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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22 18:49 수정 : 2008.12.22 18:49

1986년 7월19일 ‘권양 성고문 진상 폭로대회’ 장소인 명동성당 일대를 전경들이 원천봉쇄하고 있는 가운데 면사포를 쓴 신부가 간신히 검문을 통과하고 있다. 그해 <보도사진연감>에 실린 이 사진의 설명에는 단지 ‘집회’라고만 적혀 있을뿐 ‘성고문 사건’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백기완-나의 한살매 57

1986해 7달 어느 날, 비가 엄청 왔다. 그런데도 우리 골목은 수레(자동차) 일곱이 가로막고 날 못 나가게 한다. 둘은 내 큰딸을 잡자는 것이고, 다섯은 하제 있을 ‘권양 성고문 진상 폭로대회’에 내가 함께굴낯(공동대표)이라 그러는 거였다.

안 그래도 나는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제주대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새내기 맞이잔치’ 그러자고 하고 올라오는데 무릎이 욱씰욱씰 고칠데에 누웠었고, 또 어딘가에선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아니라 ‘새뚝이 마당’ 그러자고 하다가 쓰러져 한 달을 누웠다 나온 뒤라, 마냥 낑낑대는데 깊은 밤 아내가 녀석들이 수레 속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이때다 하고 빗속의 덤(산)을 넘어 흙투성이인 채 빌린거(택시)를 타고 열림마당(대회장)인 ‘명동성당’으로 갔다. 신부·수녀 몇이 날 보더니 굴낯(대표) 한 분이 오셨다고 반긴다.

날이 밝았다. 성당 이쪽저쪽으로 십만도 더 모여 들었으나 경찰에 막혀 못 들어온다. 나 혼자서 ‘여는 말’과 ‘마무리 말’로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고 세 술(번) 크게 외치고는 수녀원 어디에 며칠 숨었다가 냅다 달아났다.

박종태, 나종학, 송일영네 집에 숨었다. 속이 터졌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어느 낚시터에서 한 이틀 묵고 오는데 그 집 꼬마가 “할아버지 빠이빠이” 그런다. 나는 발길을 돌려 “얘야, 빠이빠이가 아니라 잘잘”(잘 있어요, 잘 가세요) 그래야 한다며 한숨지었는데, 아! 그 꼬마는 이참 그 말을 쓰고 있을까?

어느 날 저녁, 마룻길에서 낑낑대는 손수레를 밀어주었더니 고맙다고 쐬주를 사며 하는 말, “넝감, 내 밀게나 하는 게 어때? 술은 살 테니 ….” “그러지요” 하고 또 밀어주고 나서 한 모금 하는데 날더러 “무얼 하다 그래 되었느냔다.” 나는 술낌에 “나 말이오? 통일 꺼리(운동) 하는 사람이오”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 그러면서 엎드려 낑겨 달란다.

만주에서 8·15 뒤 라비(고향)를 찾아오다가 언애(동생)는 총에 죽고, 저는 다리를 못 쓰지만 언니를 따라 통일을 해 만주엘 가겠다고 운다.

함께 울다가 나는 그만 탈이 도졌다. 양 수녀, 윤 수녀의 도움으로 왜관 ‘파티마 요양원’에 ‘김아모스’로 숨어있던 어느 날, 박 원장 수녀님이 말통(전화)을 걸어왔다.


“백 선생님, 밖을 좀 내다보세요.” 슬며시 내다보니 그럴 수가? 마치 찬굿(영화) ‘불쌈꾼(혁명아) 사파타’의 마지막처럼 백도 더 되는 경찰들이 덤자락을 뺑 둘러치고 나한테 총을 겨누고 있다. 꼼짝없이 잡혀가는데 그때 시름 짓던 그 원장 수녀님은 어떻게 됐을까?

뻗난길(고속도로)을 쑤악 달렸다.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참으란다. 그대로 싸겠다고 하니 묶인 채로 멎는데(휴게소)에 내려준다. 바글바글에 낑겨 오줌은 누었으나 올릴 수가 없어 아질(안타까워)하는데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쯔쯔쯔.” 내 바지를 올려주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막대(검찰)의 닦달도 누워서 받을 때다. “선생님, 힘을 내세요”라고 하다가 막대에 가로막히던 그 씩씩한 대학생은 이참 무엇을 하고 있을고 …. 탈(병)이 깊은 나를 집어넣기가 무엇했던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어딘가에서 말통을 받고서야 때(감옥)에 처넣던 그 막대는 이참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백기완
펑펑 눈이 내리는 밤, 들것에 누워 때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릴 질렀다. “전두환 000다!” 그 쩌렁쩌렁 소릴 듣고 “저건 백기완이다. 선생님, 힘내시라”고 하던 그 도둑놈은 썅이로구(도대체) 누구였을까?

날이 밝았다. 한승헌 말네(변호사)가 왔다. 일만 터지면 애를 써주는 한 말네는 자주 오는데 그의 글묵(책)은 못 보게 한다. 어절씨구 그때 그 개망나니는 누구였을까?

1986해 늦게, 그래도 한승헌 말네가 애를 써 고칠데에서 87해를 맞고 어느 만치 나았을 적이다. 경찰이 들이닥쳐 내 팔에 꽂힌 김물(링겔)을 빼고 나를 다시 때속으로 끌고 가려 한다. 마침 나를 보러 오셨던 박용길 아님(문목사 부인)과 이기연(질경이 우리옷)이 경찰 수레바퀴에 누웠다. 못 간다고.

하지만 미념(소용) 있으랴, 무지무지하게 끌어낼 때다. 끌수레(휠체어)에 타고 있던 어느 일꾼이 소릴 지른다. “이놈들, 너희들은 백기완 선생을 때에 처넣지만 우리는 네놈들을 처넣을 거다, 이놈들아!”

그날이 바로 3달 1날이라, 때에도 ‘기미년 3달 하루~’ 어쩌고 하는 노래가 들려왔지만 나는 문득 ‘길음 장터’ 그 손수레꾼이 걱정됐다.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데도 날보고 “언니, 언니를 따라 만주로 가고 싶다”던 그 늙수그레는 내가 때속에 있는 것도 모르고 마냥 기다릴 텐데 아직 살아나 있을까? 통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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