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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민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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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나의 한살매 53
사람이란 죽을 때 죽드라도 ‘안간’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놓을 수가 없게 돼 있다. 몸도 다되고 그 다된 몸을 보듬어내려는 끈기, 그것마저 다됐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으키려는 몸부림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태끈(부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안간’을 곁돌치는(추상화) 꾸럭(조작)일지 모른다. 그럼 참짜 ‘안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목숨 아닌 것과 대놓고 맞붙는 싸움이다. 그 싸움으로 목숨 아닌 것을 짓부셔 새 목숨을 빚어내는 것이 곧 ‘안간’이다. 그러니 ‘안간’만이 모든 한나(통일)의 알기(주체)라고 믿고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전두환이한테 모진 매(고문)를 맞을 적이다. 우중충한 불빛 밑에서 웬 군인이 내 눈깔을 까보고 몸뚱일 뒤적이더니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 이거 누가 이랬어. 차라리 죽이지, 이렇게 해놓고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대뜸 고칠데(병원)로 옮기든지 아니면 갖다버려!” 그 뒤 나는 고칠데로 옮겨지질 않았다. 때속(감옥)에 처넣어졌다. 거기서 나를 버텨내던 건 내 꺾심(의지)? 아니다, 내 ‘안간’이었다. 그 ‘안간’이 때로는 뜨거운 불길로 치솟기도 했고 또 때로는 샘이 되어 넘치기도 해 겨우겨우 죽지만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따름따름(점점) 트릿해가던 어느 날 새벽, 의무과장이라며 찾아와 귀띔을 한다. “댓님(당신)은 누구요, 전두환이가 쓸풀(약)은 어쨌든지 쓸 만한 깨풀(진통제) 한 알을 못쓰게 하니. 하지만 난 고칠네(의사)요, 고칠네인 내 앞에서 댓님을 죽게 할 수는 없어요.” 몇 날 있다가 또 와서 “댓님은 얼추 글도 쓰시오? 나도 글난이(소설가)요. 그래서 묻소” 하며 여럿을 꼽는다. “찰니 신경림·고은·김규동, 글난이 박태순·이문구·이호철·남정현, 그리고 글 쓰는 이철범, 한승헌 말네(변호사)도 아시오?” “알지요, 그 가운데서 한승헌 말네는 내 목숨을 건져준 분이기도 하고.” “아무튼 어느 대학 고칠데서 사람이 올지도 모르오.” 그러고 간 뒤 참말로 한양대학 고칠데서 사람이 왔다. 내 몸을 뒤적이더니 말은 않고 한숨만 남기고 간다. 며칠 뒤 나는 한양대학 고칠데로 옮겨졌다. 거기서 배부터 째는 손놀(수술)을 받았다. 딴사람 같았으면 오큼(반시간)이면 되는 것을 자그마치 네때결오큼(네시간반)이나 걸렸단다. 못 깨어나는 줄 알고 새파랗게 질렸던 아내가 비키라고 소리를 지른다. 룻길(병원복도)을 가득 메운 경찰한테 지르는 소리였다. 공덕귀 아님(여사), 함석헌 선생이 나를 보러왔다가 쫓겨나고, 몇 날 뒤 내 무릎에서 곪아 썩은 피고름을 땅지(병)로 하나쯤을 빼냈다. 그리고는 찰가루(석고)로 굳혀 뻗정다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똥오줌을 받아내고 있는데 밖에선 온낮 싸움이 벌어진다. 들어가겠다, 못 들어간다는 다툼소리를 들을 적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숨이 가빠 잠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전두환이가 광주에서 사람 죽인다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려다 다친 허리가 시큰, 그 진땀 위에 눈물이 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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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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