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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민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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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36
나는 젊은날(1965), 일본의 다시 쳐오기, 이른바 한-일 협정 꿍셈(음모)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박정희 군사막틀(독재)을 끝장내는 고비요, 갈라진 겨레를 하나로 하는 매우 쓸턱한(중요한) 때박(계기)을 틀어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뜻이 일구어지리라고 믿었다. 일제의 짓밟기를 겪어온 피눈물의 갈마(역사)가 우리들을 이기도록 할 것이다. 더구나 박정희와 일본의 끔찍스러운 뒷놀음이 온 겨레의 불끈(노여움)을 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긴다. 질 턱이 없는 싸움이다, 그래 생각했다. 하지만 열나(만약)에 질 것이면 일본 돈을 밑짱으로 박정희 군사막틀은 더욱 날뛸 것이고, 그것은 곧 갈라짐막틀(분단독재)이 되어 통일바램을 아주 죽이려들 것이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 따라서 나는 그 싸움에 내 젊음을 바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밀리고 말었다. 그것은 미국의 놀투(장난)로 힘의 고름(균형)이 삐끗한 탓도 있지만 앞장섰던 우리들에게도 뜸꺼리(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것이 무엇이드냐. 호들테기(기회주의자)들의 거짓부리기를 깨뜨리지 못한 것이요, 또 하나는 일제 다시 쳐오기를 겨레사랑이라는 살냄(정서)에만 기댔을 뿐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썩풀(독)이 되는가를 우리네 갈마의 깨우침에서 불붙여 오질 못했다고 여겼다. 갈마의 깨우침이라니 어떤 것일까? 보길 들어 ‘꼴머 이야기’가 그 하나다. 꼴머란 겨우 열한 살 먹은 머슴이다. 그에겐 안타까운 바램이 하나 있었다. 똑뜨름(역시) 머슴인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대로 부쳐 먹을 땅 한 뙈기를 만들어 드리느냐 그거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워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다. 곡산 깊은 골에 쓰러진 덤테기 같은 아저씨를 돕게 되자 그 아저씨가 고마워서 하는 말이었다. “네, 바램이 한 뼘의 땅이라면서? 그러면 우리나라를 뺏으려는 왜놈들과 싸워 이기면 될 것이야.” 그날로 어절씨구 엿장수가 돼 곡산 골을 헤매는 일을 맡게 되었다. “왜놈들을 몰아내기만 하면 ….” 그 말에 신이나 꼴머의 눈부신 한매(활동)는 그곳 왜놈들에겐 죽음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왜놈들은 꼴머를 잡아치는 것이었다. “너네들 독립군이 어디 있느냐?” 굳게 다문 꼴머의 입이 열리질 않자 꼬셨다. “말만 들으면 네가 바라는 땅뙈기를 주겠다”고, 이때 꼴머의 말이 “이 땅은 우리나라 땅이다. 그런데 어찌 네놈들이 두부 모 자르드키 한단 말이드냐. 한 뼘인들 우리 마음대로다, 이놈!” 이에 왜놈들은 꼴머의 어머니를 잡아다가 발가벗기는 것이었다. 말 안 들으면 벗겨진 채 죽이겠다고. 꼴머는 “우리 어머니 옷을 갖다드려라, 그리하면 내 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옷을 갖다드리자마자 꼴머는 들락(문)터거리에 턱을 짓쪄 혀를 끊고 말었다. 부아가 난 왜놈들이 꼴머를 쏴 죽이려고 끌고 나가는데 꼴머가 손짓으로 ‘쏘려면 보리밭에서 쏘라, 내 피를 거름으로 삼겠다’고 했으나 미념(소용)이 있으랴. 그대로 팡팡, 꼴머는 쓰러지고 말었다. 하지만 바로 그 ‘꼴머의 이야기’, 나라를 찾으면 그것을 찾고자 싸운 사람들의 것이라는 새나라의 바램을 릿금(영상)으로 빚어내자 그거였다. 어떻게 빚느냐. 어린 머슴이 쏟아내는 그 핏발에 아롱지는 아홉 가지 꿈을 글묵(책)으로 그려갖고 그때 내가 잘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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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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