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1.25 18:57 수정 : 2008.11.26 10:20

지난해 초 열린 오랜 지기 방동규(맨 오른쪽)씨의 자서전 <배추가 돌아왔다> 출간 기념회에 참석한 필자(가운데)가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오른쪽 두번째)과 나란히 서 있다. 유 전 청장은 1968년 서울대 학생 시절부터 필자와 인연을 맺었다. 사진 다산책방 제공

백기완-나의 한살매 38

1968해 가을이었다.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학의 한 배우내(학생)가 찾아왔다. 이름이 뭐지? 유홍준입니다. 왜 왔지? 우리 학교에서 ‘일본,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도틈(제목)으로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을 듣고자 하는 애들이 누군데?” “선생님 말씀마따나 이 갈마(역사)에서 뜸꺼리(문제)를 받아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지요.” “그래?” 하고 몇 날 뒤 대학 들락(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한 떼거리의 애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서중석·조학송·김덕현·안양노 말고도 많았는데 잘 떠오르질 않는다. 가을 대학은 그런대로 볼 만했다.

노오란 가랑잎이 멋지게 하늘을 을러 고개를 들다가 나는 삐끗했다. 대학굿(극) <날개>를 보인다는 걸개가 나부끼는 게 아닌가. “여보게, 저게 뭐지?” “네, 저런 걸 좋아하는 배우내도 있고 그렇지요, 뭐!”

나는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썩물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도틈을 달았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쑤셨기 때문이다.

이땅에는 이 땅별(지구) 어디에도 없는 낱말이 하나 있다. ‘썩물’이다. 썩물은 사람의 몸에 들어와 사람만 썩히는 것이 아니다. 이웃도 썩히고 끝내는 벗나래(세상)까지 썩히는데, 그것은 그 어떤 쓸풀(약)로도 못 잡는다. 사람의 욱끈(건강) 만으로도 안 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맞장을 거쳐서야 죽일 수 있는 던적(병균)이 바로 썩물인데, 어떻게 되어 먹었을까?

보길 들면, 검뿔빼꼴(제국주의)이 그야말로 빼어난(전형적) 썩물일 터이다. 왜냐! 검뿔빼꼴은 남을 짓밟아 죽이고, 뺏고 그 피까지 빨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이 된 틀거리니 어김없는 썩물이라. 그런 썩물하고는 같이 살 수도 없고 한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 깨뜨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검뿔빼꼴만 썩물이드냐? 아니다, 검뿔빼꼴의 앞잡이가 더 끔찍한 썩물이다. 보길 들면, 최남선·이광수·모윤숙·박정희가 바로 그 끔찍한 썩물이다. 모윤숙의 ‘소남도의 처녀야’라는 시를 보면 일제에 짓밟힌 저 마녘(남쪽) 소남도의 가시나를 마치 날래(해방)된 것처럼 꾸려 함께 썩물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런 썩물을 ‘갯땅지 썩물’ 그런다. 사람이 그대로 썩물이 되어버린 사람 말이다.

이와는 또다른 썩물이 있다. 일제와 싸우는 곧맴(양심)과 올곧(정의)을 바꾸려는 얏싸한 호들테기(기회주의) 썩물, <날개>라는 글이 바로 그것의 하나다. <날개>의 끝머리를 보면, 그 알범(주인)의 안눌데(안방)까지 웬 녀석이 들어와 알범의 아내와 어쩌고 하고 있다. 이를테면 안눌데만 빼앗긴 것이 아니다. 그 알범의 가슴까지 빼앗긴 꼴인데도 알범은 그저 지붕 위에 올라 “날고 싶어라, 날고 싶다”고 외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무엇일까. 일제가 우리네 안눌데까지 짓밟아 한 해에 7만 사람이 잡혀갈 만치 어기어차 싸우고 있는데도 그 바투(현실)를 모르는 체 날고만 싶다고?

어느 날 일꾼들한테 <날개>를 같이 읽은 다음 생각을 말해 보라고 했더니 “왜 그 알범(주인공)을 낫이라도 드는 이로 꾸리질 않았는가? 그건 이상이가 일제의 더부살(식민지)을 산 것이 아니라 일제의 안눌데에서 잘 살았다는 갓대(증거)라 없애야 한다”고 주먹을 떠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이상의 <날개>는 바로 썩물에서 나온 썩물이다. 보잔 말이다. <날개>가 나오기 몇 해 앞서 이 땅엔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나왔고, 그보다 열다섯 해 앞서 중국에선 노신의 <아큐(Q)정전>이 나왔고, 일본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까지 조선의 독립을 외쳤거늘, 미국이 앞장서 일본의 다시 쳐오기가 차름(시작)된 이 마당에 젊은이들이 어찌해서 <날개>를 굿으로까지 꾸미고 있단 말인가. 사람은 여러 가지이니 여러 눈길로 보는 거다 그 말일까.

그날 내 이야기가 끝난 다음 나는 젊은 배우내들과 어느 집에서 목을 적시면서 말을 했다.

백기완
“젊은이들이여! 썩은 바닥에 주저앉을 것이면 엉덩이만 썩는 게 아니라네. 얼추(혹) 썩물이 될지도 모른다네” 그랬는데 요즈음은 그때와 달리 썩물은 없어지고 모두 맑아졌는가. 대학의 배우내란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어떻게 된 놀음인가.

마흔 해 앞서 하던 말을 되씹어본다. “갈마(역사)가 매급(요구)는 쭈빗(긴장)을 먹거리로 삼으라. 그래야 갈마와 함께 끝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네.”

통일꾼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길을 찾아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