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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3 18:29 수정 : 2008.11.13 18:29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30

요즘 노는 꼴을 보면 다 잊은 것 같으다. 이승만 정권(준심) 끝물께(1959년)엔 견딜 수 없는 썩은 물이 날쳤다.

하나는 국가보안법을 더 못되게 꾸린 다음 사람의 생각, 살아가는 할(법)과 맑티(문화)의 기둥을 이승만에 두고, 거기에 맞서면 모두 등빼기(역적) 빨갱이로 모는 꾸정물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쓸쇠맑티(소비문화)만이 따라야 할 보기일 뿐 이 땅의 맑티 그 잇줄(전통)은 모두 쓰잘 데도 없고 따라서 없애 마땅하다는 겨레맑티(민족문화) 몰아 죽이기가 마치 밝은 하제(미래)인 것처럼 덧씌우는 똥물이었다.

나는 그건 아니다, 그랬다. 모든 맑티 다시 말해 터감(학문)이든 랑(예술)이든 모두 엇차(사람씨)를 빚어내는 것이래야 한다. 그것은 ‘을러대기’와 ‘달구질’을 뼈대로 하는 비나리 투로 꾸리는 데 있다고 했다.

그렇다, 이승만이 아무리 설쳐도 우리는 힘이 없는 게 아니다. 가라앉은 힘을 을러대고 달구어 썩은 물살을 갈라치자. 그러고자 해서는 ‘비나리를 살리자’는 도틈(제목)으로 말을 하려고 어딜 가는데 때속(옥)에서 몰래 알림이 왔다. 때속의 언니(맏형)가 어렵게 됐으니 가보라고. 득달같이 달려가니 언니가 부추겨 나오신다. 핼쓱한 얼굴에 눈은 퀭하고 남은 건 뼈대와 껍줄뿐이다.

“언니, 왜 이렇게 되셨습니까?”

“어 괜찮아, 아버지는 잘 계시네?”

“네.”


“그리고 기현이는 왜 한술도 안 오네. 뭐가 어떻게 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기현(둘째형)이 언니가 죽었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래. 그리고 아버지는 때속의 언니가 보기 싫으시다는 거야. 언니를 흰두루(백두산) 덤마루(산등)를 한숨에 쓸어안을 범처럼 길렀는데 때속에 묶여 있는 꼴이 보기 싫으시다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한 것뿐인데 도리어 힘을 내자며 업혀 들어가신다.

때속 의무과에 알아보았다. 통 삭이질 못하고 오금을 못 쓰지만 국가보안법의 간첩은 딴 길이 없단다.

“딴 길이 없다면 병원도 못 가보고 죽어야 한단 말이요?”

“야 이 새끼야, 여기가 간첩이나 살리는 덴 줄 알아. 간첩짓을 한 것이 잘못이지, 그만 나가, 안 나가면 너도 처넣을 거야. 꽝!”

“우리 언니가 죽일 놈이라구?”

발길을 돌리면서 나는 우리 언니를 더듬었다. 우리 언니가 제 뚱속(욕심)을 부린 것은 딱 한술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마치던 날 집에서 기르던 닭 세 마리를 훔쳐 진남포로 달아난 것이다. 거기서 어느 벌짝(회사)의 심부름꾼을 하다가 서울의 무슨 중학교에 다닌다며, 초등학교 1학년인 나한테 언니는 곧 중국을 갈 거라고 했다. “빼앗긴 나라를 찾는 일이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무슨 글묵읽기모임(독서회)이 들통 났다고 숨어 지내는 것 같았다.

어린 내가 “언니, 왜 그래?” 그러면 “이게 짓밟히는 겨레의 사나이 모습이야.” 그러더니 8·15가 오고 그 뒤 전쟁이 났을 적이다. 북쪽 군대가 물러서며 남쪽으로 간 집안사람들을 쌀두덤(창고)에 가두고선 어쩌려고 했다. 북쪽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꼭짓(점)으로 미루어 함부로 나설 수가 없는데도 “쏠 테면 나를 쏘라”고 나서 살려내고야 말었다.

백기완
또 남쪽 군대가 물러나면서 한다 하는 북쪽 집안사람들을 쌀두덤에 가두고는 똑뜨름(역시) 어떻게 하려고 하자 우리 언니가 가로막고 “쏠 테면 나를 쏘라”고 옥신각신 끝에 살려내자 어머니 말씀이었다.

“기성이가 토막 난 언애(형제)를 하나로 했고, 갈라진 에미 애비도 하나로 했구나.”

기성이 언니는 정말 착했다. 누구하고 다투는 것을 나는 한술도 보질 못했고 더구나 소들(효자)이었다. 어머니가 어쩌다가 그 흔한 민어국(한 해 십만 톤이 잡힘)을 끓여도 영 안 자셔 국에다 밥을 말고는 아이고 배야 하고 물린 다음 어머니를 자시게 하시던 분이다.

서른셋에 때엘 가서 열해 만에 나오던 날 아래윗니가 몽땅 빠졌는데도 “난 끄떡없어” 그러시더니, 돌아가시기 앞서다. “기완아, 내가 죽더라도 눈과 간은 다시 쓸 수가 있다고 하니 의과대학에 주도록 하고 무덤도 쓰지 말거라. 애루(동생) 기현이도 무덤이 없지 않니?”

작은언니는 남쪽의 애국자, 큰언니는 북쪽의 애국자. 그래도 우리 세 언애는 부셔(적)가 아니었거늘 누가, 누가 이따위로 만들었는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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