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삽화 민정기 화백
|
백기완-나의 한살매 31
1960해 마침내 4월 불쌈이 터졌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때(감옥)에 갔다 온 한 벗이 하는 말이었다. “기완이, 너는 총에 맞어 죽었을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구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만 풀이 팍 꺾이고 말었다. 총이 됐든 대포가 됐든 앞을 가로막는 걸기작(장애)이라면 맨몸으로라도 뚫어야 한다는 것이 내 펏침(철학)이다. 어찌 보면 그것보다 더 맷싸게 살아온 것이 나라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마산의 한 고등학생(김주열 열사)은 그의 눈에 최루탄을 쑤셔 박아 죽였고, 서울의 어린 초등학생도 총을 쏘아 죽였고, 종로 세거리 밤의 꽃들도 돌멩이를 주워 나르고, 파출소를 불 지른 거리의 신문팔이들이 떨어진 신에 불을 붙여 한 신문사를 불태우고 구두닦이들이 앞장서 경무대(청와대)로 밀고 가 이승만 준심(정권)을 꼬꾸라뜨렸다는 것은 그냥 입만 벌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 오천년 갈마(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요, 이 땅별(지구)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국이 틀어쥔 이 땅 갈라놓기, 이른바 냉전물코(체제)를 낼판(결정적)으로 흔들어놓은 맨 처음의 부림(변혁)이다. 그리하여 온들(세계) 갈마의 빼돌(전환점)을 이 땅의 랭이(민중)들이 일군 엄청난 불쌈이었다. 그 놀라운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죽지만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 굽이치는 물살에 한 방울로 깨지지도 못하고 기껏 소리나 지르며 따라다닌 맹추요, 꾸려지지도 않은(비조직) 랭이들이 그렇게 큰일을 해내리라고는 어림도 못한 땡추요, 그 거센 물살 위에 거품도 못 되는 깽추였다고 스스로 매를 쳤다. 나는 그 피맺힌 다리로 이리저리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이 멀턱 눈에도 언뜻 그 메케한 잿더미뿐인 거리에 트릿한 뉘우침의 불티 하나가 반짝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서양 맑걸(문명)엔 사람이 아니고 하늘을 높떵(찬양)하는 ‘할렐루야’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일깨우는 불림 ‘아리아리’가 있질 않는가.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을 것이면 길을 내자(만들자)는 불림 ‘아리아리.’
![]() |
백기완
|
처음엔 그렇게 어기찰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8·15 때도 안 보이던 스스로의 거덜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다고. 우리들이 들고 나온 ‘아리아리’라는 불림은 그 번지는 낌새가 너무나 벅차려고 했다. 조금만 있으면 일을 낼 거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4월 불쌈으로 이승만은 꼬꾸라뜨렸으나 이승만 물코(체제), 다시 말해 갈라진 물코(분단체제)를 마저 무너뜨린 것은 아니어서 거꾸로 갈라진 물코는 더 굳어가는 듯했다. 갈라진 물코를 틀어쥐고 있는 미국이 끔찔(위험)을 느껴 모든 먹떼(보수반동)를 다시 일으키려 들었고, 그 갓대(증거)로 준심 때문에 이승만과 맞섰던 먹떼들로 하여금 치사하고 뻔뻔스러운 다툼에 빠지게 하였다. “모든 흐름은 불쌈이 아니라 갈라진 물코 굳히기로 매듭지어야 한다”는 말따구가 그래서 먹떼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것은 펄펄 뛰는 4월 불쌈을 굴비로 만들려는 안팎의 끔찍한 꿍셈(음모)이라고 깨우친 나는 “4월의 꺽지(노여움)들이여! 돌아와 그대들을 떠받드는 섬김발(제사상)을 부시라”는 찰(시)을 지어 내놓았다. “그대들은 이승만을 꼬꾸라뜨렸을 뿐 이승만 물코는 다시 칼을 들었거늘 그대들을 기리기나 하자는 건 속임수다. 아니 그대들의 불쌈을 타다 남은 끝덩이(숯)로 만들자는 등빼기(반역)라. 아, 오천 해 갈마 그 잘못된 물코를 처음으로 뒤집어엎은 꺽지들이여! 돌아와 섬김발을 부시라!” 손수레를 끌며 외치고 다녔다. 통일꾼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