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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2 19:09 수정 : 2008.11.02 19:09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21

싸움이 막바지에 들 무렵, 나는 딱 한마디가 그렇게도 그리웠다. “야 이놈아, 그리 가질 말고 이리로 가거라”는 한마디. 아니 “네가 할 일은 바로 이거다”라고 딱 부러지게 이르는 한소리는 어디 없을까.

사람도 만나고 글묵(책)도 뒤지고 거의 미친 듯 헤맬 때다. 누가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들으러 가잔다. 나는 그때만 해도 함 선생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다.

종로 뒷골목 어디쯤 한 댓이 앉아 있었다. 첫눈에도 찬서리를 맞고서야 얼굴을 펴는 들국화처럼 맑고 빼어난 분이 묻는 것이었다.

“얼추(혹) 토머스 하디의 <테스>라는 소설을 읽어본 분이 있소? 있으면 일어나 그 느낌을 말해 보실라오. 내가 보기엔 오늘의 젊은이들이 꼭 한술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돼서 그러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물어물 하기에 내가 일어나 “사랑한다는 것은 꽃밭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가시밭과 수렁을 헤쳐 마침내 제 가슴의 꽃밭을 일구는 눈물이다. 그런 이야기였다고 여겨지는데요.”

이를 듣고 있던 함 선생이 풀이까지 해주신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하드래도 그것이 곧 사랑의 매듭이 아니라 막 틔워야 할 씨앗이라는 그 이야기는 오늘 이 땅의 어지러움을 갈라칠 길잡이가 될 거다” 그러신다.

바로 여기서였다. 조금만 삐끗해도 입에 거품을 물곤 하던 나는 “선생님, 오늘 이 땅의 이 어지러움, 그 잿빛을 갈라치려고 하면 <테스>가 아니라 바로 이 땅의 피눈물을 알아야 하질 않겠습니까?” 하고 대거리를 했다.

“선생님, 미군 부대라면 오죽 으스스합니까. 그런데 그 으스스한 부대 철조망을 붙들고 ‘이 개새끼들 나오라’고 울부짖는 열댓 살쯤 된 여중생이 있었습니다. 왜 그러는지 그 까닭을 알아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들은 무턱대고 그 어린 것의 머리를 박박, 눈구덩이에 내던졌는데도 또 와서 ‘개새끼들 나오라’고 울부짖자, 이참엔 그 여학생의 젖가슴을 찢어 내팽개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어린 것을 미군 여럿이 짓밟은 것입니다. 이에 뿔따구가 머리끝까지 차 그러는데 미군은 엉뚱하게도 갸를 빨갱이라고 우리 헌병대에 넘겼고 헌병은 다시 경찰, 경찰은 다시 부대 둘레의 양아치들한테 짓밟게 했습니다. 끔찍했지요.

그러나 그 끔찍한 일을 놓고도 신문, 정치꾼, 변호사, 선생, 그 많은 깡패들도 입을 다물고 있는데 한 핼쑥한 사내애가 미군부대에다 맞짱을 걸었습니다.

‘너네 부대에서 가장 센 놈은 나와라, 나하고 맞짱을 뜨되 내가 지면 날 죽여도 좋다. 하지만 내가 이기면 저 어린 여학생한테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는 것을 매기고 붙었는데 택이나 있었겠어요.

그 애는 한방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어오는 코끼리를 들이받아 눕혀버리고선 외쳐댔습니다. ‘마침내 한국 애가 썩어문드러진 양키를 꺾었구나.’

선생님, 그 어린 여학생의 몸과 마음은 끔찍하게 짓밟혔지만 끝내 그 못된 것들을 이긴 건 누구였겠어요. 그 어린 것의 맑은 눈물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참 우리 바투(현실)는 그 눈물의 한강물입니다. 선생님께서 <테스>를 읽자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글쟁이들한테 그 어린 여학생의 피눈물을 한술 그려보라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 목이 메는 것이었다.

백기완
1981년 여름, 강원도 양양 바닷가에서 군인 양아치들한테 맞은 헌디(생채기)를 달래고 있다가 돈이 떨어져 보따리를 싸려고 했었다. 그런데 모래밭 너머 멀리서 하얀 두루마기가 가물가물 ‘야 함 선생 같으네’ 그러는데 참말로 함 선생이 돈 16만원을 놓고 가신다.

나는 냄(배웅)을 내면서 “선생님, 옛날 저희들한테 <테스>를 읽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지요. 그때 아무렴 <테스>도 읽어야지만 오늘의 우리 바투를 읽어야 한다고 울부짖던 그 젊은이가 바로 오늘의 이 백기완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래, 그때 그 이야긴 아직 글로 꾸미진 못했지? 요즈음 읽혀야 할 터인데 ….”

나는 송곳이라고 받아들였다. ‘옛날 그 여학생처럼 너도 짓밟혔으면 나가 싸워야지, 뭐, 잔돈푼이나 걱정해.’ 그러는 것 같아 그날 밤 외로운 바닷가에서 ‘오냐 가주마/ 노를 잃고 삿대는 부러져/ 남은 것이라곤 뒤틀리는 네 다리에/ 마음의 등불뿐일지라도/ 스스로 묶은 사슬은 이미 끊어졌노라 ….’

‘태풍’이라는 찰(시)을 써 “선생님, 오래 사시라”고 바쳤었는데 못난 것, 빈소에도 못 가보았구나.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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