈이 모자라 한 그릇밖에 못 샀습니다. 같이 드시지요” 하고 막 꾸벙(절)을 올리려는데 볕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너댓의 꼬마들이 “야, 냄새 좋은데” 그런다.

“너희들 먹고 싶으냐? 그러면 같이 꾸벙을 하자” 그러는데 애들이 꾸벙은 않고 맨손으로 마구 집어 먹는다. 터지는 웃음을 겨우 가라앉히며 물으니 모두가 전쟁 때문에 집과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학교도 잃은 애들이다.

나는 그들을 가르치리라 했다. 그러고는 어떻게 어떻게 찢어진 채알(천막)을 하나 얻어 기슭에 쳐놓고 ‘새날 배움터’ 그랬다. 얼마 안 돼 저녁마다 오는 애들이 늘었다. 우리들의 노랫소리도 더욱 커져 갔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삼천리에 넓은 들~’ 어쩌고.

일찍이 관악산 승방뜰 구장네 머슴한테 주워들은 것을 함께 부르던 어느 날, 그 깨진 덤삐알(산자락)에 눈이 오다가 달이 뜨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움터 이름을 ‘달동네’, 돌려주는 종이도 ‘달동네 새뜸(소식)’ 그래 보냈는데, 몇 날 있다가 경찰이 날 잡아다 첫술부터 매단다. 그러고는 발길로 내 배시때기를 뻥뻥 내지르며 대란다.

“달동네란 말이 무슨 뜻이냐?”

나는 “눈 온 뒤에 달이 뜨는 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 ‘달동네’ 그래 불렀다”고 했다.

“뭐야 이 새끼야, 하꼬방 그래야지, 너 그 수작 누가 지어줬어?” 대란다.

“아저씨, 하꼬방이란 왜말 아닙니까? 이참이 어느 때인데 왜말을 쓰라고 합니까?”

백기완
“뭐야, 너 일본말 싫어하는 것을 보면 네 뒤에 빨갱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뒤를 대라”고 거퍼 배를 지른다. 하지만 내 배 속에선 고추장에 비벼 먹은 깡보리밥만 쏟아졌고 그것은 금세 흙바닥에 얼어붙었다.

바로 그 얼어붙은 깡보리밥처럼 되어 몇 날 만에 나와 보니 내가 쳐놓았던 채알과 애들은 간 데가 없다. 다만 마루턱에서 웬 사람이 나를 흘기다가 사라진다.

나는 다시 이 나라 이 땅이 보기 싫었다. 왜괙 가래침을 뱉는데 하늘을 날던 비행기에서 나풀나풀 종이들이 떨어진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쪼매난 글묵(책)이었다. 그 속엔 장군의 시도 있었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럭 높이 떴구나/ 괴로운 나라근심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라는 글귀가 너무 좋아 그 자리에서 외워 버렸는데 선조대왕의 시도 있다.

‘국경이라 달 아래 목 놓아 울고/ 압록강 바람결에 애가 그치네/ 이러한 오늘 또다시 서니 동이니 싸우려느냐.’

그것도 그 자리에서 외우는 눈길 위에 ‘달동네’라는 우리말을 썼다고 때리던 경찰이 어려 웅질댔다. “아저씨, 전쟁까지 해가며 지키자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말 쓰는 애를 족치는 그 막심(폭력)입니까?”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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