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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7 18:35 수정 : 2008.11.17 18:35

삽화 민정기 화백

백기완-나의 한살매 32

1961년 5월 16일, 군인들이 총을 들고 민주당 준심(정권)을 뺏었다. 4월 불쌈(혁명)을 이룩한 지 겨우 한 해가 지나서였다.

새벽부터 떠드는 굴대(방송)가 지겨워 광화문으로 걸어가는데 총 든 군인들이 비켜가란다. 내 집엘 가는데 왜 이래라 저래라냐. 여러술 소릴 치고서야 생활정화연맹 일매기(사무실)엘 오니 정종관·김희로·신기선·방배추(방동규)·민창기 … 쩡쩡한 벗들이 묻는다. “군인들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뻔하지 않는가. 랭이(민중)들이 이승만에 맞서 피를 흘릴 때 그 물살이 무서워 총부리를 감추던 것이 군인들이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을 보면 그것은 미국이 뒤에서 시킨 등빼기(반란)다. 첫째, 4월 불쌈을 죽이자는 것이요. 둘째, 미국의 한반도 거머쥐기, 거기에 따라 이땅의 곧맴(양심)과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가진 것이라는 게 손수레 하나밖에 더 있느냐. 그것이라도 앞세워 전차처럼 싸워야지. 다만 그러고자 해서는 얼마 동안은 ‘개구리의 슬기’를 배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개구리의 슬기’라니? 개구리는 멀리 뛰고자 할 적엔 전혀 팔딱대질 않는다. 다리에 힘을 모은 다음 펄떡 뛴다. 이 말에 눈을 빛내며 그 ‘개구리의 슬기’가 바로 ‘랭이의 슬기’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헤어졌다.

얼마 있다 일매기엘 나가니 돈을 못내 벌써 끊겼던 말통(전화기)이 없어졌다. 배가 고파 잡혀먹었다고 한다. 낡은 피불(난로)은 엿 사먹고 찌그덕대는 올리게(상)는 넝마장수가 가져가고 이어서 들락(문)은 아주 닫히고.

펑펑 눈이 내린다. 자꾸만 꼬불쳐지는 허리를 겨우 추스르며 광화문으로 가는데 뽀얀 눈발 속에 하얀 곰 두 마리가 다가오다가 컹, 놀라 멈칫하니 늘 주린 배를 쐬주로 채워주던 술꾼 널마(대륙)와 배추다. 따라오란다.

요즈음의 세종문화회관 뒤 기다란 개고깃집에서 배바지부터 아무튼 실컷 먹었다. 그런데 널마가 하는 말이 내가 오줌을 싸는 척하고 들락(문) 밖 깃줄대(전봇대)에 서자마자 배추 너는 곧장 앞으로, 기완이 너는 어둑한 데로 알았지? 하라는대로 냅다 뛰었다. 눈길에 엎어지며 일으키며, 쫓아오던 알범(주인)이 “저놈 잡아라!”는 소리가 광화문을 쩌렁쩌렁. 군인들은 준심을 먹었는데 나는 겨우 개고기나 거저먹는 못난이인들 어쩌랴.

그해 겨울은 언짢은 일도 많었다. 그 괴로움을 새기느라 나는 술이 거나해지기만 하면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갈매기 바다 위에 날지 마~라~요’ 꼭 그 귓줄만 부르고 또 부르고, 그것도 소리높이.


백기완
그러면 지나던 이들의 떠방(반응)이 왔다. “야 이 새끼야, 갈매기 더러 바다 위엘 날지 말라고 하면 어딜 나냐?” “어허, 모르는 소리. 이건 임마, 개구리 노래야 개구리. 갸들 노래를 내가 꾸어다 부르는 거라고.” “미친놈, 야 임마, 개구리는 ‘개골개골’ 그래. 너, 그것도 모르는 걸 보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다룸(시험)에서 그나마 미끄러졌구나.” “야 임마, 난 초등학교도 못 다닌 게 아니고 학교라면 어떤 것이든 이고 다녀. 안 보여, 이것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네놈은 판수로구나 판수.”

그러면서 집이 가차워지면 내 노래는 더 커지고, 그리 되면 우리 집사람이 찌끄득 고개를 내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집사람이 안 보여 “야, 담아” 하고 첫딸을 부르는데 “야, 이 새끼야, 시끄러” 그런다. 아침까진 틀림없이 우리가 살던 눌데(방)다.

그런데 딴사람이다. 눈은 펑펑 내리는데 우리 집사람이 시집올 때 해갖고 온 이불과 걸통(장농), 몇 안 되는 내 글묵(책)이 처마 밑에서 젖고 있다니, 소스라쳐 차리다가 나는 불렀다. “여보, 이게 어떻게 된 거요?”

다음날도 밤만 되면 그 집엘 또 찾아가 “여보, 이거 어떻게 된 거요?” 그러기를 보름쯤 지나서였다. 그 집 먹개(벽) 틈에 꼬실꼬실한 종이가 끼어있다. 얼추나(혹시나) 해서 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글귀가 트릿한 밤, 눈에 어린다.

“여보 이제야 하나 얻었구려. 달동네라 집데(주소)가 없는 꼬불꼬불을 그렸으니 물어물어 찾아오구려.”

문득 ‘갈매기 더러는 바다 위에 날지 말라고 하면서 너는 왜 집데도 없는 집을 찾아 헤매 임마.’ 그런 생각이 들자 얼핏 쪽지를 찢어버리곤 불러댔다.

“담이야, 일이야!” 그러다가 엎으러 졌는데 멀리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기요 여기.”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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