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2.25 18:43 수정 : 2008.12.25 18:43

1991년 5월7일 ‘의문의 투신’으로 숨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주검을 부검하고자 이른바 ‘백골단’이 콘크리트벽을 뚫고 안양병원 영안실에 난입하고 있다. 노동법 위반으로 수감 중에 다쳐 입원치료를 받던 박씨는 당국으로부터 전노협 탈퇴를 강요받다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백기완-나의 한살매 60

이참이야말로 탁 털어놓고 말할 게 하나 있다. 1990해름(년대) 아직 캄캄한 새해 첫날부터 나는 뒷덤(뒷산)에 올라 소리 없는 소릴 질렀다.

“야, 이 데데한 벗나래(세상) 썩어문드러진 잔챙이들아, 치사하게 굴지들 말라우. 너만 잘 살겠다고? 야, 이 더러운 것들아 …, 그렇다면 백기완이 너는, 너는 어떻게 살고 있어? 너부터 똑똑히 살아. 너, 너, 너 ….”

그러다가 나는 깨우쳤다. 이게 모두 ‘날래듬직(해방사상)의 뿌리’를 못 찾아 그렇다. 그래서 그 뿌리 찾기에 뛰어들었다.

‘멍석마리 이야기’, ‘뿔로사리 이야기’, ‘골굿떼 이야기’, ‘저치 가는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장산곶매 이야기’ …. 이것들은 벌써 토막으로 말해 놓긴 했었다.

하지만 흘떼(강물)로 꾸리고자 강원도에 처박혔다. 거기서 조범준·이관태가 거들어 굶진 않고 ‘이심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근데 일매기(사무실) 남궁호에게서 따르릉, “선생님, 빨리 오셔서 한 말씀 하셔야겠습니다. ‘수서비리’가 터졌거든요.”

그것은 엄청난 ‘한보’의 사갈짓(범죄)이라, 안 갈 수가 없었다. 우리 일매기에서 밀굿(농성)을 차름(시작)했다. 여럿이(강희남 목사, 박현서 교수) 밤을 새웠다.(동아일보 머릿기사) 그런데 알 수가 없었다. 잘 아는 이들이 함께하질 않는 거라.

어쨌든 한바탕 뒤집어놓고 다시 강원도엘 갔다. 그런데 또 따르릉, “명지대 강경대 배우내(학생)가 노태우의 쇠몽둥이에 쓰러졌다”(1991.4.26)고 한다.

나는 다시 글쓰기를 물리고 거리에 나섰다. 시청앞 마당에 물대포가 나타나 숨을 죽이는 걸 본 나는 혼자서 뚜벅뚜벅, 물대포를 부여잡았다. “멱빼기(암살자), 노태우 네 이놈!”


그런데 놈들이 나한테 최루가루를 물통으로 뒤집어씌운다.(찬굿(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에 나온다) 그래도 노태우를 꺾어 팡개칠 때는 바로 이제라고 앞장을 서는데, 그게 누구던가. “이참 우리는 기초의원 뽑기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한다. 누가 왜 그랬을까?

이어서 한진중공업 박창수 일꾼이 때(감옥)에서 죽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태우의 멱빼기 마구죽이기(학살)였다. ‘쿵쿵’ 역울(빈소)을 허물더니 그의 지릇(유해)까지 뺏어갔다. 제놈들이 죽인 그 지릇을 뺏어가? 그냥 밀다가 짓밟힌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 우리 일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또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거겠습니까?”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목꽂이야. 목꽂이란 말 들어보았어?” “네, 우리 바투(현장)에서 갖는 모임을 목꽂이 그러는 걸로 아는데요.”

“아니야, 목꽂이란 말 그대로 한술 나섰다 하면 목숨부터 내대는 사람, 이를테면 온몸으로 들이대는 우리 일꾼들의 해대기야. 왜냐, 있는것들, 못된것들은 우리를 괴롭힐 때 무엇을 들이대나. 돈과 막심(폭력)만이 아니잖아. 선자(지위)와 이름, 배터(학벌)까지를 몰아대질 않아. 그런데 우리는 무어가 있어. 목숨과 알통밖에 더 있어. 그래서 일꾼들은 온몸의 해대기 목꽂이로 들이댄다 이 말이다.

또 우리 일꾼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느냐. 바로 곧은목지야. 곧은목지는 일을 하다가 목이 부러졌는데 그 목이 붙어갖고 옆으로도 못보고 숙이지도 못하고 빠딱 세우게 되니 어떻게 되겠어. 눈이 넷이 되는 거야. 발가락의 두 눈은 바로 발뿌리의 돌을 보자 함이고, 얼굴의 두 눈은 멀리보자 함이라. 한 걸음을 가드래도 목은 빠딱, 가슴은 불쑥, 주먹은 불끈, 그리고는 앞만 보고 가는 거야.

높은 뫼가 가로막아도 그냥 곧장 앞으로만 가고, 깊고 거친 흘떼가 가로막아도 첨벙첨벙 곧장 앞으로만 가고, 걸기작 대는 것들은 몽땅 밟아대고, 짓이기고, 앙짱을 내는 것이 곧은목지, 일꾼들의 길이라니까.

우리 박창수가 바로 곧은목지라, 이참 우리들은 여기서 한 발자욱인들 옆으로 비끼면 안 돼. 제놈들이 죽여 놓고, 그 안타까운 지릇을 뺏어가는 걸 보라고, 그놈들이 사람이가. 따구니(악마)도 안 그래. 그러니까 우리들은 목꽂이가 되어 곧은목지로 나아가면 노태우 따위는 그냥 보내는 거라”고 그랬다.

그런데 박창수 뜨끔(열사) 땅술굴낯(장례위원장)이 된 나는 어떻게 했던가. 부산 한진중공업 마당까지 따라가 안 된다고 눈물만 흘리다가 땅에 묻고 말았다.

“모든 풀 나무들이 다 꽃을 피우는 게 아니다. 그러나 너는 떡잎도 제대로 못 냈으되 벌써 꽃이 되고 날래(해방)의 열매를 맺은 이눔아, 창수야!” 그러면서 땅에 묻고 말았으니 백기완이 너도 사람인가. 이적지 되묻고 있을 뿐이다. 통일꾼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길을 찾아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